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5호 사람들@넷
‘자전거면 충분하다’
두 바퀴로 행복한 내일을 달리는 사람들

지음  
조회수: 4408 / 추천: 58
도시의 자동차가 모두 자전거로 바뀐다면 어떨까? 아니 자동차로 가득한 도로에 한 차선만이라도 자전거로 채워진다면 어떨까? 자동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독한 매연을 마시지 않으며 달릴 수 있다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더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 그러면 도시의 도로는 보다 안전하고 쾌적해질 것이고, 우리들의 삶은 훨씬 건강하고 행복해지지 않을까?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꿈을 달린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들은 자전거가 누비는 도시를 먼 미래의 일로 미루지 않는다. 한 달에 한번씩 그들은 도시 한복판에서 그들이 바라는 내일을 오늘에 실현한다. 깃발과 피켓을 달고 차선 하나를 차지한 채 형형색색의 자전거 수십 여대가 도로를 질주한다. 자동차에 점령당한 도로와 그로 인해 병든 도시에 항의하는 시위이며, 자신들의 꿈이 정당하고 충분히 현실 가능한 일임을 증명하는 퍼포먼스인 동시에 그 자체로 즐겁고 행복한 그들만의 축제이다.

자전거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지난 8월의 셋째 주 토요일인 21일 오후 4시 광화문 앞 열린시민마당에는 어김없이 자전거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이 ‘두발과 두 바퀴로 다니는 떼거리들’, 곧 발바리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거의 전문 선수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제 처음 도로를 달려보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이 다양한 만큼 그들이 타고 있는 자전거도 다양하다. 산악형 자전거도 있지만, 싸이클도 있고, 바구니와 짐받이가 달린 자전거, 조그맣게 접히는 자전거, 앞바퀴가 두 개인 자전거, 삼각형 모양의 자전거, 누워서 타는 자전거까지.

이렇게 모여 도시 한복판을 달린다. 율곡로를 따라 동대문까지, 다시 종로를 통해서 서대문, 아현동을 지나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까지.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가장 느린 사람이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정도의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누구라도 달릴 수 있다. 40-50여대의 자전거가 차선하나를 완전히 차지하고 달리는 장면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차선 하나를 차지하고 달릴 권리가 있으면서도 자동차에 밀려 길가로, 인도로 달려야 했던 각각의 자전거들이 무리를 지어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찾은 것이다.

자전거의 권리를 되찾자

발바리의 떼거리 잔차질은 2001년부터 시작했다. 2001년 여름에 비 때문에 취소된 적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나와서 기다리다가 그냥 되돌아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뒤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반드시 진행하자라고 결의했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고 한다. 서울뿐만 아니라 수원과 공주, 인천 등지에서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는 발바리들의 질주가 벌어진다.

떼거리 잔차질 말고도 발바리는 자전거 세상을 만들기 위한 현실적인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발바리 홈페이지에서는 ‘차선 하나를 잔차에게!’‘잠수교를 인도교로!’‘발바리공원 만들기’‘자전거도로지도 만들기’‘대중교통에 잔차 싣고타기’‘안전한 자전거보관대와 실내보관소를 만들자’ 등의 프로젝트들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그들의 주장과 함께, 해외의 사례에 대한 분석과 그들이 두발과 두 바퀴로 다니면서 조사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것은 거창한 주장과 심오한 운동이기 이전에 자전거를 더 즐겁게 탔으면 하는, 자전거를 더 많은 사람들이 탔으면 하는 발바리들의 소망이다.

발바리가 모이는 것이 아니라, 모이는 사람이 발바리다

발바리들이 자전거를 타는 목적 역시 다양하다. 차비를 아끼려는 사람, 살을 빼려는 사람, 운동을 하려는 사람, 환경을 지키려는 사람, 도시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 친구와 함께하기를 원하는 사람 등등. 그러나 그들의 분명한 공통점 하나는 자전거를 탄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즐거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여럿이 함께 탄다면 그 즐거움은 몇 배 더해진다. 그리고 서로 어울리면서 그들의 목적 또한 서로 어울린다.

발바리는 여타의 인터넷 동호회와는 달리 운영자나 조직형태가 없다. 자유롭게 즐기고 싶은 만큼 참여하는 개인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된다. ‘발바리’라는 이름 역시 동호회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축제의 이름이다. “발바리는 동호회가 아니다”라고 워커(발바리 아이디)는 강조한다. 그는 “떼거리 잔차질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발바리”며 “발바리 인터넷 사이트에 글 하나만 올려도 발바리”라고 말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각의 목적으로 다양한 자전거를 끌고 발바리에 나오는 것은 이러한 독특한 모임 형식 덕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발바리가 왜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들은 경쾌하게 대답했다. “자전거가 좋아서요.” “자유로와서요.”“떼지어 타면 재밌잖아요.”“어린애도 함께 할 수 있어서요.”

당신도 발바리다

자동차는 전체 에너지의 약 25% 가량을 소비하며 서울 대기오염의 80%를 차지한다. OECD 회원국들의 인구 절반 이상이 50dB 이상의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연간 교통사고 사상자수는 40여만 명, 사회적 손실은 15조에 달한다. 자동차 운전자는 깨어있는 열 여섯시간 가운데 약 네 시간을 차 속에서, 또는 차를 몰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데 소비한다. 그럼에도 서울시 자동차의 평균 속력은 13km/h를 넘지 못한다. 우리는 13km/h의 속도와 편리함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전거는 시내에서 10-20km/h의 속도를 낼 수 있으며, 100kcal의 열량을 소모할 때 4800m를 갈 수 있어서 자동차의 85m에 비해서 56배 더 효율적이다. 자동차보다 저렴하고 효율적이며 심지어 빠르기까지 하다. 훌륭한 대안 녹색교통으로써 자전거의 장점을 모두 열거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장점보다도 더 매력적인 것은 자전거를 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자신의 팔과 다리로 도저히 못 갈 것 같았던 거리에, 도저히 못 오를 것 같았던 언덕에 이르렀을 때의 느낌을, 자동차 유리를 통해서는 느낄 수 없었던 대지와 바람을 그리고 그것의 소중함을 자신의 오감으로 느끼며 달리는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당장 핸들을 잡고 페달을 밟아보는 건 어떨까? 공원과 들판을 달리고 당당히 도로를 달려보라. 뭔가가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이제 당신도 발바리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