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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정보화가 자본과 국가 중심으로 미친듯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에 대해 비판하고, 싸우고, 올바른 정보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정보통신 운동 역시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그 동안 많은 사건과 이에 대한 대응이 있었고, 그 과정 속에서 정보통신운동도 이론적, 조직적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전체 정보통신운동의 과정에 대해서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반성된 바는 없는 듯 합니다. '정보화'에 대한 책은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정보통신운동'에 대한 책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현 시점에서 그동안의 정보통신운동을 기록하고, 정리하여 반성의 계기로 삼는 것은 향후 더 확장된 운동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정보운동 길라잡이에서는 현재까지의 정보통신운동에 대해서 정리하는 글을 1주일에 1편씩 연재하려고 합니다. 가능한 구체적이면서도 나름대로 올바른 관점을 갖고 바라볼 수 있도록 서술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연재가 끝나면 적절하게 첨삭, 편집하여 단행본으로 출판할 예정입니다. 물론 이 글도 완결된 글이 아니므로, 연재의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조언과 토론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 글은 동아닷컴, 방송대 학보사와 네트워커에서 공동으로 연재됩니다)

지적재산권의 국제적 추세



국제적 동향을 파악할 필요성

이제 한 사회의 경제, 사회, 문화의 제 현상들은 단지 국내적인 측면에서만 파악하기 힘들게 되었다. 자본의 전 세계적 확장은 각 국의 국내 경제를 세계 경제로 편입시켰으며, 단일한 제도, 문화, 삶의 양식을 세계 각 곳에 심어놓았다. 지적재산권 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 측면에서는 다자간, 쌍무간 협상을 통한 압력을 통해서, 다른 한 측면에서는 일종의 모델 제시를 통해서 각 국의 제도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 혹은, 국내 자본이 자신의 요구를 세계적인 추세라는 '정언명령'으로 은폐하고자 하기도 한다. 즉,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루어질 경우, 그 근거로 세계적인 추세이므로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자주 볼 수 있다. 인터넷의 발전도 문제를 세계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저작물의 문제, 상표권과 도메인을 둘러싼 분쟁, 전자상거래 등 최근 지적재산권에 관련된 문제들은 인터넷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는데, 인터넷 환경에서 국경이란 무의미한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 상에서의 여러 분쟁들은 국제적인 수준에서 발생할 수도 있으며,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적인 룰이 필요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볼 때, 이제 지적재산권에 대한 비판과 투쟁 역시 국내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수준에서도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지적재산권에 대한 국제적인 흐름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TRIPs 협정)

1986년에 시작되었던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은 1994년 4월, 세계무역기구(WTO)를 출범시키며 막을 내렸다. UR 협상 출범 당시만 해도, 각국 협상대표들은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에 대한 소폭의 개정과 추가적인 확대만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세계적인 자유무역질서를 형성하려는 미국의 적극적인 공세로 논의의 범위가 확대되었으며,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WTO 체제를 출범시키기에 이르렀다. WTO의 부속협정인 무역관련지적재산권 협정(TRIPs 협정)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위조상품의 무역규제를 목표로 하였으나, 점차 그 범위가 확대되어 저작권, 상표권, 특허권 등 전반적인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포괄적인 무역규범을 제정'하게 되었다.

먼저, TRIPs 협정은 제반 실체법에 있어서의 보호요건을 강화하였다. 저작권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 및 데이터베이스 등의 자료 편집물도 저작물로 보호대상에 포함하였으며, 저작인접권에서는 음반에 대한 소급보호를 인정함으로써 기존에는 인정을 받지 못하던 음반들도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하였다. 상표에 관련해서는, 등록되지 않은 유명상표도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특허에 관련해서는 '생명특허'를 둘러싸고, 선진국과 제3세계간에 첨예한 쟁점이 되고 있다. 또한 강제실시권의 요건을 강화함으로써, 각국에서 공공의 목적이나 국내 산업정책상 필요한 정책을 운영하는데,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은 기존의 국제협약보다 더 높은 수준의 보호와 함께, 그것을 실행할 의무의 부과, 그리고 국제규범이 준수되지 않았을 경우 강제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분쟁해결절차나 제재조치를 원하였으며, 이러한 요구는 TRIPs 협정의 3부와 5인 '지적재산권의 시행'과 '분쟁의 방지 및 해결'의 제 규정을 통해서 대부분 관철되었다.

TRIPs 협정에 의해 국내에서도 전반적으로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강화되었다. TRIPs 협정 이후, 바로 국내 관련법의 개정작업에 착수하였는데, 그 결과, 95년에 저작권,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특허, 상표, 실용신안, 의장, 종자산업법, 농약관리 등 지적재산권 관련 8개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TRIPs 협정이 베른조약을 기반으로 함으로써, 저작권법과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에는 베른협약에 따른 소급보호 규정이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이전에는 87년 이전의 해외 저작물에 대해서는 저작권이 인정이 되지 않았으나, 법의 개정으로 57년 이후에 발행, 공표된 저작물까지 소급해서 보호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국내 출판업계 등는 큰 타격을 입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TRIPs 협정은 기존의 지적재산권 관련 국제협약보다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이는 선진국과 초국적 기업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제3세계에 있어서 TRIPs 협정은 재앙으로 다가온다. 필리핀대 사회학 교수인 왈든 펠로(Walden Bello)는 TRIPs 협정이 "제3세계에 대한 기술 이전 및 확산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초국적기업의 기술독점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제3세계의 어떤 기업이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이나 컴퓨터 조립품을 혁신시키고자 할 때, 그 기업은 필연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초국적기업에 의해 이미 '특허된' 몇몇 디자인이나 공정들을 '로열티를 지불하고' 통합시키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비판한다.

좀 더 근본적인 비판으로 우리는 과연 WTO 체제 안에 과연 지적재산권 협정을 둘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적재산권은 이미 여러 국제협약과 그것을 포괄하는 국제기구인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를 두고 있다. 그런데, WTO 체제안에 별도로 TRIPs 협정을 두는 것은 무역과 연계시켜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를 강제하려는 선진국의 의도로볼 수 밖에 없다. 다자간투자협정이나 WTO 등을 통해서, 각 국이 공공정책을 펼 수 있는 영역을 제한하고, 노동이나 환경정책까지도 무력화시키려는 자본의 의도가 TRIPs 협정을 통해서 지적재산권 영역에서도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나라의 지적생산물에 대한 정책이 단지 무역과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수립될 수는 없다. 한 나라의 지식기반은 단지 경제적 관점에서만 판단될 수 없는, 고유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각 국은 자국의 역사적인 상황이나 사회적, 경제적 조건에 맞게 고유한 정책을 최대한 자율적으로 유지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지적재산권 협정을 WTO 내에서 제외하는 것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농산물이나, 문화의 영역이 예외를 주장하는 것처럼.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 저작권 조약과 실연, 음반조약

디지털 기술과 정보통신의 발달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있어서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이 디지털 혁명은 인류의 지식과 문화의 생산·공유, 그리고 상호 소통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성이 오히려 지적재산의 '소유권자'에게는 자신의 소유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느껴졌다. 이에 대한 국제적인 차원의 대응이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 체결된 두 개의 신조약이다. WIPO는 1991년부터 6년동안 전문가위원회 회의를 진행하였으며, 1996년 12월 2일에서 20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3주간 외교회의를 개최하였다. 그 결과 세계 120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WIPO 저작권 조약 및 실연·음반 조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WIPO 신조약은 디지털 환경에서도 저작권 보호에 관련된 '베른협약의 제 원칙이 적용됨을 확인함'과 동시에 신기술 발달에 따른 몇 가지 새로운 권리와 의무를 신설하였다. 이를 주도한 것은 역시 미국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국내법의 정비에 앞서서 국제적인 입법을 주도했는데, 이는 국경을 초월한 인터넷 환경의 대두 때문이다.

WIPO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공중전달권 : 베른협약 및 TRIPs 협정에서는 몇몇 유형의 저작물에만 인정되었던 '공중전달권'(Right of communication to the public)이 모든 유형의 저작물에 확대되었다. WIPO 저작권조약 제8조는 공중전달권을 '공중의 구성원이 개별적으로 선택한 장소와 시간에 저작물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공중이 이용할 수 있도록 유선 또는 무선의 수단에 의하여 저작물을 공중에 전달하는 것을 허락할 배타적인 권리'로 규정한다. 비동시적, 유무선, 쌍방향, 주문형 송신도 공중전달권의 대상이 된다. 즉, PC 통신이나 인터넷의 게시판에 자료를 올려놓거나 내려받는 것도 저작권자의 배타적인 권리로 선언한 것이다.
- 기술보호조치 : 저작권조약 제11조, 실연·음반조약 제18조는 기술적 보호조치를 보호한다. 즉, 저작권자가 자신의 저작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설정한 기술 조치에 대해서, 이것을 우회하려는 장치를 수입, 제조, 배포하는 것을 금지한다. 예를 들어, 암호를 깨는 기술이라든가, 리버스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기술 등이 이에 해당한다.
- 권리관리정보 : 저작권조약 제12조, 실연·음반조약 제19조는 권리관리정보를 보호한다. 권리관리정보란 저작자의 식별이나 이용의 조건에 관계된 정보를 말한다. 위 조항에서는 권리관리정보를 제거하거나, 변경하는 행위, 혹은 권리관리정보가 권한없이 제거되거나 변경된 것을 알면서, 권한없이 배포, 수입, 방송하거나 공중에 전달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9년에 개정된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과 저작권법에 디지털화에 따른 환경의 변화와 WIPO 신조약 등의 세계적인 추세를 반영하였다. 우선 WIPO 조약의 '공중전달권'과 비슷한 '전송권'을 신설하여, PC 통신 등에서 전송되는 저작물의 저작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저작권에 기반한 저작물 유통의 합리화를 위하여 법정허락 및 등록업무를 저작권 전문기관인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 이양하도록 하였다. 나아가, 저작권을 강화하려는 독자적인 노력을 보이고 있는데, 저작권 침해시 벌칙을 강화한 점(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향 조정), 고의없는 침해의 경우에도 그 침해에 과실이 있도록 추정하도록 한 점, 그리고 프로그램의 불법복제를 단속하기 위해서 정통부 관계 공무원에게 단속권을 부여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WIPO 신조약의 핵심은 결국 '디지털 시대에도 기존의 저작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에 대한 확인이다. 기술보호조치나 권리관리정보 등의 디지털 이슈는 이를 확실히 보장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구시대적인 저작권법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는 의문이다. 정보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는 정보가 생산, 유통되는 방식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반면, 기존의 저작권은 소유자에 대한 과도한 보호의 댓가로 정보화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한편, 정보접근권이라는 이용자의 기본권 역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적재산권 체제를 상정하고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 바람직한 정보의 생산, 유통 시스템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서 출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정보공유에 입각한 새로운 생산 시스템'을 창출하려고 하는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은 하나의 모델로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N E T W O R K E R No CopyRight, Just Copy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