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7호(200609) 표지이야기 [특허청은 특허 장사꾼인가?]
등록된 특허, 신뢰할 수 있나?
친 특허정책 흐름 속에서 부실특허 양산 우려

오병일 / 네트워커   antiropy@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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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청은 출원된 발명을 심사하여 특허 허여 여부를 결정하는 기관이다. 특허가 부여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고도의 발명이어야 한다. 특허청은 공공 기관으로서 엄격한 심사를 통해 높은 수준의 발명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특허를 부여함으로써, 발명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독점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현재 특허청은 낮은 수준의 발명에 대해서도 특허를 남발하여 특허의 수를 늘리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전 세계적인 ‘친 특허’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공공성을 상실한 특허정책이 어떠한 문제를 야기할지 <네트워커>가 진단해 보았다.


지난 2004년 11월 26일, 열린우리당 김태홍 의원,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 등 국회의원 20여명이 서명한 특허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이 개정안은 최빈국과 같이 의약품 생산능력이 없는 국가의 공중보건문제의 해결을 위해 의약품을 수출할 수 있도록 강제실시를 허용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 것이었다. 여기서 ‘강제실시’란 특허권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률 혹은 행정청의 처분에 의해 특허 발명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독점권인 특허권과 공공의 이익을 조화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소위 ‘수출을 위한 강제실시’ 규정의 도입은 전 해인 2003년 8월 30일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한 결정을 국내법에 수용하는 것이었는데, 국내에서 보기 드물게 특허제도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법 개정으로 주목받았다.

권리자의 이익에 편향된 특허청의 행보

이 개정안은 많은 논란 끝에, 2005년 5월 3일 국회를 통과하였다. 그러나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초기 발의안에서 제도의 실효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많이 왜곡된 형태가 되고 말았다. 이는 의약품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었다. 신약 특허권을 거의 보유하고 있지 않은 국내 제약사들은 오히려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런데 다국적 제약회사보다 법 개정을 요구했던 시민사회단체들을 더욱 분노하게 했던 것은 특허청의 행태였다. 특허청은 법안 발의 이전부터 입법의 지연을 요구하거나, 국회에 상정된 안을 수정하기 위해 지속적인 로비를 벌였다. 특허청의 입장은 다국적 제약사의 입장과 거의 동일한 것이었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전문위원의 검토 의견서는 특허청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으며, 결국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발의된 원안이 아니라 특허청의 수정안이었다.

그런데 특허청의 정책이 특허권자의 이익에 편향되어 있다는 인식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그 이전인 2002년 1월 30일,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둘러싸고 제약회사인 노바티스와 싸우고 있었던 '글리벡 문제해결과 의약품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아래 공대위)는 글리벡에 대한 강제실시를 청구하였다. 그러나 2003년 2월, 특허청은 ‘(강제실시를 인정할 정도로) 공공의 이익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청구를 기각하였다.
이 당시 공대위를 놀라게 한 것 중의 하나는 글리벡에 대한 강제실시 청구가 국내에서는 최초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즉, 특허권 내에 권리자에 대한 제한 조치로서 규정된 강제실시 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일방적으로 실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누군가 강제실시를 청구할 필요가 있겠으나, 특허청이 특허 출원을 활성화하는 사업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 공공의 이익을 위해 특허권을 제한할 수 있는 정책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던 점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심사 과정에서도 특허청이 편파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공대위는 비판하고 있다. 지난 2003년 3월 공대위가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강제실시 허여 여부를 심사하기 위한 산업재산권분쟁조정위원회 회의에서 특허청은 "TRIPS(지적재산권 협정) 발효 이후 공중보건을 목적으로 한 의약품 관련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권 실시 사례는 공식적으로 단 1건도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사실에 어긋나는 자료를 배포하는가 하면, 특허청 공보담당관이 노비타스 서울지사 대표에게 "먼저 보내드린 분쟁조정위원들 명단 받으셨죠? 아마 로비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전하는 등 편파적인 절차를 밟았다고 비판했다.

특허청, 지식재산의 창출에 발벗고 나서다

특허청은 특허, 실용신안, 상표 등 산업재산권에 대한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특허를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자신의 발명 내용을 기재하여 출원하면, 특허청은 해당 발명이 새로운 것인지, 독점권을 부여할 만한 높은 수준의 발명인지 등을 심사하여 특허권을 부여하게 된다. 특허권이라는 독점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기술 혁신과 발명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지만, 낮은 수준의 발명에까지 특허권을 부여한다면 오히려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산업 발전에 역행하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궁극적으로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따라서 특허청은 엄격한 심사를 통해 높은 수준의 발명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특허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특허청은 특허를 늘리는데 발벗고 나서고 있다. 2004년부터 “종래 특허심사·심판 위주에서 적극적으로 지식재산의 창출·활용 분야로 특허행정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주요 정책 기조로 삼고 있다. 특허청은 “혁신주도형 경제를 지향하는 국정방향에 맞추어 지식재산의 창출 → 권리화 → 활용의 전 과정에 걸쳐 특허청의 역할을 강화”할 것이라는 것이다. 2006년에도 4대 정책 목표 중의 하나로 ‘지식재산의 창출기반 강화’를 내세우고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학 및 공공연구기관의 특허 출원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 방안을 시행하는 한편, 지역지식재산센터를 통해 지역 차원의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또한 발명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학생, 여성 등을 주요 대상으로 전시회, 경진대회, 발표회,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 특허청의 노력의 결실(?)인지 2004년 한국의 산업재산권 출원은 연간 32만7천 건으로 세계 4위, 실용신안을 포함한 특허 출원은 17만7천 건으로 세계 3위를 기록했다.

등록된 특허, 믿을 수 있나?

하지만 이러한 특허청의 행보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허청이 특허 출원을 늘리는 데에 주력하는 반면, 정작 주요 업무인 특허 심사는 부실하게 되고 있다는 것이다. 1980년부터 2005년까지 특허의 무효심판 사건을 보면, 총 2,757건의 무효심판 청구 중 1,182건이 인용되어 인용 비율이 45.2%에 이른다. 즉, 무효 여부를 가리는 분쟁이 제기된 등록 특허 중 45.2%가 무효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2004년에 청구된 심판 중에서 무효가 된 비율 역시 48.5%에 이른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특허권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했는데, 반 정도가 무효가 될 정도라면 특허권 주장 자체를 신뢰할 수 있을까?
특허청에서 심사를 하여 등록을 하기로 한 경우라도 제3자가 이의신청을 하여 등록을 다툴 수도 있다. (지난 해 말, 특허법 개정을 통해 이의신청 제도는 폐지되었다.) 그런데,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이의신청이 제기된 2,491건 중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진 것도 854건으로 34%에 이른다. 이에 대해 정보공유연대 남희섭 대표는 특허등록 제도 자체의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하며, 이는 특허출원이 남발되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특허청은 오히려 심사기간을 단축시키려 하는 상황에서 특허 출원은 늘어나다보니 엄격한 심사가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특허청 관계자는 무효심판이 청구된 건에 대한 비율은 높게 나올지 모르지만, 전체 등록된 특허 중에서 무효가 되는 비율은 2~3%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무효심판의 인용 비율로 특허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반박했다. 물론 심사를 가능한 엄격하게 해야겠지만 인간이 하는 이상 완벽하게 하기는 힘들고, 다른 영역의 법률 분쟁에서 전 단계의 판결이 상급심에서 뒤집히는 비율도 비슷한 수준으로 나올 것이라는 얘기다.
또 다른 특허 전문가들도 무효 심판의 인용 비율이 특허 심사의 신뢰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표시하면서, 특허 심판이나 소송에서 특허가 무효화되는 것을 거꾸로 생각하면 부실한 특허를 걸러내는, 특허 제도 내의 자기 통제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는 지적했다. 또한,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며, 다른 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한국 특허청의 심사가 특별히 부실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남희섭 대표는 이에 대해 “무효심판에 걸려있는 특허는 그 나마 중요한 특허”라고 반박했다. 실제 이용되지 않고 있는 특허나 기업들이 방어하기 위해 낸 특허들은 분쟁이 발생할 이유가 없는 ‘급이 낮은’ 특허라는 것이다. 특허된 기술이 어느 정도 실제 활용되는지 정확한 통계를 내기는 어려우나, 특허청 홈페이지에 인용된 2005년 현대리서치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특허기술 사업화율은 33.2%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전체 등록 특허에 대한 무효화 비율이 낮다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무효심판은 침해 소송을 당한 사람이 제기하게 되는데, 특허권을 주장하는 측의 특허권이 실제로 유효한 특허일 확률이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특허의 신뢰성을 문제삼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에서도 특허 무효화율이 높게 나타난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 역시 특허의 신뢰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며, 이는 특허 제도의 내재적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지적재산권 분야 대책위원회’의 의견서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등록 특허의 유효성을 믿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견서에 인용된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지방법원과 연방순회법원에서 1989년부터 1996년까지 18년 동안 239건의 특허침해 소송에서 다룬 299건의 특허 중 무려 46%가 무효로 되었다. 또한,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의 조사에 따르면, 2002년 6월 1일 법원의 판결이 난 의약품 특허의 침해소송 사건에서 무려 73%의 사건에서 특허권자가 패소하였다. 이 가운데, 특허침해가 아니라는 판단이 56%이고 특허가 무효라는 판단이 46%이다. 이 자료는 제네릭 제약사가 특허가 존재하는 의약품과 동일한 의약품을 품목허가 신청한 것에 대해 특허권자가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의 결과이다.

특허청 관계자는 “잘못된 특허로 인해 특허 분쟁과 같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보다 조속한 특허 심사가 가져올 사회적 이득이 훨씬 크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사회적 비용과 이익을 계량화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특허권을 근거로 한 소송의 위협을 감당하기 힘든 중소 업체나 개인들을 고려할 때, 보다 엄격한 심사를 통해 등록 특허의 유효성을 높이지 않는다면 거대 기업에게 유리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한미FTA 협상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바와 같이, 특허청과 식약청의 연계를 통해 식약청에서 특허 침해 가능성이 제기되는 의약품에 대한 허가를 내주지 않기 위해서는 등록 특허의 신뢰성이 전제가 되어야할 것인데, 현재로서는 그러한 신뢰성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전 세계적인 ‘친 특허’ 흐름

특허청의 ‘친 특허정책’은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은 지난 1980년대부터 특허, 저작권 등 지적재산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오고 있으며, WTO 지적재산권 협정(아래 TRIPS)이나 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전 세계적인 지적재산권 제도의 강화를 주도하고 있다. 일본 역시 ‘지식재산입국’을 목표로 지난 2002년 ‘지식재산기본법’을 제정하였으며, 총리 직속으로 ‘지식재산전략본부’를 가동하는 등 범정부 차원에서 지적재산권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 지식재산전략본부는 고이즈미 총리가 본부장을 맡고 모든 장관들이 임원으로 참여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흐름을 쫒아가고 있다. 지난 7월 6일, 산업자원부와 (재)지식재산포럼의 공동 주최로 ‘국가지식재산정책 대토론회’가 개최되었으며, 그 다음 날인 7월 7일 이병석 의원 등 14인 명의로 ‘지식재산기본법안’이 발의되었다. 이 법안은 현재 우리나라의 지적재산권 정책이 산업재산권은 특허청, 저작권은 문화관광부, 반도체칩 등 산업전반에 관한 진흥정책은 산업자원부, 컴퓨터 프로그램은 정보통신부 등 각 부처로 나누어져 있어 체계적인 국가전략 수립에 애로가 있음을 지적하며, “국가적으로 지식재산의 창조, 보호, 활용 및 이에 관련된 인재육성에 관한 중․장기 정책목표와 방향을 포함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하여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대통령 소속 하에 설립하고, 이러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그 산하에 ‘국가지식재산전략추진단’을 두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에 앞서 6월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는 ‘선진경제 도약을 위한 지식재산 전략체계 구축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전략체계 구축을 통해 2015년까지 세계적인 미래원천 특허 10개 이상을 확보하고 연간 1조원 이상의 기술료 수입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하였다.

산업자원부가 내놓은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0년에서 2005년까지 매년 ‘특허권 등 무역수지’가 매년 20억~25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급증하는 특허 출원 및 등록에도 불구하고,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특허권등 무역수지


<표>

* 단위 : 백만달러
* 특허권 등이란 : 특허권 매입대금, 상표권 매입대금, 영업권∙판매권(프랜차이즈) 매입대금, 독점적 산업공정 매입대금, 기타 지적재산권 매입대금 등이 해당됨 (출처 : 산업자원부)

결국 지식재산 강화전략은 특허 기술 확대를 통해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거나 개도국을 대상으로 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허 전쟁의 와중에서 특허 제도를 통한 선진국의 개도국에 대한 경제적 착취의 문제나 특허의 공공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성찰이 없다면, 설사 특허 강국이 된다한들 그것은 개도국 국가의 희생을, 나아가 자국 소비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르헨티나 정부 대표로 WTO TRIPS 협정 등 국제 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던 카를로스 코레아 교수가 지난 2003년 한국 방문 당시 <네트워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되돌아보게 된다. (<네트워커> 4호 참조)
“나는 특허청이 보다 공공성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허청의 고객(client)은 특허 신청자가 아니라 사회 일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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