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0호 사이버
정보인권과 여성인권

권김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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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에 거주하는 미국인 남자 영어강사가 8세에서 12세 사이의 여자아이를 성추행 하는 방법을 사이트에 올려서 네티즌들의 격분을 샀던 사건이 있었다. 8세 여아를 성추행 하는 법을 올린 영어강사는 ‘이 사이트의 검열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 이런 글을 올린다고 했고, 그 글은 물론 분노한 네티즌들의 검열에 걸렸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잉글리쉬 스펙트럼이라는 영어강사 구인구직사이트에 ‘영어를 배우려는 한국 여자들은 자기 쉽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고, 이후 파티 참가 여성들의 직장과 나이, 얼굴 등의 신상을 알아낸 네티즌들은 인터넷 여론재판을 단행한 결과 사생활 침해뿐만 아니라 정신과 치료를 받고 취업이 취소되는 등 생존권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작년 8월에 해외 여행 정보를 나누는 모 사이트에서, 한 여성이 “외국에 나가 한국 남성들을 보면 모르는 척 해라” 라는 조언을 올렸다가 호된 비난을 받은 후 내린 일이 있었다. 이 여성의 말인즉슨, 한국 남성들은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 여성들을 ‘쉬운’ 여성으로 생각하고 무례하게 굴고, 외국 남성들과 어울리고 있으면 필요 이상 간섭하거나 욕을 하기도 한다며 차라리 한국 남성들 앞에서는 국적을 속이라고 충고했다. 이 조언에 대해 그 사이트를 이용하는 한국 남성들의 불만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 글을 올린 여성회원은 글을 삭제하고 사이트에서 사라졌다. 이 각각의 사건은 사이버 성폭력, 명예훼손, 표현의 자유 침해 등 정보인권침해사건으로 볼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이 사건들에서 활약했던 네티즌들의 관심은 거기 있지 않았다.

8세 여자아이를 성추행하는 법을 올린 미국 남성 영어강사는 네티즌의 분노를 자극했지만, 외국 남성들과 함께 파티장에 간 한국 여성들은 그야말로 “화냥년에 양공주”. “걸레”(네이버 뉴스 답변글에서 퍼온 표현) 라는 등의 폭언과 현재 공권력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보다 휠씬 수위가 높은 신상공개를 통한 처벌을 받았다. 또한 해외에서 만나게 되는 한국 남성을 피하자는 한국 여성의 충고는 사실상 검열과 다름없는 형태로 사라졌다.

성인사이트의 수많은 ‘강간상품광고’와 ‘유아성추행광고’, ‘음란파티사진’ 등에 대해 한국 남성 네티즌들은 이렇게 분노하지 않는다. 네티즌들이 끊임없이 모 여대생들이나 여고생, 혹은 여성연예인들 등등에 대해 ‘쉽다’고 말하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뉴스거리조차 되지 못한다. 심지어 어떤 네티즌들은 비밀클럽을 만들어 그런 정보를 공유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외국인이 한국 여성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는 다른 문제로 인식된다. 이것은 한국에 대해 외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에, 한국 아이와 여성이 모욕당하는 것은 곧 한국 남성들의 무력함을 자극하는 일이 된다. 문제의 초점은 피해 그 자체, 인권침해 그 자체가 아니라 한국 남성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이 훼손되었는지의 여부에 놓여있다. 정보인권과 관련된 불평등은 정부 대 개인 간의 불평등, 여성과 남성간의 불평등, 영어사용자와 비영어사용자간의 불평등, 계급간의 불평등 등 권력과 제도를 둘러싼 불평등한 상태와 연동되어 있는 불평등이다. 인터넷 여론 재판에 의한 피해사례가 속출하면서 정보인권은 개인 대 국가, 혹은 자본권력 대 소시민 간의 갈등뿐만 아니라 남성과 여성, 집단과 개인이라는 새로운 불평등의 영역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 점점 명백해지고 있다.

정보수집과 정보접근권에서 차원이 다른 자원을 가지고 있는 집단은 바로 정부와 대기업이다. 이 시점에서 정부의 규제는 마땅히 본인 동의 없이 정보를 수집하여 자기정보결정권을 침해한 제일기획과 대기업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상업적 이익을 챙긴 언론권력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지난 24일 전 청소년보호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강지원 변호사가 네티즌 실명제를 언급하면서 피해 사례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터넷 실명제 논의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모두 자유를 반납해야 하는 처방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네티즌들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곧 여성들의 자유를 포기하고 폭력에 노출되도록 하는 현재의 상황도 수용할 수 없다. 문제는 누군가 정보를 독점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상황 자체이다. 그게 정부든, 대기업이든, 혹은 ‘한국남성’문제에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는 네티즌이건 간에 말이다.

이 복잡한 문제의 해결책은 인터넷 실명제처럼 간단하고 무식한 해법으로 풀리는 게 아니라, 우선 정보인권이란 개념을 차이와 다양성, 권력관계가 고려된 ‘복잡한’ 개념으로 만들어야 풀린다. 인터넷 실명제나 NEIS, 범죄용의자 유전자 DB 구축과 같이 통제로만 치닫고 있는 정보인권 문제를 하나하나 제대로 풀어가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인권의 보편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성별/인종/나이/계급 등 차이를 가진 집단 간의 불평등을 재검토하는 정보인권 개념의 여성주의적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언젠가, 곧, 10년 뒤에는... 감시의 눈을 피할 수 없게 된다거나... 누군가 이 정보를 오남용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가정법에 근거한 정보인권 침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들이 겪고 있는 인터넷 범죄 피해로부터의 해방이 정보인권운동과 함께 가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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