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5호 표지이야기 [대 학, 정 보 화 i n g]
학내 정보 인권, 지금은 걸음마 중
정보화 사업 추진 단계에서부터 개입해야...

도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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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교 담장 너머로 정보 인권에 대한 일도 많고 말도 많은 것 같다. 크게는 네이스(NEIS)가 있었고, 경찰청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나 수원시 지문 인식기,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강남구 CCTV 관제센터 설치도 있었다. 이 일련의 사건을 보면 사회의 전반적인 흐름이 편리함이나 유용함을 근거로 개인의 정보를 임의로 수집하고 이용하는 것이 일반화되는 있는 듯하다. 그리고 학내에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미 많은 학교에서 정보 인권을 침해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이는 서울대도 예외가 아니었다. 작년에는 RF-IC칩 내장(스마트 카드) 학생증을 의무 발급하려 했다. 뿐만 아니라 수업 모습이 CCTV를 통해 교실 밖에서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강의실이 있는가 하면, 공대에는 홍보를 목적으로 몇 대의 카메라를 통해 학내 모습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기숙사에 시범적으로 손등을 활용한 생체 정보 인식기가 설치되기도 했다. 한편 도서관도 앞으로 지문을 활용한 무인 좌석 배정기를 도입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산적한 현안 문제들

대세라고 부르는 이런 정보화 주류의 흐름 속에서 이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작년에는 RF-IC칩 기반 학생증의 발급 및 사용 확대 방침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 끝에 ‘서울대 학생증의 미래에 대한 합의회의’를 대학 본부와 총학생회 공동 주최로 열었다.

‘합의회의’에서는 RF-IC칩 기반 학생증의 일괄적인 발급에 제동을 거는 성과뿐만 아니라 학생 정보와는 관련없는 주민등록번호를 2004년 발급된 신규 학생증에서 삭제하는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공대 건물 밖에 설치된 카메라에 대한 문제제기를 중심으로 정보 인권 실현을 위해 결성된 반감시 모임 ‘뒤통수’의 활동도 있었다. 공대 건물 밖에 설치된 카메라 철거를 위한 서명운동을 진행하면서 무분별하게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정보 인권을 재확인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사례들은 최근 몇 년간 학내에서 아무런 거리낌없이 진행되고 있던 정보화 과정에 대해 문제의식을 모으고 표출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이런 계기를 통해 서울대 내에서는 미약하나마 정보 인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문제 제기가 이루어졌고 생각한다.

학내의 정보 인권 의식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다. 이제 막 주어진 상황을 인식하고 문제제기가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본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학내에서의 정보화 과정은 전진하고 있을 것이다. 서울대의 경우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할 문제는 아직도 철거되지 않은 공대 건물 밖 카메라와 기숙사에 설치된 손등인식 출입기의 철거 문제가 있다. 또 주민등록번호와 학번만 알면 학생들의 학적 관련 증명 서류를 발급해 주는 증명서자동발급기의 개선도 시급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와 같은 논의가 확산되기도 전에 사회의 큰 흐름을 따라 휩쓸려 가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안을 위한 한 가지 생각

인권 침해인지 아닌지 고민해 볼 겨를도 없이 물밑을 타고 일상 속으로 잠식해 들어오고 오고 있는 정보 기술과 정보화 과정 속에서 학교도 결코 안전하지는 않다. 이러한 흐름에 문제제기를 하고 고쳐나가는 노력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그 배후에는 학교에서 하는 일인데 학생들에게 나쁜 일을 하겠냐는 막연한 믿음이 존재한다. 또한 개인정보를 더욱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하면 학내에서 더욱 편하게 생활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도 주를 이룬다. 특히 학생증을 이용한 출입 시스템 구축과 관련해서는 이런 논리가 쉽게 힘을 얻고 한다.

또한 이런 편리와 안전에 대한 막연한 믿음 외에도 바깥 세상의 정보화 과정이 정보 인권 침해에 대한 주체적인 문제 의식을 흐리게 한다. 학내에서의 정보 인권에 대한 의식은 결코 사회의 전반적인 의식과 크게 다를 수 없다. 오히려 걱정이 되는 것은 이러한 학내에서의 경험이 개인 정보의 일상적 수집을 익숙한 것으로 만들고 기계와의 소통에 익숙해진 인간으로 내면화시키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의 주요한 생활 공간인 학교에서부터 그 노력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학교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정보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해 사안별로 접근하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학생증과 관련된 문제를 논의하면서 느낀 것은 학내의 전반적인 정보화 사업 진행 과정의 일부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국지적인 문제 제기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유에서 작년 ‘합의회의’에서는 대학본부에 사업 기획에서부터 프라이버시 영향 평가 등을 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 보호 기구 설치를 권고했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합의회의’ 와 같이 학생들의 참여 속에 프라이버시 영향 평가를 할 수 있는 제도와 함께 사업추진 단계에서부터 정보 인권 침해 요소를 찾고 시정할 수 있는 협의체 또는 기구가 학내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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