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4호 북마크
무문자 사회, 대안사회 그리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지도
<무문자 사회의 역사 - 서아프리카 모시족의 사례를 중심으로>, 가와다 준조, 논형, 2004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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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의 자손들이 영원히 에덴 동산을 그리워하듯이, 다양한 근대 비판들이 대안을 고민할 때 흔히 원시 시대를 돌아보게 된다.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에서부터, 원시 공산주의 사회, 선물경제(Gift Economy), 심층 생태주의까지, 그런 예들을 사상과 운동의 영역 곳곳에서 마주치게 된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게 될 것 같아 다소 주저되지만, 정보에 대한 필자의 인식도 비슷하다. 정보인권 운동을, 그것도 프라이버시라는 이슈로 운동을 하다 보니 비판의 대상이 정보 그 자체로 거슬러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일찍이 많은 문명 비판가들, 정보화 비관론자들이 그런 문제의식을 갈고 닦아왔다. 특히 대표적인 것으로는 여러 가지 통계와 자료를 통해 정보 과잉 현상을 실증한 데이비드 솅크의 <데이터 스모그>(정태석·유홍림 옮김, 민음사, 2000)가 있다. 하지만 비판은 근본적일 수 있었지만 대안은 이야기되지 못했다. 정보 과잉은 비판할 수 있었지만, 적정 정보가 어떤 상태이며 이를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지 혹은 지금의 정보가 아닌 다른 형태의 의사소통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이야기되지 않았다.

이 책을 스쳐 지나지 못하고 집어든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문자가 없는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을 나누었는지,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지는 않는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서아프리카의 모시족 사회가 문자 없이 음성, 혹은 큰북을 통해 역사를 전승하고 있는 사회이긴 하지만, 주된 관심은 의사소통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소통되고 있는 역사의 내용이다. 대부분의 내용이 그 사회의 역사의 흐름, 그리고 정치·사회상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문자 없는 사회의 의사소통’이라는 저자의 문제의식만큼은 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장 <문자사회>에서 저자는 의사소통 수단으로써 문자의 특성과 의의 및 한계를 편견없이 설명하고, 이어 커뮤니케이션이 세계적 범위로 확대되어 가는 맥락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분석한다.

물론, 본격적으로 의사소통 행위 자체를 분석하려는 시도는 이 책 발간 이후에 쓰여진 논문들에서나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 실린 한국어판 서문, 그리고 일본에서 몇 차례 재출간(이 책의 초판은 1976년에 발표되었다)될 때마다 저자가 쓴 후기나 해제 등을 통해 저자의 생각만은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큰북언어 등 서아프리카의 ‘소리문화’를 ‘문자가 없는’ 문화가 아니라 ‘문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문화로 규정하고 있다.

“이야기의 프로도 그 무엇도 아닌 아이들의 목소리가 아름답고, 말에 개성이 있어서 빛나는 것은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의 문자교육으로 말을 획일화하는 방식으로 배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은 아닐까” “정부나 행정관서로부터의 하달 등, 공용의 연락을 위해서는 편리해지겠지만, 이전의 방언, 마을 고유의 말, 집안 고유의 말, 자신만의 언어가 지녔던 생생한 감정의 표현력과 전달력은 상실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런 저자의 의문들, 소리문화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단순히 원시적 문화에 대한 낭만적 회상이나 문화적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30년도 넘은 문화인류학적 규범으로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정보시대 3부작의 저자 마뉴엘 카스텔은 최근 <인터넷 갤럭시>(한울, 2004)에서 현대 정보사회의 발전 양상을 ‘네트워크의 개인화’로 규정하고는 곧바로 이 양상의 근본적 문제점 하나를 지적한다. 하이퍼텍스트에서 개인적 성격이 증가할수록, 공통의 언어, 공통의 의미를 찾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즉 “자유스럽지만 잠재적으로 자폐증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 양상을 돌파할 수 있는 것으로 ‘예술’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은 언제나 인간 경험의 서로 다르고 모순된 표현 사이에 다리를 놓는 건설자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인터넷 상에서 네티즌들이 장문의 논설에 대해 ‘석 줄로 요약해달라’며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나 패러디에 열광하는 것을 보며 필자는 카스텔의 주장을 떠올리곤 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소리나 그림을 통해 소통해온 무문자 사회들의 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어쩌면 대안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한 하나의 중요한 과정일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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