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0호 장애없는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한 방송법 개정

김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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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한국농아인협회(이하 농아인협회)가 인권위원회에 선거방송에 대한 차별의 구제를 요청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한 바 있다. 진정의 골자는, 제17대 총선의 선거방송과 관련하여 청각장애인들이 TV토론회 시청이 어려워 참정권을 행사하는데 제약을 받았으므로 이를 시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농아인협회 조사에 의하면 지난 17대 총선 때 전국적으로 치러진 TV토론에서 수화통역을 실시하지 않은 곳이 20%가량 나타났다. 하지만 이 수치는 선거법에서 규제하고 있는 내용뿐이고, 선거법에 규제를 받지 않는 선거와 관련된 방송프로그램까지 합하면 청각장애인들이 참정권 행사에 제약을 받는 수치는 이보다 많다. 이 문제의 원인은 현행 우리나라 선거법에서 청각장애인 참정권 행사 보장과 관련한 내용이 임의(任意)조항이기 때문이다.

농아인협회의 진정에 대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제20차 전원위원회를 통하여 국회의장 및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에게 청각장애선거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하여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이러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입장표명은 장애인의 방송 접근에 있어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이 입장 표명이 비록 선거방송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선거관련 방송만이 아니라 장애인들도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TV의 정보에 접근하고, 프로그램을 선택하여 시청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TV시청은 가장 흔한 여가 활동 가운데 하나이다. 더욱이 정보화 사회가 가속화되면서 디지털방송, 데이터방송, 디지털위성방송(DMB) 등 다양한 방송서비스가 시청자를 유혹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방송컨텐츠를 담는 그릇의 하나인 TV도 과거 ‘바보상자’의 오명을 벗고 이제는 ‘강력한 정보전달 도구’로 탈바꿈하고 있다. 하지만 신체적인 장애로 방송에 접근하기 어려운 35만명(정부추정)의 시각, 청각장애인들의 방송시청환경은 아직도 열악하기만 하다. 시각장애인의 TV시청을 위해서는 화면에 나타나는 장면을 성우가 읽어주는 화면해설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서비스를 하는 방송은 현재 지상파의 몇 개 프로그램에 한정되어 있다.

청각장애인의 TV시청을 위해서는 자막방송이나 수화통역방송이 필요하다. 자막방송은 TV화면에 편집된 자막과 달리 별도의 신호(Line 21)로 송출하는 폐쇄형태로 우리나라는 지난 99년부터 실시해오고 있다. 자막방송이 폐쇄형태이기 때문에 자막수신용 TV나 별도의 자막수신기를 설치하여야만 시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6년째를 맞는 자막방송은 현재 20%를 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도 KBS, MBC, SBS, EBS, KTV 5개사에 한정되어 있고. 지역민방이나 위성방송, 종합유선방송에서 자막방송을 하지 않아 청각장애인들이 TV시청을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지난해 실시한 수능방송에 TV자막이 실시되지 않아 청각장애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당한 바 있다. 자막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TV수상기도 미국의 경우는 1990년에 자막수신장치법(Television Decoder Circuitry Act 1990) 제정으로 93년부터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TV수상기도 자막수신칩을 장착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TV가운데 자막수신칩을 장착한 TV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지난 99년부터 농아인협회에서 자막수신기를 청각장애인들에게 보급하고 있지만, 어떤 TV를 구입하더라도 자막방송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하는 선택권 보장은 요원한 실정이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방송은 TV화면 한 귀퉁이에 수화통역을 내보내는 방송이다. 수화통역방송의 경우는 90년대 중반이후부터 실시되었지만 현재 방영시간은 방송사마다 주당 50분 내외에 불과하며, 시간도 시청률이 낮은 오후 6시대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지난 2000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방송환경이 많이 변했음에도 수화통역 방송의 경우는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다. 농아인협회 등에서는 수화언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 시청자의 시청권을 위하여 수화통역방송을 확대하고 주시청자시간대에 방영되는 뉴스시간에 수화통역을 넣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반영이 안되고 있다.

앞서 밝힌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표명에서 보았듯이 장애인 방송접근권이 처해있는 문제는 권리보장 차원에서 접근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선행하여야 하는 것이 방송법 개정이다. 이것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지만 방송법이 개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자막방송이나 수화통역방송, 화면해설방송, TV수상기의 접근문제가 복지서비스의 입장만이 아니라 방송정책의 하나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자막이나 화면해설 프로그램이 있는 몇몇 방송프로그램만 어쩔 수 없이 시청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시청하고자 하는 방송을 선택하여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방송법 개정을 통하여 방송사업자나 수상기제조업자를 일정부분 규제하여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농아인협회는 지난 97년부터 장애인 방송접근권 확대 운동을 통하여 몇 차례 방송법개정을 성사시켰다. 최근에 국회에 개정을 요구하는 내용은 화면해설·자막·수화통역 의무송출을 통한 방송사업자의 장애인방송접근권 강화, 수화통역방송 폐쇄송출, 디지털방송에서 장애인이 소외되지 않도록 자막·수화통역 등 수신환경마련 의무화이다. 따라서 2월에 열릴 임시국회에서는 장애인도 정보주체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시대적인 소명의식을 가지고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방송법을 반드시 개정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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