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8호 기획
IT 노동자, 다시 조직화되다

오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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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래머, 웹디자이너, 시스템 엔지니어...이들에게서 우리는 머리띠를 동여매고 파업을 하는 노동자를 떠올릴 수 있을까? 분명 아직까지는 익숙한 모습이 아니지만, 정보통신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정보통신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동조합이 조직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3년 11월 16일 창립한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IT 노조)이 그것이다.

IT 노조는 지난 2003년 8월, 위원장 정진호씨가 동료 한명과 함께 ‘IT연대’라는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웹사이트에 대한 관심이 큰 것에 힘을 받아, 그 해 11월 16일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노동부에 설립신고를 하였으나 설립신고가 반려되는 어려움도 겪었다. 부위원장의 신분이 프리랜서이고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에 노동부에 항의 방문을 하는 등 싸운 끝에 2004년 1월 28일 노동부로부터 노조 설립 필증을 받게 되었다.

사실 IT 산업에서 (KT 등 대기업 노조를 제외하고)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던 움직임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00년 (주)멀티데이터시스템 노동조합 등 몇 개의 벤처기업에서 노조가 결성되기도 하였다. 멀티데이터시스템 노조는 최초의 벤처 노조로써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악덕 사업주에 맞서 파업을 벌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벤처 노조는 하나둘씩 무력화되어 갔다.

이번에 만들어진 IT 노조는 개별 기업 노조가 아니라 산별노조 형식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오프라인 활동보다는 온라인 활동에 방점을 찍고 있다. 산별 노조의 형식을 취한 것은 IT 산업의 특성상 중소사업장이 많고 이직율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IT 산업의 문제는 개별 기업보다는 산업 구조와 정부 정책의 영향이 더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IT 노조는 현재 조직화, 교육, 선전, 실태조사 사업 등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3월에서 7월 동안 ‘정보통신산업 노동자 실태조사’를 진행하여 IT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IT 노조의 현실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창립한 지 1년이 다 돼가지만 조합원 수는 수도권 지역에 41명, 진주 지역에 13명 정도다. 실태조사 발표 이후에 언론에 알려지면서 웹사이트 접속자 수는 증가하였지만 조합원 가입은 아직 정체 상태다. IT 노동자들이 신뢰를 갖고 가입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새로운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 노조 규모가 작아서, 상근 활동가도 두기 힘든 형편이다. 대부분 직장을 다니며 일을 하는 구조에서는 사업을 활발하게 벌이기가 힘들며 이는 노조의 정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IT 노조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실제 IT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위해 IT 노조에 참여하는 것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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