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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호 표지이야기 [대 학, 정 보 화 i n g]
지문 인식 좌석 배정기, 도서관 도입 늘고 있어
모 대학, 생각없이 지문 인식기 도입해 학내 소란 ... 대학 졸속 행정 문제로 지적

이상진  
조회수: 2813 / 추천: 52
지난 7월 말경 서울시립대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7월 29일 지문 인식기가 부착된 무인 좌석 배정기가 도서관에 들어 온 것이다. 애초 지문을 수집하지 않겠다던 학교 당국의 약속이 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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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시립대 중앙 도서관 측은 도서관의 자리 부족 현상을 해결하겠다는 취지로 무인 좌석 배정기를 들여오기로 총학생회(이하 총학)측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지문 인식기는 활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총학 측도 이를 믿고 무인 좌석 배정기 도입에 찬성했다.

따라서 지문 활용 무인 좌석 배정기가 아무런 예고 없이 설치되자 총학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즉각 도서관 측에 질의서 및 항의 서한을 보내고 철거를 요구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경위를 모르는 도서관 이용자들 또한 의아스런 반응들을 나타냈다. 한 학생은 “도서관 이용하는데 지문까지 찍어야 하나(?)”라며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반 학생들 중 몇몇은 총학에 “어떻게 된 거냐”며 문의를 하며 매우 분개해 하기도 했다. 이들 학생들은 총학과는 별도로 서울시에 지문 활용에 대한 입장 및 기계 설치 배경에 대한 공개 질의서를 보내는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시립대는 국공립대로서 서울시 관할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너무나 허무했다. 8월 4일 총학과의 면담에서 중앙 도서관장은 애초 약속대로 지문은 활용할 계획이 없음을 재차 확인시키면서, 지문 인식기가 부착된 기계에 대해 “납품 업체에서 이런 기계도 있다고 보내줘서 같은 값이면 (미래에) 쓸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냥 들여온 것일 뿐”이라고 해명한 것이다. 이를 지켜본 한 학생(22, 법학부 3)은 “학교 행정 당국의 불성실한 태도에 화가 난다”며 쓴 웃음을 짓기도 했고, 또 다른 학생(24, 행정 4)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행정을 맡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주먹구구식 행정 운영에 대해 얼굴을 붉혔다. “않쓸테니 걱정말라”는 도서관측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8월 5일 결국 지문 인식기는 배정기로부터 완전히 제거됐다. 도대체 ‘혹시나’ 하는 생각은 왜 한 것일까.

한편 철거 후 이에 대한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이 총학 홈페이지에 올라오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학생들의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과 학교측의 불성실한 태도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냈고, 인식기가 철거된 것에 대해서는 “대안없이 일방적으로 지문 인식기를 설치한 학교 행정이 먼저 문제”라며 잘됐다는 분위기다. 반면 “그냥 지문인식기 설치하지, 뭐 개인정보에 돈싸리라도 들었나”(구린내) 등 호들감 떤다는 의견과 함께 “대한민국은 이미 주민번호와 지문으로 모든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뚱순이)는 현실론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논쟁은 학교 당국의 지문 인식기 설치에 대한 찬반 논쟁이 아닌 개인 정보의 의미와 정보 인권을 위한 논의의 장으로 전환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그냥 다행스럽다고 넘기기에는 석연치않다. 비록 활용 계획이 없었던 사례였다 하더라도 대학이 얼마나 손쉽게 지문 활용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지, 그리고 공급 업체의 납품 방식이 어떠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양측 모두가 한마디로 주먹구구식이었다. 앞으로 기계를 생산·납품하는 공급업체부터 단속하지 않는다면 무책임한 행정 절차에 끼어 시립대와 같은 허무맹랑한 사건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을 것이다.

구체적인 실태 조사 필요

무인 좌석 배정기는 은행 대기 번호처럼 기계가 좌석 번호를 부여하는 기계다. 그러나 이를 위해 주민등록번호 또는 지문과 같은 민감한 개인 정보를 취급하는 것을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7월 19일 인권침해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국공립 대학 도서관을 포함한 공공 도서관만을 대상으로 조사된 것으로 사립대 도서관의 경우 실태 조사가 아직 이뤄지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사립대인 국민대와 한성대 사례는 주목할만하다. 이들 사립대 학교는 지난 1학기에 기계를 설치해 지문을 수집·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처럼 실용화 단계에 들어간 후에도 지금까지 아무런 마찰도 없다. 이는 학생들이 지문 활용 기계의 필요성을 오히려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주민등록번호 및 지문 활용 사례가 일반 공공 도서관과 비교해 대학 도서관이 적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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