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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정보화가 자본과 국가 중심으로 미친듯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 비판하고, 싸우고, 올바른 정보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정보통신 운동 역시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그 동안 많은 사건과 이에 대한 대응이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정보통신운동도 이론적, 조직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전체 정보통신운동의 과정에 대해서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반성된 바는 없는 듯 합니다. '정보화'에 대한 책은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정보통신운동'에 대한 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현 시점에서 그동안의 정보통신운동을 기록하고, 정리하여 반성의 계기로 삼는 것은 향후 더 확장된 운동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정보운동 길라잡이에서는 현재까지의 정보통신운동에 대해서 정리하는 글을 1주일에 1편씩 연재하려고 합니다. 가능한 구체적이면서도 나름대로 올바른 관점을 갖고 바라볼 수 있도록 서술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연재가 끝나면 적절하게 첨삭, 편집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할 예정입니다. 물론 이 글도 완결된 글이 아니므로, 연재의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조언과 토론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글은 동아닷컴, 방송대 학보사와 네트워커에서 공동으로 연재됩니다)

생명특허에 대한 반대논리



생명체에 독점권을?

터미네이터 기술이라는 것이 있다. 종자를 비롯한 모든 생명체는 자연적인 자기 재생산을 근본으로 하고 있는데, 이 기술은 종자가 1회만 사용할 수 있고, 수확된 작물을 다시 종자로 재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종자회사의 독점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1998년 특허를 취득하였다. 동물에 대한 특허로는 하버드 마우스라는 것이 있다. 하버드 마우스는 유전적으로 형질전환된 암에 걸리기 쉬운 쥐로 암 치료제 연구를 위해 개발되었다. 인간에 관련된 특허도 존재한다. 즉, 특정한 질병에 걸린 사람의 세포주를 채취하여, 이의 연구결과를 특허로 취득하는 것이다.

생명체 자체에 특허를 부여한 것은 1930년대 미국에서 식물특허를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특허 대상의 범위가 동물로 점점 확장되어, 이제 인간과 관련된 특허가 논쟁이 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생명체에 특허를 부여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생명체에 특허를 부여한다는 것은 생명체의 특정 부분의 사용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된다. 과연 신이 아닌 이상, 생명체에 대한 독점권을 가질 권리를 누가 부여했다는 말인가? 생명특허에 대해서는 생래적인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명특허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도덕적 판단을 넘어서 생명특허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의 대립, 사회구조의 문제, 문화 및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서로 다른 철학적, 세계관적 대립을 이해해야할 것 같다.

WTO TRIPs를 둘러싼 선진국과 제3세계의 대립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TRIPs)은 지적재산권을 무역과 연계하여 전 세계적으로 지적재산권을 획기적으로 강화시킨 협약이다. 이 협정은 물론 지적재산권에 있어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미국 등의 선진국 주도로 체결되었다. 이 협정의 27조 3(b)항이 생명특허와 관련해서 논쟁이 되는 조항인데, 다음과 같이 규정되어있다.

3. 회원국은 또한 아래 사항을 특허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b) 미생물 이외의 동물과 식물, 그리고 비생물학적 및 미생물학적 제법과는 다른 본질적으로 생물학적인 식물 또는 동물의 생산을 위한 제법. 그러나 회원국은 특허 또는 효과적인 독자적 제도 또는 양자의 혼합을 통해 식물변종의 보호를 규정한다. 이 호의 규정은 세계무역기구협정의 발효일로부터 4년 후 재검토 된다.

위 조항의 첫 번째 부분에서, 제3세계는 미생물, 비생물학적 및 미생물학적 제법 역시 특허대상에서 제외하여, 모든 생명특허가 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선진국들은 동식물까지 특허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두 번째 부분인 '효과적인 독자적 제도'라는 규정에 대해서도 선진국은 식물신품종보호연명(UPOV)로 한정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제3세계는 각국의 독자성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선진국은 전 세계적으로 통일적으로 적용되는 생명특허의 강화를 주장하는 반면, 제3세계는 생명특허의 폐지, 적어도 각 국의 자율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규정에 나온 바, WTO 발효일로부터 4년 후인 99년부터 27조 3항을 둘러싼 선진국과 제3세계의 논쟁과 대립이 불거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선진국과 제3세계간의 대립이 발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전세계 생물다양성 자원의 90%가 제3세계에 분포하고 있는 반면, 선진국은 이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과 TRIPs 협정은 생물다양성과 관련된 지적재산권, 즉 생명특허를 보호함으로써, 산업을 보호하고, 생명 기술을 혁신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것이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반면, 제3세계의 입장은 특허제도는 생물다양성을 보호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그동안 생물다양성을 관리해온 토착공동체에 권리를 부여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선진국들이 특허제도를 통하여 독점적 권리를 행사하는 것에 대하여 '생물해적질(biopiracy)'이라고 비판한다. 인도 님 나무의 예가 대표적이다. 님 나무는 인도 토착공동체에 의해서 살충제, 치료제 등으로 전통적으로 사용되어온 것인데, 미국의 한 회사가 님 나무에 대한 몇가지 특허를 취득하고, 인도 현지에서 생물살충제를 대량 생산한 것이다. 인도의 사회단체와 학계에서는 그 기술이 이미 인도에서 사용되었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주장하며 특허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여기서 선진국의 논리는 님 나무의 사용법이 자신들이 '최초로 고안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연구는 이미 인도 토착공동체의 전통적 지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그 전통적 지식이 현대 과학의 언어로 되어있지 않다는 이유로 권리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 비판자들의 논리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적 대립 아래에서 진행되는 현실은 선진국의 거대기업들의 독점에 의해서 제3세계 토착 공동체의 문화와 생산기반이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거대 종자회사, 제약회사들은 생명특허에 기반한 독점력을 이용하여, 종자 및 이와 관련된 농약, 그리고 의약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함으로써 제3세계의 농민, 민중들은 이에 종속되어 버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종자', '뛰어난 제초제' 등의 이름으로 들어오지만, 결국 농민들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회사에 종속되어 버리는(예를 들어, 특정 종자를 사용하면, 특정 제초제를 사용해야한다든가) 상황이 제3세계 민중들이 분노하는 원인이다.

죄송합니다. 창조주씨. 여기서 새로운 생명형태에 대한 상업적 착취를 위한 면허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의 특허에 도전하고 싶다면, 저 아래 방에서 법률 서비스를 받으시면 됩니다만..
(유럽연합 생명특허 훈령)

근본적인 비판

인도의 활동가인 반다나 시바는 생명특허에 대해서 근본적인 반대 논리를 제공한다. 즉, 생명특허 혹은 현대 생명공학이 기반하고 있는 세계관은 생명을 요소들의 조합으로 이해하는 잘못된 인식론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전자는 전체 유기체 안에서 제 기능을 발휘함에도 불구하고, 현대 생명공학은 생명체를 유전자를 구성요소로 하는 기계적인 것으로 파악하며, 그렇기 때문에 특정 유전자에 대해서 특허를 부여할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물학적 환원주의는 문화적 환원주의로 연결되어, 수 많은 가치와 윤리를 서구적인 기준에 의해서 폄하하게 된다. 토착민들의 전통적 지식에 대해서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 지적재산권에 기반한 지식이라는 것이 '상품성'이라는 단일한 가치에 의해서 생산물을 판단하게 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특허 자체가 어떤 지식에 대해서 특정 연구자가 그 지식의 모든 것을 생산했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 위에 놓여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원주의는 생태계에도 위험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예를 들어 특정 측면만 부각된 작물이 전체 생태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한 폐해가 드러난 예들도 있다.

고유의 가치를 되찾자.

우리는 생명특허에 대한 논쟁을 통해서 다른 지적재산권 영역에서도 똑같은 비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된다. 저작권의 강화는 모든 지식을 '상품성'으로 평가함으로써, 한 사회의 다양한 지식의 가치를 저해하지 않았는가? 그럼으로써, 한 사회 공유의 문화적 가치의 재생산을 가로막지 않았는가? 특정 지적생산물에 대하여 50년 동안이나 독점해달라는 요구는 '지식에 대한 해적질'이 아닌가?

생명 특허의 영역, 특히 농업이나 의약분야처럼 인간의 삶에 기본적인 분야가 그 분야 본래의 가치에 의해서 운영되지 않고, 단지 상품성과 투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가치에 의해서 지배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리는 일이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세계관의 대립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얽혀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싸움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피폐해져가는 우리들의 삶을 구원하기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이에 대응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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