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호 영화
‘나는 누구인가?’ 묻는 슬픈 눈의 녹색괴물 : 헐크 (HULK)

이안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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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와호장룡>으로 잘 알려진 대만출신의 리안감독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촬영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아한 반응들을 보였을 것이다.
물론 리안감독은 1970년대 미국의 불안한 중산층 가족을 그린 <아이스 스톰>에서 미국인이 아닌 아시아 감독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날카로운 시각을 담아내기도 했지만, 어쩐지 블록버스터하고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되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의 팝문화를 상징하는 전형적인 영웅주의에 화답하는 영화들을 만들어온 할리우드에서 거대한 자본이 들어가는 블록버스터를 동양의 감독에게 맡긴다는 것은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언론들은 10년을 준비한 장기 프로젝트인 <헐크>가 아시아감독에게 맡겨졌다는 것에 대해서 심한 야유와 비난을 퍼부었다. 미국인들이 즐겨보는 마블 코믹스의 히트메이커인 <헐크>가 과연 순수 미국인이 아닌 감독에 의해서 제대로 표현될 수 있을 지에 대한 미국 언론들의 배타주의가 깔려있었던 것이다.
가장 미국적인 것을 만들어 낸다는 할리우드에서 리안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것은 한편으로 이제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할리우드의 잔꾀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우려를 불식하고 <헐크>는 미국에서 흥행중이다.

어쨌든 여름 블록버스터의 선두주자로 나선 헐크는 누가 만들었든 매우 크고 화려하며 컴퓨터그래픽의 놀라운 기술력, 그리고 거대 자본의 투입 앞에서 여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다르지 않은 겉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녹색괴물의 정체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TV시리즈 <두 얼굴의 사나이>는 악의 무리를 보면, 옷이 찢어지면서 주인공이 근육질의 사나이로 변하는 내용이었다. 이 시리즈의 원작도 만화 <헐크>였다. 영화 <헐크>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단지 근육질의 사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해져 버린 녹색괴물이 등장한다고 할까?

영화의 주인공인 브루스 배너(에릭 바나)는 캘리포니아의 버클리에서 유전자 연구를 하고 있는 과학자이다. 어느 날 그는 엄청난 양의 감마선에 노출되는 사고를 당한다. 그 사고로 인하여 브루스는 소심한 과학자의 모습과 흥분하면 녹색괴물 헐크로 변하는 두 가지 모습을 가지게 된다. 과학자인 아버지의 돌연변이 실험 대상이기도 한 브루스는 자신도 모르게 몸 속에 돌연변이 유전자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뒤 브루스는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상태로 거대한 몸의 녹색괴물 헐크로 바뀐다. 헐크로 돌변한 브루스는 연구실을 부수고 자동차를 던지며 거대한 힘을 뿜어낸다.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린 브루스는 군대로부터 집중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영화는 그 연구의 궁극적인 이유나 녹색괴물 헐크의 힘을 어디에 쓰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겨둔다.
어쩌면 관객이나 녹색괴물로 변한 브루스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비밀의 한가운데 서있는지도 모른다. 녹색괴물 헐크는 선인도 악인도 아닌 상태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하며 도시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다. 때론 브루스의 모습으로 때론 녹색괴물 헐크의 모습으로 말이다.

녹색괴물 헐크는 과학자인 아버지가 만들어낸 창조물이며 의문투성이의 출생을 가지고 있다. 선악의 구분이 없는 경계선에 놓인 괴물은 우리에게 익숙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멍청하리 만큼 명확한 선악의 구분은 때로 폭력으로 물든 선일지라도 단지 지구평화를 위해 외계로부터 지구인을 지키는 정확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헐크는 여기에서 여타의 할리우드 영화와 다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헐크>의 기본은 화가 나면 괴물로 변하고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조정되는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괴물이다. 그런데 그 힘을 쓰는 곳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인류평화를 위해서 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개인의 안녕을 위해서 쓰여지지도 않는다. 그 힘이 만들어진 근원에도 명확한 이유가 없듯이, 힘을 사용하는 방법도 명확하지가 않다. 단지 힘을 만들고 유지하려는 모습만이 그려질 뿐이다. 감마선에 노출된 브루스는 화가 나면 헐크가 되고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브루스는 혼돈스럽다. 개인의 저항으로 어쩌지 못하는 폭력의 기운은 영화전체에 진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웃음도 난센스도 없는 블록버스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헐크는 슬픈 눈을 하고 사람들을 바라보며 화답되지 못하는 질문을 시도한다. 내가 누구인지 과연 녹색괴물로 변해버린 자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묻는 것이다.

헐크는 단 한번 연구실 동료이며 여자친구인 베티를 구출하기 위해 미치광이 개들과 싸울 때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힘을 사용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헐크의 존재가 명확해 보이는 장면이다. 그 외의 모습은 찢어진 바지를 입고 사막을 돌아다니거나, 때론 이유도 모르고 총에 맞을 때는 너무 사나워져버린 슈렉을 보는 기분이다.
헐크는 미국의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공격이며, 자신을 감추고 또는 누르면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브루스가 마음을 숨기고 연구실에 갇혀 지내듯이 현대인들은 자신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폭발할 듯한 스트레스 안에 갇혀 있다.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화가 나거나 흥분하면 지금의 자신과는 너무 다른 거대한 괴물로 변하여 폭력의 매혹 속에 힘의 권력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러나 통제 불가능한 힘을 사용할 줄도,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하면서 방황하는 헐크는 아버지 세대와의 갈등을 풀지 못하고 여전히 돌연변이의 모습으로 정글을 헤맨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단지 너무 거대해져 버린 녹색괴물 헐크일 뿐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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