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6호 기획 [현 행 저 작 권 제 도 의 한 계 를 극 복 한 다]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정보공유 라이선스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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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창작물의 자유로운 공유를 위한 ‘정보공유 라이선스’가 드디어 세상에 나온다. 정보공유연대 IPLeft는 현재 정보공유 라이선스 1.0을 홈페이지(http://www.freeuse.or.kr)에 공개하고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선언을 받고 있으며, 10월 4일에 공식적으로 오픈했다. 정보공유연대는 지난 해 말부터 국내외 정보공유운동 모델을 연구해 왔으며, 2004년 12월 17일 ‘국내외 정보공유운동 모델과 Open Access License’ 토론회를 통해 창작자가 미리 저작물의 이용 조건을 명시해주는 대안적 라이선스의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이후 지난 몇 개월 동안 국내 상황에 맞는 공개 라이선스의 개발에 노력해왔으며, 이제 비로소 그 결실을 보게된 것이다. (공개 라이선스에 대해서는 월간 <네트워커> 2004년 1월호 ‘집중분석’ 기사에서 다룬 바 있다.)

“정보공유 라이선스, 저작자와 이용자 연결하는 도구”

정보공유 라이선스는 현 저작권 체제의 한계로부터 시작되었다. 현행 저작권은 저작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창작과 동시에 복제권, 전송권 등의 배타적 권리를 자동으로 부여하며, 그 권리는 저작자 사후 50년 동안 지속된다. 그러나 저작자의 의사는 다양할 수 있다. 저작자 사후 50년까지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주는 저작물도 많지 않을뿐더러, 모든 저작자가 경제적 보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저작물의 자유로운 이용을 허락하는 저작자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이 창작한 저작물 중 일부에 대해서만 저작권을 행사하려는 저작자도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저작자의 의사는 다양하지만 이용자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저작자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이를 알 방도가 없다. 따라서 저작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의지가 없음에도 현행 저작권 체제 안에서는 저작물의 이용이나 확산이 저해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디지털 도서관’일 것이다. 현행 저작권은 저작자에게 ‘전송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도서를 디지털화했음에도 이를 원격으로 열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원격 열람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수많은 저작자에게 일일이 허락을 받는다는 것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될뿐더러 때로는 불가능하기도 하다.

정보공유 라이선스는 저작자가 미리 저작물에 대한 이용 허락과 이용 조건을 명시해줌으로써 이와 같은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보공유연대 운영위원인 양희진씨는 “정보공유 라이선스는 저작물을 무료로 나누려는 저작자와 자유롭게 활용하려는 이용자를 연결하는 편리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보공유 라이선스, 창작자에게도 도움 주는 것

정보공유 라이선스는 저작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배타적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저작자가 단지 ‘희생’하는 것은 아니다. 창작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이 보다 많은 사람에게 의미있게 이용된다는 것은 분명히 가치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보공유 라이선스는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보다 널리 확산시키고,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 양희진씨는 “정보공유 라이선스는 저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의 이용 방식이나 범위를 명확하게 설정하는데 도움을 준다”며, 보다 많은 저작자가 정보공유 라이선스를 채택하게 된다면 “이는 근본적으로 자신이 또 다른 창작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자가 정보공유 라이선스를 채택하려면, 저작물을 공표하거나 공표한 이후에 정보공유 라이선스를 채택하였음을 홈페이지 등을 통해 명시하면 된다. 정보공유연대는 이를 상징적으로 표시하기 위해 ‘정보공유 라이선스 배너’를 제작하였다. 저작자는 저작물에 배너를 부착하고 라이선스의 인터넷 주소를 링크시키면 된다.

앞으로의 과제는 ‘얼마나 많은 창작자가 정보공유 라이선스를 채택할 것인가’이다. 정보공유연대는 10월 4일 개통되는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공유 라이선스의 취지와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한편, 창작자들이 라이선스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예정이다. 또한, 정보공유 라이선스를 채택한 저작물들을 이용자들이 쉽게 찾고, 접근할 수 있도록 ‘정보공유 디렉토리’를 운영한다고 한다. 정보공유 라이선스를 채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우선적인 대상은 시민사회단체 홈페이지, 비영리 창작자 집단, 학술 공동체 등이다. 정보공유연대는 매뉴얼, 티셔츠, 버튼 등을 제작하여 적극적인 홍보에 나설 예정이다. 블로그가 활성화됨에 따라 블로그를 통해 저작물을 공개하는 저작자를 중심으로 정보공유 라이선스를 채택한 블로그가 늘어날 전망이다.

자발적인 아카이브 구축 필요

또 하나의 과제는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이다. 정보공유 디렉토리는 이미 인터넷 상에 올려진 저작물의 인터넷 주소 목록을 제공할 뿐이지, 개별 저작물들을 직접 올려놓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는 아니다. 이미지, 사진, 영상, 학술 등 각 저작물 영역마다 저작물들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검색·접근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일명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은 별개의 커다란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해외에서는 ‘인터넷 아카이브(Internet Achive)’라는 사이트(http://www.archive.org/)가 이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각 저작물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개인 혹은 단체에서 자발적으로 이러한 역할을 자임할 필요가 있다.

정보공유 라이선스는 ‘나의 지식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자 하는 선의’에 기반하여 작동된다. 나의 지식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과 창작자의 명예를 지켜주는 예의가 지켜진다면, 그야말로 ‘(저작권)법 없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도래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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