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권/자료] 정보불평등과 공공접근권에 관한 몇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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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작성
작자 미상.
정보불평등과 공공접근권에 관한 몇가지 질문
질문 1. 정보 사회에서 불평등을 늘어나는가, 줄어드는가?
최근 수년 사이에 '정보화'는 한국사회의 지배담론이 되었다. '정보화'라는 용어는 '정보사회'로, 다시 '정보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았다. '정보혁명'을 주창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가져올 희망적 미래를 지적하면서, "우리 사회가 이 격변에 슬기롭게 대처한다면 선진국이 되고 복지국가가 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많은 골치아픈 사회문제들이 '정보혁명'을 통해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비단 정보통신과 관련한 관료나 기업가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IMF의 극복도, 수출증대도, 뭣도 뭣도, 문제라 생각되는 것이면 무엇이라로 정보화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마치 비효율적인 것이면 무엇이든 민영화, 규제완화해야 한다는 논리만큼이나 자동적인 반응이다. 거기엔 어떠한 반성이나 성찰도 없다. 정보사회에 대한 이같은 낙관적 전망은 앞서 1장에서도 보았듯이 1970년대 다니엘 벨 (Daniel Bell)을 비롯한 일군의 미래학자등이 주창한 '탈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ty)'론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다니엘 벨 : 탈산업사회와 계급갈등의 약화
대표주자격인 벨은 앞으로 사회는 자본과 노동이 중심인 산업사회에서 정보와 지식이 중심인 탈산업사회로 이행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언급한 변화의 경향 가운데 사회계급·계층의 변화에 대한 언급만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경제생활의 중심이 물질적 생산에서 전문적인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서비스생산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 결과 재화생산을 하던 육체노동자층은 감소하고, 전문직, 관리직, 사무직 등 정신노동자층이 증가할 것이다. 이는 산업사회에서의 정치적 권력과 사회계급의 토대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즉, 상하간의 위계구조를 골간으로 하는 관료제적 조직형태는 쇠퇴하고, 대신에 조직내의 전문적 정보지식 생산자들이 수평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조직형태가 주류를 이룰 것이다. 조직내 권력구조의 수평화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약속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벨은 탈산업사회로 이행하면서 종래 산업사회를 특징짓던 계급갈등은 크게 약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식의 전망은 토플러 등을 포함하는 '정보화사회론'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정보화사회론 비판 : 정보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그러나 벨의 낙관론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정보화의 진전은 벨의 주장처럼 기존의 자본주의 사회체제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 안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이며, 따라서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보화가 기존에 권력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들에게는 배타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반면, 소외된 계층에게는 더욱 불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비판적 언론학자인 허버트 쉴러(Herbert Schiller)는 정보화를 거치면서 사회는 '정보를 가진 자/정보부자'(info-rich)와 '정보를 가지지 못한 자/정보빈자'(info-poor)로 나누어짐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이 해소되기는 커녕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들은 '페이퍼뷰'(pay-for-view)사회라는 말처럼 정보의 이용이 점차 이용자의 지불능력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지적과도 일맥상통한다.
어쨌든, 최근 정보화가 급속하게 현실화되면서 많은 이들이 정보화사회에서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각국의 정보화가 시장과 기업의 압도적 영향력 하에서 이루어지면서 과거 '공공의 재산'으로 여겨져서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던 많은 정보들이 이제는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상품으로 변모하고 있다. 또한, 새로이 창출되는 정보에는 어김없이 요금표가 붙고 있다. 누구나 자유롭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선전된 인터넷에서도 '정보의 상품화'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들고 있다. 따라서 지불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가치있는 정보에 접근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그보다 가치가 낮은 정보에만 접근하거나 아예 이용조차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가시화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나라마다 탈규제와 자유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이 노골화되면서 정보의 상품화에 맞서서 공공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여지는 더욱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질문 2. '정보불평등'이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정보를 이용하거나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보의 소유, 이용정도를 둘러싼 '정보격차(information gap)'나 '지식격차(knowledge gap)'는 존재했다. 산업사회에서도 정보나 지식의 격차는 존재했고, 한 개인이 어떤 계급이나 계층적 지위를 갖느냐를 결정하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즉, 정보불평등 현상이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생산을 포함한 사회 전과정에서 정보의 중요성이 증가되면서, 정보격차나 정보불평등은 불평등을 낳는 중요한 요소로서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미래사회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가진 벨, 토플러 등의 정보화사회론자들은 여전히 '미래사회는 정보와 지식을 가진 자들의 세계'라는 식의 말만 하고 있다. 무엇이 정보를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를 나누고, 그 차이가 사회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답을 숨기고 있다. 정보와 지식이 미래사회의 권력을 결정하는 요소라는 그들의 주장과 그것이 널리 이용되어서 산업사회의 불평등을 완화할 것이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사회구성원들중 정보와 지식을 다루는 '정보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 할 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연구들은 소위 '미래사회의 새로운 권력층'으로 불리는 이들이 사실은 산업사회의 육체노동자 못지 않은 착취노동에 시달리고 있으며, 정보화는 결국 이들의 노동까지도 탈숙련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정보화사회론자들은 권력의 원천으로서의 지식과 정보라는 사실 너머에 있는 또 하나의 사실, 즉, 바로 그 사실때문에 지식과 정보의 독점과 불평등은 심화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정보불평등이 형성되는 과정은 지극히 '악순환'적이다. 즉, 현재의 정보격차가 앞으로 오랜 시간을 거쳐 차츰 구조화되면서 하나의 불평등 현상으로 자리잡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히려 비교적 직선에 가까운 출발선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는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적 불평등의 단면을 따라 또다시 정보불평등이 발생하고, 이는 다시 기존의 불평등 구조를 강화시키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즉, 이미 경제적, 문화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보다 우월한 정보와 네트웍에 접근할 수 있는데 비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더욱더 심각한 사회적 격차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미 뒤에서 출발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이제 그들 앞에만 유독 나타나는 더 많은 장애물과 싸우면서 나아가야 할 부담을 짊어지게 된 셈이다.
질문 3. 정보불평등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1) 법과 정치권력에 의한 접근 제한
산업사회 이전에도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것은 지배집단의 중요한 통치전략이었다. 실제로 인류역사에 길이 남을 발명이라 하는 인쇄술도 한때는 불순한 사상을 유포시킨다는 이유로 그 이용이 금지되거나 특권층에게만 허용되었다. 권력의 명시적인 명령에 의한 접근제한은 멀리 서양으로 가지 않더라도 우리사회에서도 쉽게 발견될 수 있는 것이다. 서적에 대한 출판이나 배포를 금지하거나, 영화에 대한 검열을 한다는 것이 바로 특정 정보나 지식에 대한 접근을 금지하는 예이기 때문이다. 다만, 근대사회 이전의 경우 이것이 신의 뜻을 빙자한 왕의 명령과 같이 인격적 수단에 따라 이루어졌다면, 근대사회에 들어와서는 법과 같은 비인격적 수단을 통해 그 정당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차이일 뿐이다.
몇 해전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열풍이 불자, 중국을 비롯한 일부 나라의 정부가 체제유지에 해가 되는 정보가 유입되는 것을 우려해서 네트웍 자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한 경우가 있었다. 또한, 최근 한국정부도 국제적인 인터넷 사이트인 지오시티스(Geocities)에 있는 일부 북한관련 사이트를 문제삼아 각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에 접속차단을 요청한 적이 있다. 이와 더불어,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일부러 공개하지 않는 행위도 접근권을 제한하는 경우에 포함된다. 국가가 활동중에 생긴 정보를 국가의 주권자인 국민에게 정당한 이유없이 공개하지 않는다든지, 노동자나 소비자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기업이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인 '알권리(right to know)'에 대한 침해이며, 정보에 대한 부당한 접근제한이라고 할 수 있다.(검열에 대해서는 다음 장을 참조)
그러나, 이러한 법이나 정치권력에 의한 접근의 제한이 그에 맞서는 시민과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투쟁의 결과, 상당부분 없어지거나, 완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과는 달리, 최근에 들면서 명시적인 제한 대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제한이 더욱 강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논리, 시장논리에 의한 접근제한이 바로 그것이다.
(2) 정보불평등의 경제적 요인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 덕택에 예전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고도의 다양한 서비스가 일반에게 제공되고 있지만, 이를 향유하는데 필요한 비용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컴퓨터통신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의사소통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를 위해 특별한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 컴퓨터와 모뎀이 있어야 하고, 전화사용료를 지불할 수 있어야 하며, 상용통신망을 사용한다면 매달 일정액의 사용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평소 소득이 이 정도를 지불할 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사회적으로 고도의 정보통신서비스가 제공된다고 하더라도 그 발전으로부터 혜택으로부터 소외될 수 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서도 비교적 소득수준이 높은 행정·전문직 종사자의 경우 가정의 20%이상이 최소한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농업·축산업·수산업 관련 종사자의 경우는 겨우 0.8%만이 이를 보유하고 있어서 기본적인 정보통신서비스에 대한 접근의 격차가 상당한 정도이다. 이는 정보통신서비스의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경우도 별 다를 바 없다. 1993년 미국 연방통계청의 통계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백인들은 37.5%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데 비해, 소득수준이 낮은 흑인들은 그 수가 25%에 불과했다. 이를 소득수준에 따라 나누어 보면, 10,000달러 미만의 가정은 6.8%만이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는데 비해, 75,000달러 이상의 고소득층의 경우 모두 61.7%가 컴퓨터를 소유하고 있었다. 더우기 정보와 네트웍의 이용도가 높아짐에 따라 이러한 차이가 점차 좁혀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최근의 정보통신산업의 민영화와 경쟁체계의 도입은 정보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다수가 경쟁하는 시장에 새로이 진입한 기업은 낮은 투자비용에 비해 고이윤이 보장되는 장거리전화나 도시지역 서비스에 집중투자를 한다. 이를 '단물빼기'(cream-skimming)이라고 한다. 그 결과 그 외의 나머지 부문에는 투자를 소홀히 하거나 서비스를 포기하게 되서, 자연스럽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거나 가격이 상승할 것이다. 물론 경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경쟁과 민영화의 확대가 독점시장의 경직된 시스템을 개선함으로써 서비스 질의 향상, 다양화, 그리고 가격인하까지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과당경쟁에 의한 가격인하는 일시적이며, 곧 담합 등에 의해 가격이 재인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설사 가격인하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단순히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과연 경쟁을 통한 효용의 증가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분배되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가격인하의 혜택이 사회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돌아간다면, 이는 노동자를 비롯한 소외계층을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에서 배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래 통계에 따르면, 소득수준에 따른 네트웍 이용률의 차이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최근 정보통신시장의 경쟁체제 도입과 민영화가 정보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종철 GVU 통계>
이렇듯 소득수준이 낮은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정보통신서비스로부터 소외되어 '주변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기존의 사회적 계급/계층구조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나 탈산업사회로의 이행과는 오히려 '관계없이' 재생산되며, 사회적 약자들은 이제 기본적인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부터도 배제당함으로써 그러한 재생산구조는 더욱 고착된다.
(3) 정보불평등의 사회·문화적 요인
어떤 이들은 정보불평등은 결코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들은 실제로 부유하더라도 '정보활용능력'(information competence)가 없으면 정보사회에서 뒤쳐질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이면에는 정보사회에서 이러한 능력만 있으면 더 나은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가 숨어 있다. 물론, 정보불평등은 단순히 경제적 구조에 의해서만 생기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많은 사회, 문화적 요소들이 정보불평등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교육수준, 성별의 차이 등은 이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결코 개별적인 것이 아니다. 이런 사회·문화적인 요인들은 상당부분 앞서 지적한 경제적 요인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가르치지 않고 잘하길 기대하지 말라
아래 미국의 통계는 교육수준에 따라 네트웍과 월드와이드웹(WWW)의 이용 정도에 현저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차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더욱 증가되고 있다.
교육수준에 따른 정보격차는 여러가지 원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으며, 따라서 정보에 대한 접근에서 제한을 받는다. 하지만, 소득수준만 높아진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정보의 내용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정보에 접근하는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접근을 꺼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컴퓨터 교육을 학교와 같은 공교육과정에서 제대로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 열악한 교육환경으로 말미암아 실효성있는 컴퓨터 교육을 하기에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조기교육의 경우 사교육을 통해 이루어지며, 성인의 경우도 기업이나, 아니면 개인적 인간관계나 능력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금전적,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 사람들은 교육과 훈련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결국 정보불평등 구조의 하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통념과는 정보통신에 대한 전문적인 수준의 교육이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필요한 정도의 초보적인 교육과 훈련에는 그다지 높은 지적수준이나 교육수준이 필요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수준에 따른 접근 정도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회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의 경우에는 언어장벽도 교육수준과 관련해서 접근을 제한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실제로 오직 외국어에 능통한 일부의 사람에게만 인터넷은 진정한 '지구적' 네트웍이기 때문이다.
정보사회는 여성에게 유리하다?
많은 정보화사회론자들은 탈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남성적인 성격을 가진 육체노동의 시대에서 여성에게 더 어울리는 지적노동으로 중심이 이동할 것이고, 자연 여성의 참여나 힘도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가지는 보통 여성은 남성에 비해 정보통신 서비스에 대한 접근도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이나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컴퓨터 통신망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남성이다. 상용 통신망중의 하나인 천리안의 경우도 전체 가입자의 76%가 남성이며, 여성의 비율은 24%에 불과하다. 서비스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여성이용자의 비율은 더욱 낮은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탈산업사회론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충분한 것이다.
미국의 베이위트(BAWiT)라는 여성단체의 연구에 따르면, 첫째, 여성은 남성에 비해 컴퓨터나 네트웍에 접근하기에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다. 대부분 남성들이 컴퓨터나 네트웍을 저렴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부문에 종사하는데 비해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위해 가정에 머물고 있으며 이는 여성의 접근도를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둘째, 사회통념은 여성들이 컴퓨터나 네트웍에 익숙해질 기회를 빼앗는다. 여전히 남자아이에게는 컴퓨터를 가르치고, 여자아이에게는 피아노를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통념이 부모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세째, 교육에서의 불평등으로 인해 정보와 네트웍이 남성중심적으로 설계·구성되며, 여성들은 이를 낯설게 여긴다. 심지어 남성 이용자들로 가득찬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은 '현실공간(real space)'에서와 같은 성희롱을 경험하기까지 한다. 여성 이용자라고 생각되는 경우 남성들은 농도짙은 농담이나 모멸적인 언사를 던짐으로써 온라인 공간에 대한 여성들의 기피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여기에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경제적으로 열등한 지위에 있다는 점도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미국 전체의 전화보급률이 약 94%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가진 여성단독세대의 전화보급률은 남성의 경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으며, 빈곤선 아래의 경우 약 5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낮은 접근도가 기존의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전화가 없는 여성 단독세대주들은 가까운 곳에 사는 친척과도 기본적인 접촉빈도가 낮으며, 자녀가 있는 경우 먼거리에 있는 직장에 대해서 부담을 느낀다. 그 결과 가족이나 취업기회로부터 고립되고, 결국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교육수준, 성별 외에도 정보와 네트웍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불평등을 심화하는 요인은 많다. 어린이나 노인과 같은 연령집단, 근래 늘어난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소수인종집단, 또는 청각, 시각등의 장애로 인해 접근에 제한을 받는 장애인들은 현실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가상공간(cyberspace)에서도 여전히 사회적 약자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 이외에 자발적으로 정보에 대한 접근을 꺼리는 예도 있다. 1995년 미국의 인류학자 바또(Batteau)는 41,000명의 주민 가운데 62%가 흑인, 32%가 중남미 혼혈이며 오직 7%만이 백인인 시카고 남쪽의 한 지역을 대상으로 사례연구를 하면서 주목할 만한 점을 발견했다. 우선 주민 대다수가 컴퓨터를 하는 것을 "백인들의 일"로 간주한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은 낮은 교육수준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대다수가 저소득층인 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여타의 수단을 통해 정보를 얻는데 지불하는 비용은 가구당 월평균 170달러에 달했다. 결국 그들은 정보의 필요성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보다 경제적으로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컴퓨터나 네트웍에 대해서는 문화적으로 친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친숙하지 못함'은 개개인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음으로써 정보통신서비스에 대한 접근을 자발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
질문 4. '보편적 서비스'란 무엇인가?
각 나라들은 이러한 정보나 네트웍에 대한 접근의 불평등구조가 또 하나의 중요한 사회적 갈등요인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찍부터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왔다. 이러한 정보불평등에 대한 완화대책으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편적 서비스(Universal Service)' 정책이다.
원래 '보편적 서비스'는 시장과 기업의 주도 아래 형성된 미국의 통신산업부문에서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 목표이자 수단중의 하나였다. 이 개념이 최초로 나타난 것은 1900년대 초로, 당시 미국의 전화시장은 미국전신전화회사(AT&T)와 여러 독립 전화회사들에 의해 지역별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러나, AT&T는 각종 특허권과 영업권을 사들임으로써 사업규모를 넓혀갔고, 독립 전화회사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아야만 했다. AT&T가 전화시장을 독점한다는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지자, 당시 사장이었던 테오도르 베일(Theodore Vail)은 AT&T가 전국적인 전화망을 소유하는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하나의 정책, 하나의 시스템, 보편적 서비스(One Policy, One System, Universal Service)"라는 모토를 내세웠다. 여기서 '하나의 정책'이란 요금, 서비스, 등에서 동일한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며, '하나의 시스템'란 모든 전화가입자가 상호접속할 수 있도록 시스템의 호환성을 유지한다는 의미였다. 이는 전화망이 지역별로 독자적으로 운영됨으로써 야기되는 지역간 전화연결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동시에, AT&T가 자사의 강점을 선명하게 내세움으로써 경쟁자들을 제압하는 역할을 했다.
그후 1934년 미국연방통신법(The Federal Communication Act)이 제정되면서 보편적 서비스 정책은 미국통신정책 가운데 공공정책의 중요한 부문으로 수용된다. 즉, 국가는 AT&T사에 의한 장거리전화부문의 독점을 인정하면서도, 독점이 가져올 가격인상, 서비스 차별을 규제하기 위해 "지불할 수 있는 적절한 가격으로 '기본적'인 통신서비스를 광범위한 지역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 서비스 제공의 책임을 AT&T에 부여한 것이다. AT&T는 손실이 나는 시내전화부문과 이익이 되는 시외전화부문간의 수익격차를 '내부 상호보조금(internal cross-subsidy)'방식을 통해 배분함으로써 이를 실현했다. 결과적으로, '보편적 서비스' 정책은 독점기업에 의해 지배되는 통신시장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서비스의 거절이나 수준악화를 막는 최소한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후 이 정책은 다른 통신서비스에 대해서는 물론, 미국 외의 다른 나라들의 통신정책에서도 주요한 원칙과 운영원리로서 널리 수용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보편적 서비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1) 전국 어디서 살고 있건 전화를 이용할 수 있을 것(Universal Geographical Access)
(2) 누구라도 경제적(저렴한)인 가격으로 전화를 이용할 수 있을 것(Universal Affordable Access)
(3)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Universal Service Quality)
(4) 요금에서 차별이 없을 것(Universal Tariff)
질문 5. '정보고속도로'는 '보편적 서비스' 원칙을 어떤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가?
1993년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자국 내의 분산된 정보통신망과 서비스를 하나로 연결시키으로써 새롭게 거대한 정보하부구조를 구축할 것을 주창했다. 이것이 '정보초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라고 불렀다. 이를 제도화하기 위해 1996년 미 행정부와 의회는 1934년 이래 최대규모로 미국연방통신법을 손질했다. 그 결과 새로운 통신법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보편적 서비스' 정책이 중요한 논쟁꺼리으로 떠올랐다. 논쟁의 배경에는 두 가지 중요한 현실의 변화가 깔려 있다. 첫째, AT&T와 같은 거대독점기업이 기업 내부적으로 전화 사업부문간에 수익을 조정하던 기존의 보편적 서비스 구현방식이 다수의 회사가 경쟁적으로 시장에 참여하는 상황에서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만약 보편적 서비스 정책을 지속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다. 또다른 변화는 기술발전과 더불어 정보통신서비스가 다양화 되면서 과거 보편적 서비스의 기준이 된 '기본적인 서비스(basic services)'의 범위를 어디까지 해야 하는 지가 모호해 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음성전화서비스가 모든 미국민이 최소한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과정 참여에 필요한 것이었겠지만, 이제는 각종 부가서비스, 화상서비스, 인터넷 서비스 등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서비스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어디까지가 과연 보편적으로, 차별없이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서비스인가가 문제였다. 결국 이 문제는 앞서도 지적했듯이 다수의 정보통신사업자가 다양한 서비스를 가지고 시장경쟁에 참여하는 현재의 정보통신부문에서 과연 어떻게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책적 배려를 할 수 있겠는가라는 문제로 모아진다.
이에 대해 정부, 기업, 사회단체들로부터 여러가지 안이 제시되었고 여전히 논쟁중에 있긴 하지만, 대체로 주류는 결국 경쟁의 심화로 인해 서비스의 비용이 저하되면서 자연스럽게 보편적 서비스가 실현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심지어 탈규제와 경쟁촉진을 주장하는 일부에서는 보편적 서비스는 이미 낡아버린 과거의 정책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들은 과거 희소하다는 이유로 '공공재'로 분류되었던 정보, 네트웍, 주파수 자원이 기술의 발달로 인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풍부해진 지금에 이르러서는 자본과 기술을 갖춘 기업이면 누구나 아무런 제한없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 접근(universal access)'을 보장함으로써 경쟁을 촉신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국가의 시장개입을 최소화하려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 서비스' 정책의 한계
그러나, 과연 공공정책인 보편적 서비스가 시장의 원리에 의해 달성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시장원리의 적용은 경쟁의 확산을 의미하고, 이는 불가피하게 보다 더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으로 서비스가 몰리는 현상을 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실제로 통신산업 뿐만 아니라, 비교적 일찍 민영화가 된 항공운송산업등에서 이미 나타난 문제이다.
여기서 우리는 '보편적 서비스'라는 개념에 대해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즉, 미국통신산업에서 '보편적 서비스'는 한 회사에 의한 전화사업의 전국적 독점이라는 ― 국영기업도 아닌 사실상의 민간기업에 의한 ― 당시의 통신산업구조에서 독점기업의 횡포와 독단을 막음으로써 공공이익을 지키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지만, 사실상 핵심은 독점이 낳게 될 불가피한 사회적 폐해와 이에 따른 사회성원들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미국 통신정책의 역사를 연구한 로버트 맥체스니(Robert McChesney)는 1934년 이후 통신정책에 대한 논의와 비판은 '누가 소유할 것인가'라는 핵심적인 문제를 피한 채, 독점이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들에 대해 주변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거나 해결책을 모색하는 이상이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즉 단순히 낮은 가격만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술과 서비스의 발전이 진정 한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공동의 혜택이 되게 하기 위한 구조를 마련하는 일에 고민이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지적해야 할 것은 보편적 서비스가 결코 기업의 이해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네트웍은 일반적으로 일정 수 이상의 이용자가 이용해야만 가치를 갖게 된다. 즉, '결정적 다수(critical mass)'라고 불리는 이 수의 이용자를 확보하지 못한 네트웍은 사라지거나 유명무실해 지는 반면, 이를 확보한 네트웍은 이용자들의 활동자체가 저절로 네트웍의 가치를 증대시켜서 자연적인 성장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런 현상은 통신망의 게시판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결국, 신규 기업의 입장에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빠른 시간내에 이 선을 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 서비스라는 이름아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정책은 기업의 입장에서도 초기에 시장을 개척하는 좋은 방식이 되는 것이며, 더욱이 이를 위해 국민의 세금을 이용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각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정보고속도로 정책은 정보통신기업이 시장개척을 위해 투자해야 되는 엄청난 규모의 초기매몰비용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는 지적도 한편으로는 타당성을 지니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사회에서의 보편적 접근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보편적 서비스를 넘어서는 개념의 정립이 요구된다 할 것이다.
질문 6. '공공접근권'은 무엇인가?
'보편적 서비스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앞서 지적했듯이 보편적 서비스가 새로운 정보통신환경에서 단순히 시혜나 방어막 이상이 아니라 진정 공공의 이익을 지킬 수 있도록 새로운 의미로 '재구성'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조지 셰먼트(Jorge R. Schement)는 AT&T사가 분리되고 경쟁이 허용되기 이전과 이후에 미국내 전화서비스 보급률에 대한 실증적 분석을 통해 그동안 상식적으로 믿어졌던 보편적 서비스의 성공에 대한 신화를 깨뜨리고 있다. 그에 따르면, 여전히 많은 미국인들이 기본적인 전화서비스로부터도 소외당하고 있으며, 이는 사회가 정보를 더욱 중시하게 될수록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로 인한 사회적 소외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사회계급·계층에 대한 조사연구를 통해 보편적 서비스 논쟁이 '경제적' 이슈로서만 부각되고 있지만, 이는 실상 그것을 뛰어넘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또한, 수잔 헤이든(Susan G. Hadden)도 보편적 서비스 논의가 사람들을 오직 기업이나 정부에 의해 미리 제시된 경우들 사이에서 선택만을 강요당하는 '소비자'가 되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네트웍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는 기업이나 정부가 아니라 '우리'가 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점에서 보편적 서비스에서 더욱 더 나아가 보다 적극적인 개념으로서 '퍼블릭 억세스(public access)'의 원칙을 제기하는 것은 유의미하다. 이는 보편적 서비스를 둘러싼 논쟁이 갖는 한계 ― 누가 얼마씩 지불할 것인가라는 경제적 문제로의 환원이나, 기술의 발전으로 해결가능하다는 기술중심주의적 시각 ― 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로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기술자체가 접근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화 과정을 통해 그 형태와 내용이 결정된다는 입장이라는 점에서 기술결정론과 다르다. 또한 공공(公共)을 정보통신서비스를 수동적으로만 받아들이는 '소비자'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정보제공자'이고 '능동적인 행위자'로서 인식하고 이를 통해 정책은 물론, 기술이나 조직 그 자체에 대한 변형까지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 서비스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차이가 있다.
공공접근권의 구성
그러나 '퍼블릭 억세스' 혹은 '공공접근권'의 개념은 아직 내용이 채워진 개념이 아니다. 그리고 분명 '보편적 서비스'와의 경계선도 아직은 뚜렷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분야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는 유사개념들과의 소통을 통해 그 내용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알권리'(the right to know)라는 개념과, 방송매체 등에 대한 퍼불릭 억세스의 개념이 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알권리'는 말 그대로 개인이 자신을 둘러 싸고 있는 현실에 대한 정보에 대하여 알 권리를 지칭한다.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면서 알권리는 새로운 인권의 하나로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알권리의 개념과 범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견해가 있지만, 보통 국가와 국민, 혹은 국민과 매스미디어 간의 관계로만 보던 시각에서 기업에 대한 소비자이자 노동자이며, 정보주권자로서의 국민이 알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개념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추세이다. 알권리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정의로서는 세계인권선언을 들 수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 9조는 "모든 사람은 의견 및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기의 의견을 가지는 자유 및 모든 수단에 의하여 또 국경에 구애됨이 없이 정보 및 사상을 구하고 받으며 또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고 규정하여, '정보를 받을 권리'를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와 함께 중요한 인간의 권리로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정보공개법과 같은 법제도가 필요하듯이, 정보사회에서 정보의 제한없는 접근을 위해서도 법제도는 물론 경제적, 기술적 여건의 조성이 필수적이다.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쉽게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접근점(access point)의 확보와 경로의 다양화, 정보의 호환성 유지 등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보사회에서 '알권리' 개념의 확장은 정보접근에 대한 권리를 넘어 정보소통의 기반인 네트웍에대한 접근의 권리까지를 포함하게 된다.
초기에 방송은 주파수자원의 희소함 때문에 공공재로 인식이 되었지만, 점차적인 상업화의 결과 희소한 주파수는 매체의 독점현상을 공고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따라, 방송은 사회전반의 공적인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기 보다는 독점 대기업의 이윤추구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매체독점에 맞서는 전략으로서 일부에서는 대안적 독해나 '기호학적 게릴라전'이 시도되기도 했지만, 수용자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케이블TV, 위성TV, 인터넷방송 등의 등장으로 매체와 채널의 다양화가 이루어지면서, 단순한 수용자의 입장을 벗어나서 매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이나 유럽등지에서는 이러한 참여를 통해 상업화된 대규모 공중파방송에 맞서서 공적 이익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는 억세스권을 적극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미 1972년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케이블방송국은 비영리 목적의 공공채녈을 반드시 두고, 이를 위해 최소한의 시설과 설비를 갖추도록 의무화하였다. 또한, 유럽에서도 오픈채널(open channel)이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공중억세스 채널을 보장하고 있다.
정리하면, 공공접근권이라는 낯선 권리이기는 하지만, 결코 새로운 권리는 아니다. 이미 알권리의 개념과 공중억세스채널의 시도속에 녹아있던 개념이다. 다만, 모든 정보와 미디어가 디지털을 매개로 하나로 통합되면서 그 사회적 영향력이 급속히 높아지는 이 변화의 시점에서 재구성되고 확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앤드류 레딕(Andrew Reddick)은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사회의 이해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데는 두번의 기회가 있고, 그 하나가 신기술이 소개되는 시점이라면, 다른 하나는 그 기술이 구조적인 성숙이나 새로운 응용들로 인한 변화의 시점이다. 이는 정보통신기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19세기말의 경향과 유사하게 현재도 시장이 유도하는 이데올로기와 민주적인 참여, 사회적 이익간의 긴장이 존재한다"고 했다.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인 것이다. 따라서 공공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은 향후 최소한 수십년동안 우리 사회의 정보통신환경의 큰 변수가 될 것이다.
질문 7. 한국사회에서 접근의 문제는?
우리나라의 통신정책에도 보편적 서비스와 같은 형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도 지적한대로, 미국 통신법에 '보편적 서비스'라는 정책이 포함된 이후 각국의 통신정책에는 명시적이든 아니든, 비슷한 형태의 정책이 존재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몇가지 찾아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생활보호대상자 무료전화보급 및 설비비·장치비 면제, 장애인 요금할인제도, 생계곤란 국가유공자에 대한 무료전화제공, 장애인용 공중전화부스 설치, 하이텔 단말기 보급, 피시통신 요금 할인, 농어촌지역에 대한 가입전화 기본료 인하조치 등등이 그것이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책의 방향이 기본적인 전화서비스 위주이며, 가격보조정책이 주된 정책수단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정보사회에서는 과연 어떠할까?
우리사회에서 정보와 네트웍에 대한 접근권문제가 쟁점이 되었던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이 정부의 정보화정책에서 형식적으로만 등장하는 보편적서비스 정책이다. 1995년 10월에 발표된 '정보화촉진 기본계획 시안'에는 보편적 서비스를 국가사회 정보화를 위한 정책과제의 '환경적' 측면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1996년 통신시장의 전면적 경쟁체제 도입에서 시내전화의 보편적 서비스 보장문제를 고려하고 있다. 한편 초고속정보통신기반구축사업의 '종합추진계획'에서는 이에 대한 내용이 보다 명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는 도서·벽지 등 수요가 적은 지역에 대해서도 초고속통신망 사업을 제공함으로써 지역에 제한없이 멀티미디어서비스의 보편적 이용을 보장하고, 사회적 공평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도 계획의 수준이지 구체화된 정책으로 제시된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 정부의 보편적 서비스정책은 여전히 전화시대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전화를 이용한 각종 부가가치 서비스가 일반화되고 있고, 각종 통신서비스가 민간업체간의 경쟁을 통해 공급되고 있는 등 전반적인 정보통신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지만, 이것이 국민들의 접근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통신사업자 선정, 요금제도, 통화품질 등이 문제가 돼도 이는 해당정부관료나 이윤이 걸린 기업체의 관심꺼리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1980년대 한국방송공사(KBS) 시청료거부투쟁은 우리사회에서는 보기드는 접근권투쟁이었음에 틀림없다. 물론 군사독재정권시절 편파방송을 일삼는 방송사에 대해 시청자로서의 정당한 권리요구만큼이나 정권자체에 대한 극도의 분노가 이 투쟁의 동력이 되었지만, 시청료 거부투쟁은 미디어 이용자가 단순한 수용자로서의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지 않고, 미디어의 내용에 대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냈다는데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여러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청자감시운동이나 모니터모임이 생겨났고, 지속적으로 방송내용 등에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반론권 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시청자운동은 방송사 내부의 노동조합 등과 결합하여 방송기획, 제작단계부터 참여하거나, 독립적인 네트웍을 통해 제도방송에 도전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미 방송된 프로그램에 대해서만 끊임없이 비판하는 역할에 제한되었다. 실제로 1995년 시작된 케이블방송의 경우도 공공채널이 있긴 했지만, 애초에 법제화단계에서부터 정부홍보용 채널로서 규정되었고, 지역사회 공공채널등은 허가되지 않았다. 뮬론 이를 문제삼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이는 1993년 이미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6번째의 공중파채널을 지역시민채널로 사용하기로 했다는 점과는 너무도 큰 대조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동안 우리사회에서는 정부나 국민는 물론이고 사회운동내에서도 방송이나 정보통신분야를 막론하고 접근권에 대한 인식과 노력이 대단히 미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최근 미군방송 채널반환을 계기로한 국민주방송운동, 01410대책위의 활동, 이동통신이나 정보통신 이용약관에 대한 일련의 문제제기들은 이러한 점에서 접근권투쟁에서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대안적 독립네트웍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단순히 네트웍이용자 운동을 넘어 네트웍의 주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라 할 것이다.
질문 8. 한국사회에서 공공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은 아직 없다. 다만 공공접근권에 대한 몇가지 원칙을 정리함으로써 글을 맺고자 한다.
우선 접근권의 문제는 단순히 정보통신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정책에 몇마디의 말을 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접근권이란 문제를 인식하고, 투쟁의 계기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접근권에 대한 광범위한 지지를 확보해 가는 과정의 부산물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대세속에서 정보나 네트웍 할것없이 상업화, 민영화의 길로 갈 것이 불보듯 뻔하다. 이는 정보와 네트웍의 공공성에 타격을 입힐 것이고, 상대적으로 이를 지킬 수 있는 여지는 점차 협소해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보와 네트웍에 대한 접근은 지속적인 싸움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접근권의 문제는 '이용'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권리'의 문제이고, '소유'의 문제이며, '참여'의 문제이다. 이는 정부나 기업이 수여하는 혜택이 아니다. 이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보편적인 권리이다. 주어진 정보와 네트웍을 얼마만큼 이용할 수 있는냐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누구의, 누구의 이익을 위한 정보이고 네트웍인가 하는 점이다. 결국 이는 소유와 참여의 문제일 것이다.
접근권의 문제는 가격만의 문제가 아니다. 저렴한 가격은 접근권을 보장하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문제는 접근권을 보장하는 체제(system)이다. 개인에게 떠맡겨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는 교육, 이윤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서의 본래의 역할을 다하는 네트웍, 경쟁의 무기가 아니라 공동의 지혜가 쌓여 만들어지는 정보. 이를 총체적으로 가능케 하는 체제를 구성하는 일이 바로 접근권투쟁일 것이다.
접근권의 문제는 또한 기술이나 물리적인 네트웍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물론 기술와 네트웍은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기껏해야 형식적인 접근권만을 보장할 뿐이다. 오히려 접근권의 보장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정보와 네트웍을 공공성이라는 관점속에서 보지 않는다면 언제나 접근권의 보장은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올바른 관점속에서 기술과 네트웍을 재구성하는 것은 또하나의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결국 이렇게 볼 때, 접근의 문제는 단순히 다른 모든 정보통신운동의 투쟁과제들과 연결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은 어떤 의미에서 '좁은 의미의 접근권'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접근자체를 제한하는 요소에 대한 권리의 호소이며, 접근하지 못하는 자의 권리에 대한 옹호이다. 하지만, 접근한다고 해서 진정한 의미에서 접근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표현과 소통을 제한하는 검열,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맞서는 지적재산권, 단순한 정보의 소비자로 전락시키는 일방적 정보유통, 자기정보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프라이버시 침해, 정보와 네트웍에 위계를 부여하고 수준에 따라 접근을 제한하는 위계서열화의 경향은 모두 접근이후에 버티고 있는 장애물들이다. 바로 이러한 부문까지 권리와 통제를 확장해가는 노력은 '넓은 의미의 접근권'을 위한 투쟁이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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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Ches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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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 "공공영역의 민주화와 참여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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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dick, Andrew,
한국정보문화센터, 1995, [복지정보통신의 현황과 발전방향에 관한 연구], 199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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