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7호 사람들@넷
‘좋은교사’의 작은 빛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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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문제라면 열 일 제치고 지도열의를 불사르는 학생부장 마저 포기한 지훈이. 그 아이의 이름을, 담임하게 될 반 아이들 명단에서 발견하던 날, 박경숙 교사는 갑자기 명치끝이 답답해져 옴을 느꼈다. 지훈이는 학생과에 숱하게 불려 다니며 ‘지도 불능’이라는 딱지를 붙인, 소위 학교의 문제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교사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가정방문을 통해 지훈이의 남모를 가정사를 듣고부터, 오히려 더 많은 애정을 갖게 된 것이다.

축구광인 송인수 교사에게는 축구화가 없다. 쉬이 잃어버리거나, 구해도 번번이 인연이 안돼 못 신게 돼서다. 그러던 차에 어느날 송 교사가 결연을 맺은 새롬이와, 반에서 일등은 하지만 뺀질 뺀질하기로 정평이 난 재갑이라는 아이가 송 교사에게 축구화를 선물했다. 축구화가 필요한지 아이들이 알 까닭이 없는데, 희한했다. 게다가 선물한 축구화는, 송 교사 자신이 구해 신어도 맞춰내지 못했던 사이즈를 조롱하듯 맞춘 신발처럼 꼭 맞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편지도 준비했다. 감동적이진 않았지만 신발을 사러 다닌 여정을 자세히 보고한 편지였다. 아무튼 송 교사는 뿌듯했다. 속 없어 보이는 녀석들의 철 있는 행동으로 인해.

“당장 힘을 합해 밀어닥치는 강물 막아야 한다"

우리 교육을 살리고 동료 교사들과 아이들에게 본이 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좋은 교사 운동(http://www.goodteacher.org)’. 앞 예화의 주인공들인 박경숙 교사와 송인수 교사는 현재 ‘좋은교사’의 멤버들이다. 이들 좋은교사의 멤버들은 좋은교사 동호회를 통해 결연을 맺은 아이들과의 일화나, 가정방문 등의 좋은 사례들을 공유하며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일대일 결연 캠페인’의 경우, 작년에 이어 올해 2학기에도 시작, 한해 6만 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현실에서 사회와 교육부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본연의 모토적 계획을 세워나가고 있다. 좋은교사운동의 상임총무인 송인수 교사는 세상에 증오심을 품고 사는 아이, 누군가의 작은 관심에 목말라 하는 아이들, ‘일대일 결연’을 폭우 속 무너진 제방 위로 덮친 빗물을 퍼내는 일에 비유한다. “여름철 홍수가 날 때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며 있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장 힘을 합해 밀어닥치는 강물을 막아야 합니다.” 사실 송 교사는 일선 교사직에서 물러나 현재는 좋은교사운동의 전업 청지기로 일하고 있다. 그의 ‘빗물’ 구호에 힘이 실리는 데에는 이렇듯 실질적인 헌신의 본이 있다.

좋은 교사, 운동가로서의 삶을 산다

사이버 상에서 상당부분 의견과 고민을 공유하지만 좋은교사는 어떠하든 운동단체로서의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펴나가고 있다. 따라서 좋은교사운동은 수입의 대부분을 충당하는 1만원 후원자 1300의 99%가 현직교사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돈만 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 가정방문과 수업평가 등 몸으로 뛰는 운동가의 삶을 살고 있다.

이들 좋은교사 소속 교사들은 또 일선 학교의 동료들과 학생들에게도 본이 되고자 연구에도 남다른 열심을 다한다. 당초 기독교사모임에서 태동한 만큼 캠페인의 상당 부분을 학생들의 윤리교육에 배려하는 눈치다. 어쨌든 이들의 연구를 위한 교과모임은 상당한 진전을 해 나가고 있다. <기독교학교연구회>, <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모임>, <문화예술연구회>, <협동학습연구회> 등으로 구성된 분과모임과 <기독국어교사모임>, <기독수학교사모김>, , <과학교과모임>, <컴퓨터교과모임>, <개발넷> 등으로 구성된 교과모임은 좋은교사가 경직되지 않도록 하는 친목적 역할과 교사들의 진지한 연구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좋은 역할을 해주고 있다.

희망의 열쇠는 교사와 아이들

언제부턴가 ‘스승’이라는 낱말이 희귀해지기 시작했다. 좋은 교사들은,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로 시작되는 스승의 노래는 오히려 교사들의 초라해진 자화상을 떠올리게 하는 가락이 되어 버린 것 같다”며 애석해 한다. 이들은 지금의 교육 현실을 보며 원인을 찾기보다 그 해결을 구하는 데에 집중한다. 그것도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 내부에서 구하고자 한다. 외부의 구조적 원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희망의 열쇠는 역시 학교 내의 교사와 아이들에게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다. 한 마디의 말이 한 아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한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작은 빛이 모든 세상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주변을 밝힐 수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있기 때문에 좋은교사운동은 우리 교육의 뿌리를 살리고자 오늘도 불철주야 뛰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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