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6호 Cyber
긴급통신제한조치, 봉인절차 등 입법적으로 해결돼야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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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예를 들어보자. 검찰은 국가보안법 위반죄의 혐의가 있는 ‘대상자’를 기소하려고 증거를 수집 중이다. 다른 증거를 얻기 어려운 검찰은 대상자의 ‘전화통화’를 감청하려고 한다. 일단 검찰은 법원에 대상자 명의로 되어 있는 집 전화의 통화를 감청하고자 ‘통신제한조치허가’를 받는다. 그런데 대상자의 남편인 ‘제삼자’와 ‘상대방’의 통화를 감청하던 중 엉뚱하게도 제삼자의 국가보안법 위반 증거와 대상자의 범인은닉죄에 대한 증거가 발견된다. 하지만 대상자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죄 증거를 찾지 못하던 검찰은 통신제한조치를 몇 번 연장하여 계속 감청하다, 이번에는 당초 허가내용에는 없던 대상자의 ‘대화녹음’을 추가하여 연장을 청구하였고 법원에서 연장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대상자의 대화내용을 녹음하던 중에도 제삼자의 국가보안법 위반 증거를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수사기관이 대상자와 제삼자를 기소하는 과정에서 감청 대상이었던 통화내용이 일부 언론에 알려지고, 대상자의 정치적 경쟁자이던 ‘경쟁자’는 대상자의 통화내용을 ‘기자간담회’에서 공개한다. 자, 여기서 누가 어떤 죄목으로 벌을 받게 될까? 다른 증거는 없다고 하고, 현재까지의 판례를 전제로 보면,

▶ ‘대상자’의 범인은닉은 국가보안법과의 관련성이 있는 경우 유죄,
▶ ‘제삼자’의 국가보안법위반은 무죄,
▶ ‘경쟁자’의 통신비밀보호법위반은 유죄이다.

통신제한조치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조문을 보자. 통신비밀보호법 제6조에 의하면, 검사는 법원에 일정한 범죄(통신비빌보호법 제5조 제1항에 규정되어 있다)에 대하여 일정한 요건이 있는 경우 통신제한조치의 허가를 청구할 수 있다. 법원은 그 종류와 목적, 대상, 범위, 기간(2개월을 초과하지 못한다), 집행장소와 방법을 특정하여 허가서를 발부하며, 수사기관은 허가 요건이 존속하는 경우 2개월의 범위 안에서 통신제한조치기간의 연장을 청구할 수 있다. 이러한 통신제한조치의 절차를 거쳐서 얻은 자료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는 통신비밀보호법 제12조에 규정되어 있는데, 제12조 제1호는 통신제한조치의 목적이 된 제5조 제1항에 규정된 범죄나 이와 관련되는 범죄를 수사, 소추하거나 그 범죄를 예방하기 위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대상자, 통신제한조치의 목적이 된 범죄일 것을 요구

대상자의 범인은닉죄가 유죄판결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통신비밀보호법 제12조의 해석문제이다. 즉 통신제한조치의 목적이 된 제5조 제1항에 규정된 범죄라는 것이 ‘해당 통신제한조치의 목적이 된 범죄(국가보안법위반죄)’에 한하는지, 아니면 ‘원래 문제가 되어 통신제한조치를 하게 된 범죄에 한하지 않고, 제5조 제1항에 규정된 범죄(범인은닉죄)라면 모두 포함’되는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판결은 아직 없는 듯 하다. 다만 대법원은 “대상자에 대한 통신제한조치로 얻은 제삼자의 감청결과는 대상자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죄나 그와 관련된 범죄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2002. 10. 22. 선고 2000도5461 판결)”라고 하여, 해당 통신제한조치의 목적이 된 범죄이거나 이와 관련된 범죄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삼자, 범위를 초과한 대화녹음과 감청결과는 증거 안 되

제삼자의 국가보안법위반죄 증거는 두개이다.

대상자의 집 전화에 대한 ‘통화감청’중에 얻은 제삼자의 증거에 대하여, 대법원은 “대상자에 대한 통신제한조치로 얻은 제삼자의 감청결과는 대상자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죄나 그와 관련된 범죄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며, 제삼자의 국가보안법위반죄의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하였다(2002. 10. 22. 선고 2000도5461 판결). 통신제한조치의 연장과 관련하여서도 “통신제한조치에 대한 기간연장결정은 원 허가의 내용에 대하여 단지 기간을 연장하는 것일 뿐, 원 허가의 대상과 범위를 초과할 수 없다 할 것”이라고 하면서 “연장결정서에 당초 허가 내용에 없던 대화녹음이 기재되어 있다 하더라도 이는 대화녹음의 적법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판시하였다(대법원 1999. 9. 3. 선고 99도2317 판결). 위 두 판결에 의하면, 원 허가의 대상과 범위를 초과한 대화녹음으로 얻은 증거와 대상자의 통신제한조치에 의하여 얻은 제삼자 통화의 감청결과는,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죄의 증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경쟁자,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한편 “통신제한조치에 의하여 입수된 편지의 존재 및 일부 내용이 이미 압수수색영장 청구과정에서 언론에 공개되었다고 하여도... 이를 기자간담회에서 공개한 것은 통신비밀보호법 제12조 소정의 예외사유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대법원 1999. 4. 23. 선고 99도636 판결)”고 하면서, 이를 공개한 사람들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로 처벌했다. 경쟁자는 위 판결에 의하면 유죄가 되는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의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통신 및 대화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제한은 그 대상을 한정하고 엄격한 법적 절차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통신비밀을 보호하고 통신의 자유를 신장함을 목적’으로 하는 통신비밀보호법의 취지에 맞게 판시하고자 하는 법원의 입장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광범위한 대상범죄, 제한조치 기간, 남용가능성이 많은 긴급통신제한조치, 봉인절차 등은 입법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아, 그리고 혹시 대상자의 국가보안법위반죄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이건 무죄라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수사기관은 대상자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하여 아무런 증거도 못 찾았으니, 아마 기소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대상자는 국가보안법위반죄로는 재판을 받지도 않았을 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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