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5호 기획 [당 신 의 위 치 정 보 가 새 고 있 다]
노동 탄압과 허술한 정보인권 보호가 낳은 비극
삼성 노동자 핸드폰 불법 복제를 통한 위치추적 사실 밝혀져

지음  
조회수: 3739 / 추천: 47
핸드폰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친구찾기’ 서비스 가입자가 360만 명을 넘어섰다. 핸드폰 전체 이용자 수가 3600만 명이므로 10명 중 한 명은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친구찾기’ 서비스에 심각한 허점이 있음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위치추적 서비스, 노동자 감시에 악용

지난 7월 13일 삼성 SDI 노동자들과 산재 가족 등 6명이 최근 3개월 이상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핸드폰을 이용해서 650여 차례에 걸쳐 위치 추적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위치추적에 동의한 바 없으며, 이들의 위치를 추적한 핸드폰의 소유자는 11개월 전에 숨진 사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추가적인 제보가 뒤를 이었다. 7월 22일에는 삼성SDI 부산공장 사무직원으로 근무하다가 1999년 경 퇴사한 이모씨의 불법 복제 핸드폰을 이용해서 9명의 삼성 노동자들에 대해 3개월 동안 총 325회에 걸쳐 위치를 추적한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까지 이와 관련해서 고소장을 접수한 삼성 노동자들은 모두 12명이며, 이밖에도 고소장은 접수하지 않았지만 피해사실을 밝힌 사람들은 20여명에 달한다.

피해자 대리인인 법무법인 다산의 김칠준 변호사는 “현재 노출된 사람들이 모두 삼성의 전현직 노동자들이거나 삼성과 직접 관련된 사람들이라는 점, 특히 이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모임을 가졌던 시점에 집중적으로 위치 찾기가 이뤄졌다는 점, 위치추적 발신지가 삼성 공장이 있는 수원이라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삼성에 의한 조직적인 노동탄압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설명했다.

정통부와 이통사의 안일한 정보인권의식

그동안 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사는 휴대폰의 고유한 전자일련번호(ESN)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불법복제가 불가능에 가까우며, ‘친구찾기’ 서비스의 보안은 완벽하다고 말해 왔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핸드폰을 불법복제 하기 위해서는 ESN이 반드시 필요하며, ESN만 있다면 소프트웨어적인 조작만으로 몇 분만에 간단히 복제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핸드폰이 불법복제됐다는 사실은 ESN을 관리하는 이동통신사의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 알려진 사실에 따르면, ESN은 이동통신사의 말단직원이나 A/S직원도 쉽게 접근해서 알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개인의 핸드폰이 불법복제되어 도청당하거나, 위치추적을 당할 수도 있는 대단히 중요한 정보인 ESN에 대한 정보통신부의 관리감독과 이동통신사의 정보보안이 허술했던 것이다.

또한 피해자들은 의심을 갖고 이동통신사에 문의하기 전까지 자신이 위치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공지받은 적이 없었다. 결국 정보주체가 의심을 갖고 굳이 확인하기 전까지는 자신의 핸드폰이 불법 복제됐는지, 자신이 위치추적을 당했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터진 후 피해자들은 이동통신사에게 누가, 언제, 어디서 자신을 추적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이런 사실은 불법적인 경우가 아니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현행 ‘친구찾기’ 서비스는 단문메시지로 날아온 메시지에 확인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모든 동의 절차가 끝나버린다. 이후로는 누가 언제 어디서 위치추적을 했는지, 정보주체는 아무런 사실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정보주체는 자기정보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 보장받고 있지 못하는 셈이다.

결국 이 사건은 대기업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동 탄압과 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사의 안일한 정보인권의식이 빚어낸 비극이다. 이 사건 이후로 뒤늦게 정보통신부는 관계 법령을 수정해서 동의절차와 상호인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고, 이동통신사는 ESN의 관리를 신중히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말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