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6호 과학에세이
대덕R&D특구 특별법을 아시나요?

이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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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덕연구단지기관장협의회를 포함한 몇몇 단체가 공동으로 연구원들과 교수, 벤처종사자들을 대상으로 대덕연구개발특구육성에관한특별법(이하 R&D특구 특별법) 지지서명운동과 지지모임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R&D특구 특별법의 입법 취지를 홍보하고 공감대와 당위성을 확산하기 위해 9월말까지 지지모임 결성을 완료한다는 것이고, 공공기관들이 앞장서서 직원들의 서명을 독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노동조합에서는 즉각 논평을 발표하고, 정부 산하 기관이 나서서 이용한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은 R&D특구 특별법에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들을 왜곡하여,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대체 대덕R&D특구 특별법이 무엇이길래? 대덕연구단지를 R&D특구로 지정하여, 여기에 집중되어 있는 우수 연구인력과 R&D인프라를 토대로, 연구개발 혁신과 기술의 상업화를 촉진하여 세계적 혁신클러스터로 육성하기 위해 국내의 여타 지역과는 차별화된 제도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2002년에 대전시가 대덕벨리를 속칭 경제특구로 지정해줄 것을 중앙정부에 건의했다가 재경부,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경제특구적 요소를 차용한 R&D특구 지정을 요청하였고, 2003년 12월 5일 대덕연구단지 30주년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이를 전격적으로 수용함으로써 본격화된 애물단지이다.

왜 애물단지냐고?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에 밀려 특히 독소조항으로 지목되었던 교육, 의료시장의 개방과 관련한 조항은 대체로 삭제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지만,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결과가 상업화에 실패하고 있어서 30년이나 투자했는데도 본전을 뽑지 못하고 있으니, 연구소기업을 설립하고 상업화 종합지원기관을 설치하는 등 R&D 상업화 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이미 정부출연연구기관은 90년대 이후 공공연구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찾기보다는 당장에 돈이 되고 기업활동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하도록 강요받아왔다. 특히 97년 IMF 이후 연구원들은 초유의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구조조정 방침에 밀려 연구소를 아예 떠나거나, 벤처기업을 설립하거나, 외국으로 취업하거나, 직업 자체를 바꾸는 등 신산스럽고 파란 많은 역정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여전히, 앵벌이 과제 수주경쟁에 내몰리고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 안정적 연구환경을 해치고 연구의 질이 악화되는 등 연구역량이 급속도로 위축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판에 무조건 상업화를 위한 연구로 일로매진하라니?

조장(助長)이라는 말이 있다. 모내기를 하고서 벼를 빨리 자라게 하기 위해 벼의 순을 잡아 뽑아, 결국 벼를 아예 죽여버린 이야기에서 나온 말이다. 상업화를 위한 것이든, 기초 원천기술의 확보를 위한 것이든, 지식의 축적을 위한 것이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들쭉날쭉하는 정책으로 연구원들의 신명을 가라앉힌다면, 설령 아무리 좋은 법이 만들어지더라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R&D특구 특별법이 조장(助長)의 또 다른 사례로 남지 않도록 정부는 각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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