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7호 사이방가르드
정보 자유의 아트 행동주의, 네거티브랜드

이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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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것 같지 않던 음악 저작권 진영에도 균열이 오고 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기반해 유명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조건없이 무료로 배포한다. 강한 저작권의 법적 논리없이도 예술 창작자의 권리가 보호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보다 많은 창작의 자유를 위해 시장에 군림하는 저작권에 도전하는 기술적 (일대일 파일교환 시스템), 문화적 (개인간 정보공유 문화), 제도적 (정보공유라이선스 개발) 모델도 등장한다.

저작권자들이 이제까지 두려워하던 정보 자유의 문화가 현실화되는 데는 1980년부터 줄기차게 음반 저작권자들을 괴롭혔던 예술가 그룹, 네거티브랜드(NEGATIVLAND)의 공이 크다. 문화 아나키스트 그룹인 네거티브랜드는 음반 제작, 공연, 라디오 방송, 비디오와 책 제작 등을 통해 자본주의 저작권 체제에 대항한 음반 창작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왔다.

무엇보다 저작권자들이 네거티브랜드에 치를 떠는 근거는 이들의 음원 “샘플링” 기법에 기인한다. 기성의 저작권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음원의 불법 꼴라쥬나 무단 전유에 해당하는 이들의 음반 창작 활동은 그 근저에 안티-저작권의 강한 반감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원 샘플링은 2차대전 당시 아방가르드 전위예술의 선봉이었던 다다이즘의 존 하트필드나, 혹은 국내에서 작업하는 박불똥의 몽따쥬 기법과 비슷한 이치다. 마치 신문, 잡지, 사진 등 기성 이미지들의 꼴라쥬가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전달하는 창조적 예술 작품으로 거듭나듯, 네거티브랜드는 뉴스 앵커의 목소리, 음악가들의 음원, 그 외 다양한 청각 이미지를 조합하고 변형해 새로운 음반 창작을 시도한다.

네거티브랜드가 정보 자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크게 불러오게 된 계기는 1991년 발매된 싱글 패러디 앨범 “U2: 아직 내가 찾는 걸 구하지 못했어”의 파장이었다.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었던 록그룹 U2와 이 밴드와 공생하는 저작권 진영과의 한판 싸움에 의해 네거티브랜드는 저작권 위반 혐의로 거의 4년간 법정 소송 싸움을 벌인다. 저작권 소송 진행과 함께 이들은 창작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대중을 각성시키는데 큰 교육 효과를 가져왔다. 이를 계기로 네거티브랜드는 U2와의 소송의 일지를 담고 있는 “정당한 이용: 문자 U와 숫자 2의 이야기”란 제목의 270여 페이지에 이르는 책과 72분여짜리 씨디 프로젝트를 완성하기도 했다.

네거티브랜드는 정보 자유의 철학을 따른다. 전통적 의미에서 “오리지널”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사고를 지배한다. 설사 다른 창작자들의 음원을 샘플링해 쓴다해도 이는 단순 짜깁기가 아니라 변형에 의한 새로운 창작물로 거듭남을 강조한다. 랩이나 힙합에서 종종 이용되는 샘플링도 저작권 위반이 아닌 새로운 음악 창작의 기법으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다른 창작자의 음원을 이용하는 것을 범죄화하기 보다는 폭넓게 다른 이들의 창작욕을 자극할 수 있는 정보의 공개와 공유 문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마크 호슬러와 돈 조이스를 비롯해 네거티브랜드의 구성원들은 U2에 이어 다시 디스펩시(Dispepsi)란 앨범에서 다국적 자본 시리즈 광고물의 음원을 샘플링해 패러디를 시도했다. 펩시 회사의 광고 음원을 샘플링해 다국적 기업 광고의 숨겨진 의도를 조소하고 드러내는 새로운 창작 작업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네거티브랜드는 음악의 본질, 이에 개입하려는 통제와 소유권의 문제, 다국적 광고의 프로파겐더 등을 대중 스스로 재고하는데 일조했다.

단순 음악 제작의 창작 행위뿐만 아니라, 현재 네거티브랜드는 파일 공유,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 재산권 문제, 디지털 시대 예술의 진화와 소유권 문제 등 광범위하게 자본의 문제에 관여하고 있다. 초기 샘플링을 통한 음반의 제작이 음악 저작권자와 갈등을 유발하면서, 이들은 서서히 정보 가치를 독점화하려는 거대 자본의 힘과 이런 불합리한 자본의 통제가 예술가들의 창작을 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지각한 듯 하다. 최근 들어 저작권에 직접 관련된 글들의 저술과, 정보 공공 영역에 대한 대안적 관심이 늘고 있음은 이를 반증한다.
현대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예술가들의 창작은 저작권의 벽에 부딪혀 좌초하거나, 네거티브랜드처럼 불합리한 저작권 체제에 눈을 뜨고 아예 직업적 투사가 되는 두 가지 매서운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이들은 애초에 반저작권 행동주의자로 나서기 보다, 창작에 매진하는 전문 예술가로 남길 원했다. 하지만, 음원 샘플링을 통한 이들의 음반 제작 방식은 저작권 극대론자들에 의해 자의반타의반 저작권의 적으로 몰린 경우다. 자연히 이들에게 저작권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창작의 자유를 꿈꾸는 예술가의 지위가 그리울 법하다.

현대 디지털 기술의 발달은 음원 샘플링의 방식을 대중화시켰고, ‘오리지널’ 저자의 소멸을 극대화하고 있다. 더 이상 소수에 의한 독점적 정보 소유의 근거가 희박해지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다양한 음반 제작을 통해 창작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대중에게 독점적 저작권의 허상을 깨는데 근 25년의 세월의 공을 들인 네거티브랜드의 행보가 앞으론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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