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9호 사이버
너무 쉬운 공감을 의심한다
‘집단 성폭력 사건’에 부쳐

권김현영  
조회수: 2876 / 추천: 48
최근 남고생들이 중심이 된 집단 성폭력 사건이 인터넷 검색 1순위를 차지하며 네티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밀양여중생집단성폭력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집단적 광기에 휘말린 남학생들, 용의자를 세워놓고 피해자에게 “골라보라”는 걸 수사라고 한 밀양경찰서의 무성의한 수사과정, 음성변조도 하지 않고 인터뷰를 하는 통에 반 친구들에게 알려져 학교도 못 다니게 만든 인권불감증에 걸린 일부 언론 등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가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피해자 인권을 둘러싼 총체적 난국

‘밀양여중생집단성폭력사건’이라는 이름부터 문제였다. 대부분의 성폭력사건들은 피해자의 이름이나 신분 등을 통해 불려지는데, 서울대 S교수가 조교에게 저지른 사건은 서울대 조교사건으로 불려졌고 미군장갑차에 의해 살해된 여중생 사건은 미군장갑차살인사건이 아니라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기억되었다. 이렇게 가해자는 사라지고 피해자만이 기억되는 방식은 결국 피해자의 기본권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2차 3차 가해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

또한 서울에서 일어난 사건은 보통 특정 동네를 지칭해서 불려지거나 밀양, 부산, 대구 등의 비서울지역 사건들은 그 광범위한 지역이 한데 묶여버린다. 이러한 명명은 뿌리 깊은 서울 중심주의의 한 단면이다. 또한 이런 식의 호명 덕분(?)에 밀양에 사는 사람들은 이 사건은 사실 울산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항변하거나 밀양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는 등, 사건 자체의 해결과 예방에 관심을 쏟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불필요한 논쟁과 감정만이 소모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집단성폭력사건 촛불시위 현장에서

이 와중에서 역시 빠지지 않는 것은 네티즌들의 활약(?)이었다. 12월 11일에 소위 ‘밀양성폭력사건’을 규탄하기 위해 네티즌들이 모인다 해서 광화문으로 나가보았다. 현수막을 만들고 각자 작은 피켓을 만들어온 150여명의 네티즌이 모여 있었다. 디시인사이드(DCINSIDE)에서 나왔다는 한 남학생은 “밀양의 개젖같은 새끼들아 10초 셀 때까지 안나오면 다 죽여버린다”라는 문구가 쓰여진 현수막을 몸에 두르고 있었다. 현수막의 뒤편에는 DCINSIDE의 상징인 개죽이가 그려져 있었다.

또 다른 남학생들은 “성폭력, 영혼의 상처”라는 말이 쓰여진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한 여학생은 “니들이 용서받을 줄 알았냐 절대 용서못한다”는 내용이 적힌 A4 용지 크기의 노트를 들고 마스크를 쓰고 있었고, 세 명의 여학생이 “성폭력 범죄 강력 처벌하라”는 피켓을 들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이들은 모두 여중생들이며 최근 여중,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흉악범죄가 너무 많이 일어나 화가 나서 나왔다고 한다. 왜 얼굴을 가리고 있는지를 물었더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얼굴이 공개되었을 경우에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피해를 가늠했기 때문이리라. 곧이어 자발적으로 각자 여기에 온 소감과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발언 시간이 있었는데 DCINSIDE에서 왔다는 남학생이 나왔다. 그는 일본 사이트에서 이 사건이 크게 다루어졌고 네티즌들이 항의성 집회를 열려고 하지만 한국은 워낙 성폭력이 심한 나라라 두 명이나 모일 지 의심스럽다는 글이 올라왔다며 “일본 놈들한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더 많이 모여야 한다”라고 강변했다. 또 다른 남학생은 “이렇게 심각한 사건에 여성부와 여성단체는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광화문 촛불시위에서 여중생들을 만나게 된 것은 반가웠지만, 일본에 대한 민족주의 정서를 건드려가며, 지금까지 피해자 인권을 위해 싸워왔던 여성단체의 노력을 무시해가며, 자신들이 종종 저지르는 가해행위에 대한 성찰 없이 목소리만 키우고 있는 일부 남성 네티즌들을 보는 건 고역이었다. 이 사건의 피해자 실명 등이 본격적으로 인터넷에 떠돌기 시작한 것은 이 사건의 가해자로 추정되는 한 남학생의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DCINSIDE를 주축으로 한 네티즌들에게 공격을 당하면서였다. 결국은 이들과 그들 사이에 벌어진 전쟁에서 희생된 것은 피해자 인권이었던 것이다.

공감은 결코 쉽지 않다

폭력에 저항하고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공감은 상대의 고통과 만나 그 고통을 전이 받는 경험이다. 반성과 성찰 없는 분노, 너무 쉬운 공감은 피해자를 타자화하고 가해자를 비인간화하여 자신은 가해로부터도 피해로부터도 언제나 자유롭다는 오만함과 쉽게 만나게 한다. 성폭력 문제에 공분한 네티즌 중심의 대중 집회가 반가우면서도 한편 걱정스러운 이유는 이 때문이다.

얼마 전 여성네티즌이 주축이 되어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카페가 만들어졌다(http://cafe.naver.com/notyour fault.cafe). 이 카페에는, “너희들은 용감했단다. 너희들로 인해 세상도 많이 변하고 많은 다른 이들도 용기를 얻을거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라는 글이 올라와있다. 그래. 이거다. 공감이란 피해자들의 용기를 기억하고 우리 모두 변화하겠다는 약속이다. 피해자와 함께 세상을 바꿔갈 수 있는 건 이런 공감이 확산되는 것이지 않을까. 이 카페는 여성전용인데, 만약 여성전용이라는 분리주의가 불편한 남성 네티즌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이런 카페를 계속 더 만들었으면 한다. “당신 잘못이 아니예요.” 백만번 말해도 부족한 이 말이 흘러넘치도록.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