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7호 여기는
글 훔치기, 바늘 도둑에서 소도둑까지

이강룡  
조회수: 4328 / 추천: 66
블로그코리아(http://www.blogkorea.org) 같은 블로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최근 ‘글을 도둑맞았어요’ 라는 제목의 글이 몇 건 올라왔다.

‘두호리’ 라는 이름의 블로거(이하 두호리)는 ‘블로그 포스트를 도둑맞았습니다’ 라는 글에서 자신이 블로그(http://www. dooholee.com)에 올렸던 내용을 아이티월드(http://www.itw orld.co.kr)의 한 기자가 아무 허락 없이 무단 도용했다며, 사건의 전말을 블로그에 공개했다. 출처도 밝히지 않고 기자가 두호리의 글을 본인이 전부 작성한 것처럼 돼있었다.

그가 항의 메일을 보내자 이런 답변이 왔다고 한다.

“저희 사이트 10월 11일자 취재수첩의 글은 일반 네티즌의 제보를 토대로 작성된 글입니다. 인터넷의 특성상 수많은 네티즌들이 제게 이러한 글들을 보내기도 하는데 이렇게 비슷한 내용인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좀 더 확실히 찾아보고 확인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글은 삭제 조치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미안하다고 한 마디 하고 글을 삭제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다른 이가 쓴 글을 몽땅 베껴서 이름만 바꾸는 건 악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악의적 의도가 없는 ‘펌’ 과 죄질이 다르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이런 글을 보낸다는 대목을 바꿔 말하면, 지금까지 제보 내용을 아무 탈 없이 잘 베껴왔다는 말 아닐까.

인터넷 카페의 게시물을 그대로 퍼다 기사로 쓰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핸드폰 종료 버튼 누르면 요금 절약’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됐다가 다른 매체에서 확인 취재 결과 근거 없는 기사로 판명 났는데, 문제의 발단이 된 인터넷 카페 게시물이 다른 곳을 떠돌다가 다른 기자의 눈에 포착돼, 한 달 뒤 똑같은 오보 기사가 다시 보도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포털의 뉴스 섹션이 이 해프닝에 일조했음은 물론이다.

인터넷 이야기를 다룬 기사가 보도될 때 종종 이런 경우를 보게 되는데, 위의 기자가 말한 ‘인터넷의 특성상’ 이란 구절 속에 답이 있다. 내가 얼마 전 다른 지면에 썼던 얘기를 또 한번 하지 않을 수 없다. “인터넷 기사 중에 쓰레기가 많은 건 무슨 이유일까? 인터넷 이야기를 쓸 때는 보도의 기본(확인 취재)조차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 기사는 대충 써도 된다는 썩어빠진 생각 때문이다. 인터넷 대중을 얕보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특성’을 곡해한 위의 기자는 스스로 쓰레기의 표본이 되었다.

다른 이의 글 전체를 갈퀴질하여 다른 곳에 그대로 옮기는 행위, ‘펌’ 이 ‘펌질’ 이라고 비난받는 이유는 출처 명기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은 갈퀴질해 온 사람이 썼다고 믿기 때문이다. 펌을 싸잡아 비난할 순 없겠지만 펌은 여전히 말썽거리를 많이 만드는 주범이다.

위의 악질 사례를 소도둑에 비유하면 바늘 도둑의 사례도 있다. 블로그 서비스 이글루스의 한 회원은 다른 사람의 글을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본인이 작성한 것인 양 올렸다가, 이 사실이 들통 나 다른 블로거들의 쏟아지는 비난에 혼쭐이 나기도 했다. 그의 블로그에 ‘펌질’ 이라는 디렉토리가 있었지만 ‘끄적거림’ 이라는 디렉토리에 본인 이야기인 것처럼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실수라고 하여 용서해주긴 어려울 듯 하다. 실수는 꼼수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비록 작긴 하지만 ‘실수’ 가 아닌 분명한 ‘잘못’ 이며, 창피해야 할 일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통째로 긁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교묘하게 부분만 슬쩍 인용하여 - 물론 출처 없이 - 본인의 글에 끼워 넣는 것도 큰 문제다. 퍼간 문서의 경우 원문 작성자가 이를 찾아내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인데 부분도용을 적발해내기는 더더욱 힘든 일이다.
저작권에 대해 강조하려는 것이 이 글의 취지는 아니다. 현행 저작권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인터넷 사용자는 많지 않다. 현실과 동떨어진 조항 때문이다. 펌에 해당하는 저작권법상 용어는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 가 될 텐데 이를 허용하는 범위는 통상 ‘자료 이용자 10명 이하’ 로 한정하고 있어, 사실상 일단 퍼오면 아마도 90% 이상은 범법을 하는 셈이 된다. 만일 저작권자가 문제 제기를 한다면 퍼온 사람은 사용자가 10명 이내라는 걸 증명하거나 10명 이상이라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아야 한다.

전통적인 카피레프트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최근에는 ‘Creative Commons License(http://creative commons.org)’ 나 ‘정보공유라이선스(http://freeuse.or.kr)’ 등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올린 개인의 저작물 내용에 대해 스스로 공개할 수 있는 허용 범위를 정하여 문서들을 맘껏 나눠 쓰자는 취지의 다양한 움직임도 있다.

만일 어떤 이가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 ‘이건 퍼가지 말아 주세요’ 라고 적어 놓았다면 그를 존중해주는 게 맞다. 그게 CCL처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 실상 알고 보면 결코 배타적이지 않는 좋은 취지이지만 - 것이라면, 해당 글을 링크하거나 본인만 볼 수 있는 곳에 저장하면 속 편하다. 나중에 따로 보려는 의도였다면 오프라인에 저장하면 된다. 다른 이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면 링크 혹은 인용 후 그 출처를 명기하면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이다. 지겨운 말을 또 반복한다. 퍼가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하자. 이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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