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9호 정책제언
인터넷을 살리는 저작권법 개정을!

홍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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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말에 정부는 저작권법의 전면적 개정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2005년 초에 또 다시 저작권법이 개정될 예정이다. 1957년에 처음으로 저작권법이 제정된 이래 열두번째 개정에 해당한다. 잠시 저작권법의 개정과정을 돌이켜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첫 개정은 1986년에 이루어졌으니 제정에서 첫 개정까지 29년이 걸렸다. 그런데 그 뒤 19년 동안에 무려 열한번이나 개정된 것이다. 이처럼 1980년대 중반 이후 저작권법이 숱하게 개정된 데에는 세 가지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첫째, 1983년에 미국 정부는 새로운 수입원으로서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둘째, 한국 경제가 커졌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지적재산권의 보호조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셋째, 1980년대 초부터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지적재산권의 재산가치가 커졌다.

이처럼 저작권법의 개정과정에서 우리는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더욱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저작권법의 개정방향과 개정목표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저작권의 보호를 강화하여 저작권 관련 산업의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작권 관련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 저작권의 보호를 강화하는 정책을 펼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저작권의 보호를 강화하는 것은 반드시 이용권의 약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저작권만큼이나 이용권도 보호될 필요가 있다. 저작권의 일방적인 강화는 이용권이라는 정당한 권리를 위축시키고 사회의 발전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둘째, 이용권의 약화는 결국 저작물의 자유로운 이용을 제약한다는 것을 뜻한다. ‘항상 만들어지는 중에 있다’는 뜻을 담고 있는 ‘information’이라는 영어가 잘 보여주듯이 정보는 언제나 정보를 낳는다.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은 저작물의 자유로운 생산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저작권의 강화를 통한 이용권의 약화는 그 목표와는 달리 저작권 관련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1990년대 이후 세계는 인터넷의 대중화라는 새로운 정보화의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지구의 이쪽과 저쪽에 있는 사람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수많은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인류사의 대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이제 인류는 거리의 장벽을 넘어서 언제 어디서나 수많은 정보를 쉽게 손에 넣고 새로운 정보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개인에게 세계를 향해 발언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개인-대중매체’로서 인터넷은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높이고, 이로써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신장을 이루고 있다. 이 점에서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로 상찬되었다.

그러나 인터넷을 정보공유의 장으로 여기기보다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인터넷은 ‘해적’이 들끓는 ‘정보의 바다’이다. 일찍이 빌 게이츠는 인터넷에 대한 이런 견해를 밝히고 미국 정부에 대해 그 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 세계 개인용 컴퓨터의 운영체계를 사실상 완전히 독점해서 인류 역사상 최대의 부당이익을 챙기고 있는 자다운 주장이었다.

미국 정부는 빌 게이츠의 주장을 충실히 받아들이고 있다. 본래 지적재산권은 더 많은 지적 산물의 생산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 물리적 특성상 독점할 수 없는 지적 산물을 독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하는 대신에 생산된 지적 산물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도록 해서 더 많은 지적 산물의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본래 목표는 시나브로 사라져 버리고 오늘날 지적재산권은 단순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독점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물론 이런 악용의 선두에는 미국 정부가 서 있다. 그리고 우리 정부는 이런 미국 정부를 본받아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지적재산권의 보호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2003년의 저작권법 개정은 데이터베이스의 저작권을 무차별적으로 인정하여 저작권법을 ‘데이터베이스 투자보호법’으로 전락시키고, 도서관 간의 디지털 도서의 전송조차 제한해서 디지털 도서관 정책을 사실상 불구화해 버렸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저작권법은 이미 세계 최강의 수준이다.

이렇게 지난 몇 년 사이에 저작권법이 극도로 강화된 결과 인터넷의 정보공유 활동이 위축되고 일반 이용자들이 고소당하는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나게 되었다. 우리의 인터넷은 이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정보의 바다’가 아니다. 한때 누구나 자유롭게 항해하며 온갖 정보를 낚을 수 있던 이 바다는 이제 수많은 수뢰들이 떠다니는 ‘무장한 바다’가 되었으며, 정보라는 물고기의 몸조차 폭탄으로 무장되어 있기 일쑤이고, 심지어 여기저기서 항해자들을 노리고 달려드는 어뢰들도 쉽게 볼 수 있다. 자유로운 항해자들이 멋진 물고기를 낚고 외치던 함성이 이제는 수뢰에 다치거나 어뢰에 치명상을 입고 내지르는 비명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 정보사회의 정보화는 이처럼 인터넷의 존재방식을 자본주의의 원리에 맞추어 바꿔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다시금 저작권법을 전면 개정하겠다고 한다. 이제 인터넷의 자유로운 이용을 막고 지적 산물의 생산을 저해하는 저작권법의 개정은 중단해야 한다. 오히려 정부는 정보의 자유로운 이용이라는 공익을 위한 저작권법의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 세금으로 만들어진 정부 저작물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하고 디지털 도서관 정책의 실질화를 이루는 것은 그 초석이다. 이 초석 위에서 정부는 저작권기증운동이나 정보공유 라이선스에 대한 지원 등 정보공유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 이런 정책을 통해 한국 정부는 현실 정보사회의 변화를 선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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