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19호 교육과
학교와 개인 정보, 그리고 딜레마

김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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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교는 바쁘다. 학년말이 되면 교사들은 생활기록부 작성의 마무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현재 교직 9년차에 담임 8년차인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 보면, 다른 일은 생각하기 어렵다. 네트워커에 연재를 하는 입장에서 마감일을 못 지켰던 이유를 여기서 변명하며 지면을 빌어 용서를 구한다.

만약, 아무 것도 기록하지 않은 1학년 담임의 입장이라면, 입력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다. 현재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게 되어 있는 항목은 기본인적사항으로 본인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보호자의 이름, 관계, 동거인의 관계와 인원, 주소 등이 있으며, 개인의 인적사항이 아닌 학교생활과 관련된 사항으로는 성적, 출결, 수상경력, 자격증이나 인증, 특별활동(봉사활동, 클럽활동-지금은 계발활동이라고 한다, 자치활동, 적응활동 등) 평가, 진로지도 현황(학생의 희망 직종과 상담 내용), 행동발달상황 및 종합의견 등이 있다. 세부적인 항목까지 합치면 학생 개개인에 대한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가 기록된다고 보면 된다.

이 중 업무를 독립적으로 하는 수상, 성적, 계발활동을 제외하면 모두 담임교사가 입력해야 하는 내용들이다. 물론, 학급당 학생수가 줄어 업무의 과중함은 예전보다 덜 하지만, 그 만큼 질적으로 제고되어야 한다고 볼 때, 예나 지금이나 교사들의 학년말 업무량은 상당히 많은 편이다.

교사들의 학년말 업무량이 많아진다는 것은 결국, 학생 개개인의 정보를 집적하는 양이 많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학년말에 교사들이 하는 일이 교육과정 평가(이론적이며 공식적인 얘기로)이며, 이 평가를 하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정보를 집적, 투입,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교육과정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학생생활기록부에 기록되는 정보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정보가 필요하다. 학생 개인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그 학생이 어떤 종교를 가졌는지, 보호자가 친부모인지 양부모인지, 부모의 직업, 부모의 부부관계는 어떤지 등의 아주 민감한 정보까지 알아야 할 때가 있다.

이런 점에서 교사들은 딜레마에 빠질때가 있다. 예를 들어, 1학년 담임교사와 2학년 담임교사가 다른 경우(대부분이 그렇다) 한 학생은 같은 대답을 두 번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반드시 거쳐야하는 필수적인 과정이지만, 2학년 담임교사가 1학년 때 담임의 정보를 먼저 알고 있다면, 그렇지 않은 경우와 학생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선입견이라는 부정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잘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부분을 잡아낼 가능성을 높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보공유는 반드시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로 개인의 민감한 정보라는 점에서 정보공유의 부적절함은 반드시 지적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계속 말해왔지만, 이런 문제를 공식적으로 논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인권적 측면에서 다가가면 이런 얘기가 된다. 한 학생의 가정환경은 침해받아서도 안 되고, 다른 이에게 공개되어서도 안 되는 중요한 내용이다. 이는 세계인권선언에서 주요하게 논하는 권리이다. 하지만, 교육권의 입장에서도 그런 것이 적용될까?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보를 교육하는 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그 정보가 정확하면 정확할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공유되면 공유될수록 그 학생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커진다. 이것이 딜레마가 아니면 무엇일까? 학교와 개인 정보 보호, 교육과 사생활보호의 권리, 인권에도 딜레마가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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