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4호 기획 [커 뮤 니 케 이 션 권 리]
민주적 의사소통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권리
정보사회의 보편적 인권으로써 보장받기 위한 전략

김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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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은 기본적인 사회과정이자 기본적인 인간의 요구며 나아가 모든 사회조직들의 근본적 토대다.”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 선언문)

2003년 한국의 정보운동진영에는 ‘정보인권’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등장을 하게 되었다. 교육부의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놓고, 전교조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시스템이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심각히 침해한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이 과정에서 전교조는 일반적인 프라이버시권의 개념을 넘어서서 정보사회에서 인간이 보장받아야 할 기본적인 권리라는 관점에서 ‘정보인권’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하였다. 작년 네이스 반대운동을 통해서 정착된 정보인권이라는 단어는 이제 한국 정보운동진영의 슬로건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해외에서는 한국의 정보인권과 비슷한 단어로 ‘커뮤니케이션 권리(communication rights)’가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왔다. 2003년 12월에 열린 정보사회세계정상회의(WSIS)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정보사회에서 중요한 개념의 하나로 규정했다. 또한 시민사회진영에서는 이 권리가 정보인권과 마찬가지로 정보사회에서 기본적으로 보장해야 할 권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아직까지 보편적인 개념은 아니며, 정보사회 전반적인 이슈들을 포괄하기위해서 몇 가지 풀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커뮤니케이션 권리란 무엇인가?

커뮤니케이션 권리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많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초기 그 논의는 의사소통을 위한 권리(rights to communicate)에서 시작한다. 1969년 당시 국제연합(UN)의 정보국 국장으로 있었던 진디아시(J. d’Arcy)는 그의 글에서 “세계인권선언에서 보장하고 있는 정보에 대한 권리를 더욱 확장시킬 때가 올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것은 바로 의사소통을 위한 권리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글은 기존의 국제인권조약에 의사소통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권리가 포함되어야 함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2003년 1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커뮤니케이션권리 세계포럼(WFCR)이라는 국제 회의가 열렸다. 커뮤니케이션과 빈곤 커뮤니케이션과 평화 커뮤니케이션과 저작권, 특허, 상표권 커뮤니케이션과 인권 등 4가지 주제로 열린 이 포럼은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보편적인 권리로써 정착시키기 위해 국제적인 캠페인을 이끌고 있는 크리스(CRIS)가 주최하였다. 이들은 포럼 마지막 날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위한 성명서를 채택했는데, 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과정의 하나이며, 모든 사회조직의 근본적인 토대이다. 이것은 단순한 의사교환을 뛰어넘어 구체적인 의미를 형성하는 개인간 또는 조직간 상호작용을 의미한다. 커뮤니케이션 권리라는 것은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과 인간의 필요에 부합하는 평등한 상호작용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제도적 토대이다. 나아가 이 권리는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다양성 그리고 민주적 참여에 대한 요구를 보장한다.”

그동안 커뮤니케이션 권리에 대해서 깊은 연구를 해 온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대학의 시스햄링크(Cees J. Hamelink) 교수는 이 권리가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며, 세계인권선언 등 기존의 국제규약에서 다루고 있는 기본적인 인권들의 개념을 더욱 확장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권리로써 그는 표현의 자유, 프라이버시, 정보공유 등을 제시한다. 나아가 그는 공공 커뮤니케이션(Public Communication)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또는 평등한 정보교환의 권리 등 정보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개념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햄링크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다섯가지 권리로 구체화 하고 있는데, 정보적 권리 문화적 권리 보호의 권리 집합적 권리 참여의 권리 등이 그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http://www.wsis.info/doc/Quotes_Cees_J.pdf 참조)

커뮤니케이션 권리, 그 논의의 진통

커뮤니케이션 권리에 대한 초기의 논의들은 다양한 반대의견에 부딪히기도 했다. ‘그 개념이 너무 광범위하고 모호해서 실제로 중요성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또는 이 권리가 ‘세계인권선언의 의미를 훼손시킬 수도 있으며 그렇게 되면, 정부들이 이 개념을 악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비판들이 그것이다.

커뮤니케이션 권리에 대한 중요한 갈등은 19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까지의 치열한 논쟁의 주제였던 신세계정보 및 커뮤니케이션 질서운동(NWICO)이 야기한 국제적인 대립의 흐름이었다. 당시 유네스코(UNESCO)는 커뮤니케이션 권리와 관련해서 NWICO 운동을 조직했으며 이에 대응해서, 미국 중심의 세계 주류언론들은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free flow of information)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은 개도국들에 대한 선진국들의 일방적인 정보제공(one-way)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개도국들은 균형 있는 정보의 흐름(free and balanced flow of information)이라는 주장을 폈고, 이 같은 개도국의 입장이 반영되어 당시 유네스코(UNESCO)는 맥브라이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류 언론들은 맥브라이드 보고서의 방향이 사실상 개도국 독재자들의 인위적인 자유언론 탄압을 정당화한다는 핑계로 이러한 개념의 수용을 거부했고 결국 미국이 유네스코를 탈퇴하는 것으로 파국을 맞았다. 이 사건 이후 의사소통의 권리에 대한 논의는 국가간 협상에서 심각한 갈등으로 표출되었다.

시민사회진영의 입장

커뮤니케이션 권리에 대한 최근의 논의의 지형은 70-80년대의 논의와는 상당히 다르다. 과거에는 주로 정부들 간의 갈등을 중심으로 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지만, 현재는 주로 적극적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시민사회진영에서의 논의가 주를 이룬다. 시민사회진영에서는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정보의 흐름을 규제하는 정부의 역할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위한 시민사회진영의 요구들에는 인터넷 접근이나 공동체 미디어의 확장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인프라의 접근을 기본적인 인권으로써 포함시키고 있다. 이들은 의사소통을 위한 권리가 기존의 인권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또한 새로운 기술의 토대위에 미디어의 발전 가능성을 확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런 시민사회진영의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논리가 녹아있다.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단지 정보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에 바탕을 둔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올드(Old) 미디어와 뉴미디어의 융합 속에서 새로운 매체 환경이 만들어지는 가운데, 커뮤니케이션이 주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발전만으로는 커뮤니케이션 권리가 자동으로 보장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며, 이것은 해당 이해당사자들의 논의를 통한 합의로 풀어나가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의미가 구체화 될 수 있다.

한국적 맥락에서 자리매김 하기 위한 과제

한국에서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아직까지 많이 생소한 개념이며 보편적인 권리로써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일단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한국어로 번역할 만한 적당한 단어가 없으며, 이는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학자들과 전문가들의 합의를 통한 정확한 개념 정립이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노동감시의 문제나 주민등록증 및 지문날인의 문제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 정립과 함께 대중화를 위한 실천전략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권리는 계속해서 발전시켜야 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인간의 복지 및 인권 증진의 방향으로 진행 될 때, 비로소 기본적인 인권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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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 권리 보장을 위한 CRIS의 입장

CRIS는 정보사회의 비전을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토대 위에서 논하고 있다. CRIS는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을 증진시키고, 사회 경제 문화적 삶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필수적인 도구로써 의사소통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강조한다. 이 권리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네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 민주적 참여를 위한 의사소통 공간 마련

전통적인 신문에서부터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을 까지 모든 사람들이 민주적으로 논쟁할 수 있는 공간을 지속적으로 마련해 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써 미디어가 필요하다. 또한 시민사회진영이 정치적인 의사표현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표현의 자유 및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공공영역의 정보들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미디어 다양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 지식과 정보의 공유영역 확장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가 추구하고 있는 지적재산권제도의 강화는 지식독점을 통한 이윤창출, 그리고 시민의 지식에 대한 공적 접근을 차단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고 지식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의 확충이 필요하다. 공공기금으로 만들어진 정보는 정보공유영역(Public Domain)으로 포함시키는 등의 공유를 위한 원칙이 확립되어야 한다.

○ 시민적 권리 보장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또한 공동체의 안전한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기 위한 시민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 권리에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권, 알권리, 자기정보통제권, 반감시권 등이 포함된다.

○ 문화적 권리의 보장

문화적 다양성과 전통지식의 유산을 보호하고 새롭게 발전시킬 수 있는 문화적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 권리에는 모국어를 사용할 권리, 해당 공동체의 문화적 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다양한 문화의 소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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