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6호 영화 [귀 신 과 의 전 쟁 - 알 포 인 트]
손에 피 묻힌 자, 돌아갈 수 없다!
알 포 인 트 <주연 감우성 손병호 오태경 박원상 / 감독 공수창 2004년>

이마리오  
조회수: 3320 / 추천: 72
영화의 한 장면인 주인공 최태인 중위(감우성)가 아오자이를 입은 귀신을 따라 숲속을 헤매이다 맞닥뜨린 거대한 공동묘지 장면을 보면서, 베트남 중부의 투이보 마을이 떠올랐다. 그곳은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던 곳으로 영화처럼 거대한 공동묘지는 아니지만, 그곳엔 수많은 무덤들이 모여 있었고 묘비엔 모두 같은 날짜가 새겨져 있다. 모든 묘비에 똑같은 날짜가 새겨져 있다는 것, 영화보다 더 공포스러운 장면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베트남 민간인 학살지역이 생각났다.

‘실미도’의 감상적 반공주의와 ‘태극기 휘날리며’의 볼거리로써의 전쟁이 극장가를 싹쓸이하고 난 후, 비교적 조용히 개봉한 이 영화는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베트남 전쟁을 다룬 두 번째 영화다. 헐리우드에서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무수하게 만들어질 동안 한국에선 마치 금기의 영역이라도 되는 듯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가 없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전투병과 사상자를 냈던 전쟁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태도 그리고 평가가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없음으로, 어떠한 태도로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누구도 이야기를 해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1992년에 개봉한 ‘하얀전쟁’ 이후 12년 만에 베트남 전쟁을 다룬 또 하나의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1972년 베트남 전쟁의 막바지, 200명의 부대원 중 혼자 살아남은 혼바우 전투의 생존자 최태인 중위는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의 본대 복귀 요청은 철회되고, CID 부대장은 그에게 비밀 수색 명령을 내린다. 6개월 전 작전 지역명 로미오 포인트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8명의 수색대원들로부터 계속적인 구조요청이 오고 있었고, 그 흔적 없는 병사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을 확보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표였다. 3일 후 로미오 포인트 입구, 어둠이 밀려오는 밀림으로 들어가는 9명의 병사들 뒤로 나뭇잎에 가려졌던 낡은 비문이 드러난다. ‘不歸! 손에 피묻힌 자, 돌아갈 수 없다!’ 7일간의 작전, 첫 야영지엔 10명의 병사가 보이고...”(http://cinema.empas.com)

보통 전쟁영화하면 리얼한 총격전 장면이나 웅장한 스케일을 연상하곤 한다. 아마도 헐리우드 전쟁영화들의 영향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러한 전투장면이나 전우애 따위는 눈 씻고 찾아봐도 전혀 없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결국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는다. 따라서 이 영화가 선택한 공포영화라는 장르는 기존의 전쟁영화와 차별성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이면서, 동시에 베트남 전쟁에 대해 아무런 역사적 평가를 내리지 못한 한국사회에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상업영화로써, 전쟁 자체에 대한 평가보다는 전쟁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관객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드는 훌륭한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

이 영화의 공포는 귀신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한 공포이다. 게릴라 전쟁 즉, 누가 적인지, 민간인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전쟁으로 대표되는 베트남 전쟁은 이로 인해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고, 지금의 이라크 전쟁 또한 마찬가지다.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고 문화도 완전히 다른 곳에서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상황, 이것이 공포이며 두려움이다. 전쟁에 대한 정당성이 별로 없는, 돈벌어서 부모님께 논이나 소를 사드릴 수 있다는 소박한 꿈을 꾸며, 베트남이라는 머나먼 전쟁터에 간 우리의 아버지와 삼촌들의 모습은 지금 현재 이라크로 가는 군인들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그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단죄 받는다’는 말이 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 자기반성과 사죄가 없는 상황에서, ‘국익’이라는 명분 하에 또다시 이라크로 젊은이들을 보내는 국가권력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도록 만들고 있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어차피 희생자들은 돈 없고 빽 없고 직장도 구할 수 없는 평범한 우리 주변의 친구이거나 동생이다. 몇 십 년이 지난 후, 또다시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한 ‘알포인트’와 같은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그것만큼 우울한 일을 없을 것이다.

“ ... 내 개인만 하더라도 불과 몇 개월 전의 나와 전쟁을 치룬 몇 개월 후의 내가, 이거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인간으로 내가 변모해 있었던 거야. 어쩌면 그렇게 쉽게, 어쩌면 그렇게 순식간에 내가 그렇게 변할 수 있었던 건가 내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됐어요. 이해를 할 수가 없었어요, 오랫동안.”(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마산 희망연대 김영만 선생님의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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