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8호 표지이야기
의료정보와 프라이버시
철저히 보호돼야 할 가장 내밀한 개인정보

지음  
조회수: 3265 / 추천: 47
<한국보건복지학회에 따르면 1992년부터 2001년까지의 10년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람의 수는 전체 국민의 1/7에 달한다고 한다. 전염성이 높다는 B형 간염은 조금만 조심하면 감염을 막을 수 있고, 한국인의 경우 5~10%가 보균자로 알려져 있다. 누구든지 평생에 적어도 한번은 산부인과나 비뇨기과 혹은 대장항문과 진료를 받기 마련이다.

이러한 질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기피의 대상이 되거나, 사회로부터 배제당하거나, 도덕적으로 지탄받거나, 수치심에 위축되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이러한 사실이 외부로 알려질 경우 환자가 겪게 될 고통은 말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적 편견에 의한 것이든, 환자의 수치심에 의한 것이든, 어떤 이유에서든지 간에 환자가 이전에 어떤 질병을 앓았거나 앓고 있으며, 그에 따라서 어떤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개인에 있어서 숨기고 싶은 지극히 중요한 사생활인 것만은 틀림없다.

최근에는 성형외과 수술을 받은 후 자신의 성형수술장면이 담긴 동영상이나 사진이 병원 웹사이트에 무단으로 게재된 것에 대해서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일이 수차례 벌어졌다.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는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이례적으로 강력한 배상결정을 내렸다. 그만큼 개인의 의료정보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가장 민감하고 따라서 철저히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쓰이는 의료정보

개인정보로서의 의료정보가 갖는 독특한 특징은, 개인과는 한시도 분리될 수 없으며, 직접적으로 개인 자체를 구성하는 신체와 관련된 정보라는 점이다. 개인의 의료정보는 다른 어떤 매체 이전에 우선적으로 개인의 신체에 기록되며, 많은 부분 평생을 함께 하게 된다. 또한 유전자와 관련된 정보를 비롯한 여러 의료정보는 개인의 탄생과 함께 개인에게 주어지며, 개인의 자유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되어 버리거나 자유 의지로서는 변경하기 어려운 정보이다.

의료정보가 철저히 보호되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많은 의료정보들이 사회적 인식 속에서 비합리적인 차별의 근거로써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질병에 걸리는 것은 불가피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질병들의 경우 환자를 정당한 이유없이 차별하거나, 전염성으로 인해 무작정 기피하거나, 심한 경우 사회적으로 격리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심지어 유전성 질환의 경우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가족 전체의 문제로 확대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사업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건강검진이다. 본래 채용시 건강검진의 목적은 새로 채용하는 노동자의 건강 상태를 평가하여 그가 노동하는 와중에 건강 상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을 채용시 배제하려는 목적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더군다나 건강 정보를 회사에 제공하는 데 있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배제되어 있다는 점은 자기정보통제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보험회사는 개인의 의료정보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애쓰고, 이를 바탕으로 ‘합법적인’ 차별을 행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얼마 전에는 민간보험 회사가 건강보험공단의 의료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하여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보험 사기를 막기 위한 용도의 의료 정보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제공받을 수는 있겠지만, 개인의 민감한 의료정보를 사설 보험회사에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행사하기 어려운 자기정보통제권

한편 의료정보의 또 하나의 독특한 특징은 환자가 자신의 정당한 자기정보통제권을 주장하기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우선 질병을 앓고 있는 개인이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의사에게 자신의 모든 개인정보를 거의 전적으로 제공할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의사는 환자의 모든 과거 병력과 신체에 대한 정보, 더 나아가 가족의 병력이나 사회적 환경까지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 생길지도 모르는 불이익은 환자가 책임져야 한다. 따라서 현실에서 환자가 병원에 간다는 것은 이 모든 개인정보를 의사에게 제공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또한 의료정보는 매우 전문적인 지식으로서 환자보다 의사가 훨씬 더 많이 알고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환자는 자신의 개인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질병에 대한 현상적인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며, 나머지는 모두 의사를 통해서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의료정보의 경우는 정보의 주체가 거부권을 행사하기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보 제공에 동의하기 마련이며, 그 정보가 치료에 꼭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 조차 판별하기 어렵다. 또한 자기 정보를 열람한다고 할지라도 전문가의 충분한 설명이 없이는 이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 향후 치료를 위해서 기존의 진료 정보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은 자기 정보의 삭제권을 행사하기도 어렵게 한다.

의료정보는 철저히 보호되어야 하는 개인정보라는 것이 너무도 명확하지만, 환자의 노력이나 의사의 양심만으로 보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개인의 의료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