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7호 Cyber
지문인식 불가한 손, ‘아예, 없는 사람 취급’

이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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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커 9월호에 대학의 지문 인식 좌석 배정기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서울시립대 중앙도서관에서 2003. 7. 29. 지문인식기가 부착된 무인좌석 배정기를 도입했다가 1주일만에 철거된 이야기였다. 철거 후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 중에는 “대한민국은 이미 주민번호와 지문으로 모든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라는 현실론이 있었다고 한다. 맞다. 대한민국은 주민등록제도로 모든 것이 돌아가고 있다. 주민등록제도의 핵심은 주민등록번호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주민등록이 말소되면 보통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카드 빚 등으로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이 상당수다. 주민등록이 말소되면 의료보험, 은행거래,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투표를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며, 운전도 할 수 없다.

지문인식기, “손에 상처 나면 사용할 수 없나요?"

그런데 지문으로 사람의 동일성을 확인하게 되면, 지문이 없는 사람은 주민등록이 말소된 사람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까.

실제 네이버 지식검색을 두드려 보니 이런 질문이 있다. “지문인식기는 손에 상처가 나면 사용할 수 없나요?” 답은, “화상 등에 의해 모든 손의 지문이 없어진다면 사용 불가능합니다”“사용하던 손가락 절단 등에 의해 일부 손가락을 잃는다면, 다른 손가락으로 사용 가능합니다. 단지 사용 가능한 손가락으로 다시 등록을 해야 합니다”“사용하던 손가락에 칼로 베거나 약간의 손상이 있는 경우, 높은 기술력을 가진 회사의 제품인 경우는 어느 정도의 상처는 복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술력이 낮은 회사 제품의 경우는 상처나지 않은 다른 손가락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상처뿐이 아니라 축축한 손, 건조한 손, 습진, 오물 등 여러 가지 상황에도 손가락은 민감하게 반응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이제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손이 없거나 지문이 없는 사람은 물론, 어쩌면 습진 있는 손을 가진 사람까지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대학도서관뿐이 아니다. 2004. 6. 14. 문화관광부 도서관박물관과의 권고를 보면 전국 공공도서관 중 무인좌석발급기가 설치된 곳은 23개관에 이른다. 무인좌석발급기는 지문 및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게 하고 기계가 좌석번호를 배정하는 기계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인감증명서 발급시 본인확인을 지문인식기로 하고 있다. 은행까지 본인이 원할 경우 지문으로 돈을 출금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문인식기의 보급이 지금처럼 확산된다면 지문데이터 정보처리자가 그 정보를 돈주고 팔았다는 기사를 볼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가짜 주민등록번호가 생성되고, 다른 사람이 내 주민등록번호를 쓰는 일처럼 가짜 지문 생성이나 지문 도용사태가 발생할 것도 불문가지이다.

신원확인은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헌법 제12조). 지문날인은 원칙적으로 법원의 영장이 필요한 신체검사의 일종이다. 형사소송법은 이미 법원의 영장을 받아 체포하거나 구속한 피의자에게 영장없이 지문 채취하는 것을 허용한다. 다만, 그 예외로서 경범죄처벌법 제1조 제42호는 수사기관이 피의자로 입건된 자에 대하여 지문조사 외의 다른 방법으로 그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지문을 채취하려고 할 때, 이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면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위 조항 역시 ‘다른 방법으로 신원확인이 가능한데도 지문채취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수사의 편의만을 위한 것’이라는 이유로 위헌제청됐으나,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23일 ‘수사기관이 직접 물리력을 행사하여 피의자에게 강제로 지문을 찍도록 하는 경우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필요하나, 지문을 찍지 않는 경우 형벌을 주는 것은 강제로 찍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영장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면서 합헌으로 결정했다(2004. 9. 23. 선고 2002헌가17, 18병합).

인감증명법 시행령 제7조에 의하면 공무원이 민원인의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장애인등록증, 여권 중 하나를 육안으로 식별해 본인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인감증명서 발급 시 본인확인을 지문인식기로 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을 보면 이 법의 목적은 “공공기관의 컴퓨터에 의하여 처리되는 개인정보의 보호를 위하여 그 취급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공공업무의 적정한 수행을 도모함과 아울러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함”이라고 되어 있다. 같은 법 제4조에 의하면 “공공기관의 장은 사상·신조 등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현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를 모집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개인주체의 동의가 있거나 다른 법률에 모집대상 개인정보가 명시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법률을 종합하여 본다면 이용자가 무인좌석발급기나 지문인식기에 지문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찍는 것에 동의하였다면 이것을 불법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문을 찍지 않는다면 인감증명을 발급 받을 수 없거나, 주민등록번호를 찍지 않고는 도서관이용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이건 자발적 동의라고 할 수 없다. 서비스 이용에 필수 불가결한 개인정보가 아닌 한 그 제공을 거부한다고 하여 서비스 이용을 거부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은 개인정보 동의와 관련된 기본원칙이다. 지문입력은 도서관이용에 필수불가결한 정보가 아니다. 신원확인은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지문 채취의 동의 전제도 정도 넘어선 것

문화관광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무인좌석발급기와 관련하여 “기존에 설치된 무인좌석발급기 프로그램을 수정하여 주민등록번호가 매일 삭제되도록 조치하고, 주민등록번호 입력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도 도서관 이용의 기회가 제한되거나 불편을 겪지 않도록 직원 수작업을 조치하고, 그 절차를 적절한 장소와 공간에 공지하라”고 권고했다. 물론 개인정보의 도용이나 매매 등의 부작용을 염려한 이러한 권고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도서관 좌석의 이중 이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또는 도서관 이용실태를 통계로 내기 위하여, 법원의 영장이 필요할 정도로 중요한 정보인 지문을 채취한다는 것은 아무리 동의를 전제한다고 해도 ‘공공업무의 적정한 수행’을 위하여 필요한 정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도서관 좌석 이중 이용방지를 위하여 헌법상 신체의 자유와 사생활의 비밀을 제한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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