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7호 미디어의난
“우리는 절대로 또다시 침묵당하지 않겠다”

최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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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7일 프랑스, 브라질, 독일, 우르과이 등 각국 20개의 독립미디어센터(Independent Media Center. 이하 IMC)가 갑자기 침묵의 바다에 빠져버렸다. FBI가 영국 런던에 있는 이들의 공동 서버를 강제로 압류했기 때문이다.

독립미디어센터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세계 민중이 공유하는 네트워크로서, 지난 1999년 시애틀 투쟁 시기 때부터 작년의 멕시코 칸쿤 투쟁까지 이어진 반세계화 투쟁과 이라크 침략전쟁에 대한 세계적인 반전투쟁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독립미디어센터는 전세계 민중의 투쟁을 이어주는 상징적인 기구라고 할 수 있다.

FBI의 이유없는 IMC 서버 압류와 반환

이번 압류에 대해 FBI 대변인 조 패리스는 AFP 통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와 스위스 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이번 명령을 내렸다’고 밝히고, ‘이번 압수수색 건은 FBI의 자체적인 시행이 아니라, 사법공조조약에 따라서 제3국을 대신해서 소환장을 발부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FBI는 정확한 압류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으며, IMC는 아직까지 압수 수색 영장은 구경조차 못한 상황이다. 다만,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 영국 등 최소한 4개국의 정부가 이번 압류 조치에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다행히 일주일만에 서버가 반환되어 독립미디어센터는 서버 복구작업에 들어갔지만, 압류와 마찬가지로 반환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아무런 설명이 없는 상황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독립미디어센터는 변호인단을 구성하고, 국제적인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국제기자연맹(IFJ) 사무총장인 아이단 화이트는 성명을 통해 ‘이것은 독립적인 언론활동에 대한 국제 공권력의 참을 수 없는 침해 행위다’라며 분노했다. 세계진보통신연합(APC)은 ‘미국과 유럽의 자의적인 법적용으로 독립미디어센터의 서버를 압류했다’며 비난했다. 또한 네델란드, 스페인, 미국, 이탈리아, 영국, 포르투칼, 독일, 러시아, 스웨덴, 일본, 터키, 한국 등 각국의 사회미디어 단체는 속보와 규탄 성명을 내면서 발빠르게 공동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FBI의 조치, 우리에게 낯설지 않아

이는 94년 사파티스타가 선언했던 ‘제4차 세계대전’ 그대로의 모습이다.(94년 1월 봉기한 사파티스타는 1,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3차 대전을 지나 이제는 신자유주의와 전세계 민중간의 제4차 대전이 시작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2003년 전 CIA 국장 제임스 울시 역시 ‘테러와의 전쟁’이 제4차 대전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FBI의 서버 압류 조치는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반 세계화 운동과 신자유주의 반대운동, 반전 투쟁에 대한 국제적인 자본과 권력의 합동작전이다. 4개국이 연합하여 한 단체를 공격하고, 며칠 내로 전세계 민중의 연대 투쟁이 펼쳐지는 모습은 가히 4차대전 답다. 이 4차대전에서 이번 사건은 한 단체, 한 지역의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초국적 자본과 전세계 민중의 상징적인 대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FBI의 조치는 우리에게 생소하지 않다. 국내에서도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일어날 때마다 ‘서버 압류’의 협박이 있었으며, 몇몇 경우는 실제로 집행된 경우도 있었다. PC통신이 막 대중화하기 시작하는 93년부터 우리는 통신에 올린 글 때문에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는 친구들을 바라봐야 했으며, 95년에는 한국통신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하자 정부가 노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동호회를 폐쇄한 일이 발생했다. 96년에는 소위 연세대 한총련 사태가 일어나자 경찰들이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한총련의 동호회가 있는 나우누리로 달려갔다.(당시 경찰은 나우누리 측에 압수 수색 영장을 제시하며 ‘한총련의 방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안다. 그 방 열쇠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는데, 이제는 유명한 일화가 되었다.) 1996∼7년 노동자 총파업 시기에도 이틀 걸러 한번 꼴로 압수 운운하는 경찰의 협박을 들어야 했으며, 실제로 민주노총 사무실은 압수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일들은 21세기가 시작되고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2001년 4월 대우자동차의 해고된 조합원들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한 폭력 사건 당시에도 투쟁이 가열되자, 경찰은 투쟁지침이 담겨있는 민주노총 홈페이지를 폐쇄하기 위해 서버를 압수하겠다는 발표를 했으며, 7월에는 국가의 인터넷 검열에 맞서 온라인 시위를 전개한 진보네트워크센터(이하 진보넷)에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들어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2002년 발전노조 파업 때에도 조합원들이 산개투쟁에 돌입하며 주요한 투쟁 거점으로 인터넷을 이용하자 경찰은 서버를 압수하겠다고 협박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과 진보넷은 이번 IMC 사건과 마찬가지로 전 세계에 연대를 호소했는데, 일본, 영국, 독일 등에서 서버를 압수 당하더라도 홈페이지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미러링 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2003년에는 게시판에 올라온 김일성 관련 게시물을 문제삼아 마치 그 게시물을 민주노총에서 올린 듯 포장하며 국가보안법을 적용하고, 담당자를 구속하겠다는 협박을 해댔다.

전세계 민중진영, 공동대응의 질 높여 강력한 투쟁 필요

이번 IMC 서버의 압류 사건은 두 가지를 시사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의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종류의 공격은 언제나 투쟁이 무르익을 때 진행되었으며, 그것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더 강력한 투쟁과 연대였다. 이는 반세계화, 반신자유주의, 반전운동에 대해 초국적 자본과 권력이 국제적인 비난을 무릅쓰고 압류라는 강수를 써야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했다는 것이며, 세계 민중들의 더 가열찬 투쟁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세계 민중 진영은 더 굳건한 연대의 틀 속에 구심력을 높여 각 사건에 공동 대응의 질을 높여야 할 때이다. 또한 앞으로는 국제적인 공동행동이 있을 때마다 이런 종류의 공격이 예상되므로, 기습적인 공격에 대비해 다양한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준비도 함께 필요하다.

이 압류 사건을 거치며 IMC는 대응을 위한 별도 홈페이지를 만들고 연대 서명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절대로 또다시 침묵당하지 않겠다(We will never be silenced again)’라는 구호를 새겨 넣었다. 이 구호가 공허한 외침을 넘어 힘을 가지기 위해 이 땅의 민중들 역시 국제연대를 강화하고, 전세계 민중들과 함께 구체적인 대안과 장기적인 기획을 함께 논의하고, 투쟁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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