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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1일은 ‘세계 에이즈의 날(World AIDS Day)’이다. 세계 에이즈의 날은 1988년에 개최된 ‘에이즈 예방 세계 보건장관회의(the 1988 World Summit of Ministers of Health on Programmes for AIDS Prevention)’에서 제정되었다. 1988년부터 2004년까지는 유엔에이즈계획(the United Nations Programme on HIV/AIDS, UNAIDS)이 주관하였으나, 2005년부터 네덜란드에 본부를 둔 국제 민간단체인 ‘세계 에이즈 캠페인(The World AIDS Campaign, WAC)’으로 행사 주관단체가 변경되었다. 2005년과 2006년 세계 에이즈의 날은 ‘에이즈를 막자, 약속을 지켜라.(Stop AIDS : Keep the Promise)’는 주제로 행사가 진행되어 오고 있다. 올해의 세부 주제는 ‘책임성(accountability)’이다. 이런 기조 하에 각 국가별로 해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에이즈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HIV/AIDS 감염인 정보 인권의 현실
HIV/AIDS 감염인의 정보인권을 이야기하기 전에 세계 에이즈의 날을 언급한 이유는 에이즈에 대해서는 세계차원 그리고 국가차원의 ‘책임’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에이즈의 전 세계적 확산에 대한 적극적 조치와 감염인들처럼 취약 계층에 대한 책임은 국가에 있기 때문이다.
HIV/AIDS 감염인이 힘들게 살아가는 이유는 질병이 주는 고통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감염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사회적 죽음을 맞는 상황 탓이다. 직장은 물론, 친구나 가족관계에서도 감염사실은 관계의 해체를 불러온다. 다른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폄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예를 들어 암에 걸렸다고 모든 인간관계가 해체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남성들 사이에서는 성병 같은 질환은 ‘재수 없으면 걸리는 것’이거나, ‘어른 되면서 한 번쯤 겪는 일’로 이해한다. 그러나 HIV에 관해서는 그러한 관대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HIV처럼 사회적 편견이 심한 질환은 개인 신상정보 보호의 필요성이 훨씬 강력히 요청된다. 즉, 다른 질환보다 더욱 특별한 정보보호가 필요하다.
역학조사? 경찰조서!
그러나 한국은 이 반대이다. 국가는 검사를 익명으로 한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로 관리에 들어가는 순간, 즉 'HIV 양성'이 확인되면 바로 역학조사라는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역학조사는 원래 감염의 양상을 파악하여 예방과 치료에 도움을 주고자 만든 연구방법 중 하나지만, 한국의 역학조사는 경찰조서와 같다. 질병의 양태 파악과는 전혀 관계없는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며, 감염인의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성 행태 조사도 있다. 놀라운 것은 1987년 이후 20년 동안 역학조사를 했는데도, 한국에서 제대로 된 역학자료 하나가 없다는 사실이다. 즉, 여태까지 감염인들의 인권침해 논란에도 지속해 왔던 ‘예방을 위한’ 역학조사는 실제 그러한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감염인의 신원조사서이자, 감염이 확인되자마자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수단에 불과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에이즈 지원 시스템 사업
그동안 보건소나 의료기관, 그리고 혈액원 등을 통해서 개인의 감염사실은 질병관리본부로 축적됐으며, 그 중 상당수는 실명으로 등록이 된다. 이렇게 한군데 모이는 정보는 그 활용에 대해 정보주체인 개인의 의사가 전혀 반영될 수 없는 구조에 놓인다. 게다가 정부가 최근 몇 년간 개발하고 있는 소위 ‘에이즈 지원 시스템’ 사업은 이런 정보의 축적과 활용을 보다 용이하게 만들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개인 신상은 물론 그간의 치료경력까지도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는 코드화나 인증 등을 통해 정보의 유출을 막겠다고 하지만, 감염인에 대한 실명관리를 고집하고 있는 정부가 정말 ‘보호’의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통합화, 전산화된 정보의 보호는 상당한 노력과 의지가 수반되어야 하며, 그러한 노력과 의지가 있어도 유출될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감염인 정보에 대한 정부의 불성실한 태도를 보아온 감염인들은 이에 상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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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관리본부 |
에이즈 코호트에 대한 우려들
이번에 정부가 몇몇 의료기관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에이즈 코호트(Cohort)(*) 구축사업’도 그렇게 순조로워 보이지 않는다. 감염인 신상정보 수집에는 적극적이었지만 그 보호에는 책임을 다하지 못했던 정부의 관행이 감염인들에게 코호트에 대한 거부감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코호트란 일단 구축되면 사망까지 감염인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면서, 건강정보는 물론 인구학적 변화(분가, 결혼, 자녀출산, 사망)와 경제적 변화(직업, 수입 등)와 관련된 정보까지도 지속적으로 수집되기 때문이다.
코호트 연구는 질병의 발전과 전파과정의 연구에 중요한 수단이다. 반면 그 과정에서 인권 침해적 요소도 있기에 엄격한 윤리적 기준과 과학적 근거에 의해 수행해야 하는 어려운 연구이다. 그래서 연구 자체의 필요성은 인식하면서도 정부와 연구단체가 그간 보여준 행태 때문에, 감염인들은 코호트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어떤 감염인들은 점차 활성화되는 익명검사로 실명관리가 어렵게 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코호트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냐며 의구심을 갖는다. 주치의가 코호트 연구에 대해 여러 가지 좋은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간단히 말하고 동의를 구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의구심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또한, 연구의 주체가 그간 정보를 집적해 왔던 질병관리본부 ‘에이즈․결핵 팀’이 아니라 ‘혈액․종양 팀’인 점도 정부의 정보 보호 의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한다. 이처럼 코호트 연구가 가지는 여러 우려를 뒤로 한 채 정부가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어느 정도 피해갈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건강정보를 포함한 신상정보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개인의 프라이버시이다. 정부가 이를 인식하고 또한 감염인들이 처한 취약한 환경에 주목하여 그들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해왔다면, 코호트 연구에서 감염인의 협조를 얻기가 더욱 쉽지 않았을까? 예방과 치료 모두 당사자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며 그 노력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벌써 19번째 세계 에이즈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감염인에 대한 지원은 둘째 치고 정보 보호조차 안타까운 현실에서 국가의 ‘책임’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