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3호 칼럼
“균형”보다 “빨리”가 중요한 정보통신정책

전응휘 / 평화마을 피스넷 사무처장   chun@peacene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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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인터넷과 정보통신 선진국이라는 얘기는 이제 거의 상식처럼 되었다. 실제로 해외에서 인터넷을 써본 사람들은 국내 인터넷 사용 환경이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다른 많은 나라들이 우리의 정보통신환경에 놀라는 것은 어떻게 그처럼 짧은 시간 안에 급속도로 인터넷과 이동통신 서비스가 보급될 수 있었냐는 데에 있다.
정부관계자들은 암암리에 우리나라 정보통신정책이 그 같은 인프라의 확충과 보급을 가능하게 하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것처럼 설명하지만, 이런 주장은 전혀 검증되지 않은 주장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이 가장 급속도로 보급된 이유는 그것이 정부의 허가를 일체 필요로 하지 않는 부가통신 서비스로 분류되었기 때문이고, 이동통신이 급속하게 확대된 것도 서비스 도입 초기부터 사업자간의 고객유치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에, 즉 경쟁이 활성화되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단말기 보조금 금지라는 희한한 정책으로 사업자간 과열경쟁을 막아야 한다는 정책까지 나왔겠는가.
불행하게도 최근 국내 정보통신 산업은 한편으로는 여전히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의 수용에 재빨리 뛰어들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비스의 발전이 어딘지 지체되고 있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 중 가장 상징적인 것은 바로 인터넷전화 서비스(VoIP) 보급의 답보상태이다.
인터넷 전화서비스가 별로 확대 보급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실상 인터넷 전화의 보급을 막고 있는 정보통신 정책 때문이다. 인터넷 전화 관련 정책을 보면 정부가 내세우는 소비자의 편익에 대한 고려는커녕, 전적으로 기간망사업자, 특히 기존 유선전화 사업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 새로운 서비스의 하나인 인터넷 전화서비스가 경쟁을 활성화하기는커녕 망사업자의 독점 지배력을 오히려 뒷받침 해주고 있다는 현실이 바로 현단계 우리나라 정보통신 정책의 현주소가 아닌가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신규서비스들조차 사실상 독점적 시장 환경을 처음부터 구축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말 통신위원회의 심결 이전까지 이동통신 분야 시장 최대 지배사업자인 SK텔레콤의 무선인터넷 망개방 문제가 대표적인 망사업자의 시장독점적 행태로 지적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망사업자가 망에 대한 시장지배적 우위를 기술장벽으로 교묘히 포장하여 독점하려는 모습은 최근 제시되고 있는 신규서비스들에서조차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가령 지금 KT가 추진하고 있는 와이브로(Wibro) 서비스의 경우, 처음부터 휴대인터넷이라는 용어와는 다르게 단순히 이동환경에서 무선인터넷 접속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폐쇄적인 형태로 각종 컨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이고 있다. 또한 통방융합과 관련하여 CATV 사업자들과 가장 민감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IPTV 서비스 또한 일종의 포털 형태로 프로그램 가이드(EPG)와 셋톱박스의 기술적 특성을 이용하여 독점적이며 폐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망사업자가 망에 대한 독점을 기반으로 꾸준히 망의 공공성을 왜곡하려 한다는 것은 정보통신 분야에서는 별로 그렇게 낯선 명제도 아니다. 우리의 경우 아이러니한 것은 심지어 정부조차 국가경쟁력 향상이라는 목표를 제시하며 그 같은 사적독점의 강화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망의 개방성이나 중립성과 같은 공공정책적 의제는 아예 문제제기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여전히 우리에겐 “균형” 보다도 “빨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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