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6호 미디어의난
공동체라디오, 더 멀리 그리고 더 가까이

김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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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5일, 방송위원회는 ‘소출력 라디오방송 시범사업 추진’ 공고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논의되고 추진되어 왔던 소출력 공동체라디오방송이 제도적 영역에서 출발할 수 있는 본격적인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리 많은 숫자라고 볼 수는 없지만, 오랜 시간 이 방송이 현실화되기만을 기다려왔던 소수의 개척자들에게는 가뭄 끝 단비와 같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다만 방송국 추진 일정이 조금 무리다 싶을 만큼 급하게 짜여졌다는 점은 다소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방송위원회에서는 9월 15일의 공지를 통해 처음으로 소출력 공동체라디오방송의 구체적인 계획과 지침을 공개한 셈인데, 공모 마감일자는 그로부터 단 1개월 후인 10월 15일로 정해진 것이다. 방송국이라는 녹록치 않은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준비 내용들을 감안하면 이는 지나치게 촉박한 감이 있다.

소출력 라디오방송 공모사업 준비

어쨌든 촉박한 일정 속에서도 전국의 몇몇 지역에서 소출력 라디오방송 공모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그 중에는 공동체 사회가 비교적 튼튼하게 자리 잡은 지역도 아직은 조금 부족한 지역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지역이 없는 개척자들일 것이다. 필자가 준비팀으로 참여하고 있는 서울 관악구 지역의 공동체라디오 준비모임도 마찬가지다. 관악구 지역은 오랜 시간동안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비교적 튼튼하고 근성 있는 공동체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지역이다. 그러한 풍부한 지역사회의 공동체를 바탕으로 현재 공동체라디오방송국의 설립을 위한 노력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을 준비하는 지역이라면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믿음만은 물론 아니다. 어차피 다양한 주민들의 견해와 이해가 공론의 장으로 등장하면 그만큼의 갈등도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며,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은 시절, 게다가 서로에 대한 무한 경쟁이라는 피말리는 시스템 속에서 고된 노동을 통해 살아가야 하는 조건 속에서, 공동체의 자발성에 의존해야만 하는 공공 영역이 얼마나 활발한 모습을 갖추게 될 지는 아직 미지수인 것이다.

‘사업을 따내는 것’은 고민의 출발점일 뿐

아직 적지 않은 미지수가 존재함에도 여러 시민사회운동단체들과 이 일에 대해 논의를 하면 대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는 편이다. 인터넷과 관련하여 기술적인 차원의 ‘걱정’도 피력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걱정으로부터 한 걸음만 물러나면 다양한 기대와 ‘당연한 협력’의 의사를 드러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선한 의지로만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는 없는 법. 협력과 동참과 연대의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도 조금 추상적인 측면이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인식의 게으름이라기보다는 아마도 일의 생소함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공동체라디오방송에 대해 그동안 이상하리만치 아무도 주목을 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상할 정도’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에서 이러한 ‘새로운’ 미디어의 가능성을 공론화시키기 전까지는 이에 대해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미디액트가 이를 공론화시키자 뜻밖에도 너무 많은 이들이 이에 대해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라디오 방송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사실 ‘사업을 따내는 것’은 고민의 출발점에 간신히 선 것일 뿐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다. 이번 사업을 통해서 ‘이제는 주파수의 공공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언감생심이다. 그리고 일이 뜻대로 되어서 정보통신부로부터 주파수를 할당받게 된다면, 바로 그 순간 방송국의 운영자들은 특정한 견해를 가진 개인이 아니라 다수의 견해를 대리(代理)하고 조절하는 ‘공인(公人)’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도 유념해야 할 내용이다. 운영자들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욕구와 지역 사회가 요구하는 공공성의 내용이 합치를 이룰 때까지 고민하고 양보하고 또 고민해야만 하는 낯설고 힘든 임무가 시작되는 것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합리적인 조직적 결합 이뤄내야

따라서 공동체라디오 방송국의 준비는 ‘지인(知人)들끼리’ 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함이 마땅하다. 저마다의 영역에서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들과 우선적으로 연대해야 할 것이며, 각 공동체 및 단체들의 사정에 맞게 운영의 영역에서, 또 편성의 영역에서 합리적인 조직적 결합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방송의 편성 역시 기존의 메이저 방송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던 지역적인 문제와 청취율, 광고판매 등의 잘못된 속사정으로 배제되어 왔던 소수자들의 문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하여, 지역의 공공성을 온전하게 확보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는 두말 할 것 없이 편성 원칙의 최소한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방송위원회는 소출력 라디오방송 시범사업자가 될 수 있는 자격을 ‘법인’으로 제한하였다. 그러나 소출력의 사용이 주파수 및 커뮤니케이션의 민주화라는 기본 원칙에까지 이르게 하려면, 향후에 이러한 제한도 어느 선까지 폭넓게 완화되어야 할 것이다. 공동체의 불모지에서 라디오라는 새로운 매체를 통해 건강한 공동체의 탄생을 꿈꾸는 작고 어린 존재들에게 ‘법인’이라는 제도적인 벽은 아직 너무 높기 때문이다. 아직은 모두 떡잎일 뿐인데 말이다. 지금 비록 작은 잎사귀라도, 혹은 지금은 마치 우람 그 자체인 듯 하더라도 마지막에 가서 어느 놈이 훌륭하게 자라나, 장대한 가지를 저 높은 하늘로 힘차게 뻗어 올릴지 우리는 모른다. 그에 대해 섣불리 판단할 근거가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좀 더 많은 가능성이 좀 더 많은 이들의 손에 쥐어질 수 있기를 희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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