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호 http://
분리와 배제 그리고 정보

이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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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IMF와 맺은 구조조정 협약은 가혹했다. 과잉축적과 과잉생산을 해소하기 위해서 한계자본은 가차없이 정리되었고, 한편으로는 자본의 집중, 집적은 강화되었다. 한계자본의 정리, 통폐합과 함께 노동자의 일자리도 정리되고 통폐합되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정리해고와 파견제를 법제화로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으며,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대체되었다.
다른 부문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최근 신한은행에 통합된 조흥은행 노동자들의 절박한 파업투쟁은 전체 은행노동자의 40%가 쫓겨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구조조정, 그리고 자본의 집적과 집중만이 사회의 공동선을 의연히 유지하는 한, 조흥은행 노동자, 철도 노동자의 투쟁은 집단이기주의의 덫에서 벗어날 수 없다. 파견근로, 탄력근로 역시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대의명분 아래서는 정당화되고 만다.

90년대 초반에 이미 과잉 축적된 자본의 해외진출로 해외에서 유입되는 자본보다 유출되는 자본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으나, 2002년은 유입되는 생산자본보다 유출되는 생산자본이 더 많아지는 원년으로 기록되었다. 지난 5년간의 구조조정이라는 각고의 노력 끝에 달성한 자본의 집적과 집중으로 세계시장에서의 본격적인 자본경쟁에 뛰어들었음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이를 위해 한일투자협정, 한·칠레자유무역협정, 한미투자협정 그리고 WTO DDA(도하개발어젠다)와 같은 생소한 협약, 협정이 체결되거나 준비중이고, 동북아중심국가 건설, 경제자유구역, 글로벌 스탠다드와 같은 정책과 용어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협약과 정책, 용어는 노동자, 민중에 있어 세계화라는 또 다른 덫을 의미한다.

작년 한 해 자살자가 1만 3천명을 넘어서, IMF 직후 1998년 1만 2천을 넘어선 이후 최대의 수치라 한다.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 농토에서 쫓겨난 농민들이 빈민들과 함께 게토를 형성하게 되고, 그 말단이야말로 늘어나는 자살이다. 한편 자본가를 중심으로 자본을 유지, 지탱하는 마름들만이 새로운 귀족의 울타리를 치게 될 것이다. 울타리를 지키는 일은 김대중정부 시절 제기되었던 것처럼 사설경비업무를 위한 총기사용 허가에 대한 법제화 정도로 제한되지 않는다.
소위 울타리 안만을 일컫는 사회, 그 사회적 안전을 위한 제반의 조치들이 함께 하게 된다. 공장에서 그리고 농토에서 거리로, 그러나 거리에서 자살로 끝을 맺을지언정 폭동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장치, 그것은 허구적인 사회적 안전망과 분리와 배제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미 시행하려다 포기했던, 그러나 새로이 추진하고자 하는 전자주민카드, NEIS를 포함한 전자정부 계획은 개인정보의 집적과 집중을 통해 분리와 배제를 제도화하는 가장 핵심적 장치이다. 가로 세로 1cm에 불과한 IC칩 안에 집적된 그리고 전국적으로 집중된 개인정보는, 자본이 그은 기준선을 넘어선 자격미달자로서 이미 학교생활에서부터 건강, 금융 등 사회활동에 이르기까지 부적응자를 게토 안에 가두어 관리함으로써 울타리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이다.
정보인권은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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