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0호 디지털칼럼
유비쿼터스 사회와 회의공개

전응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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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당 벌써 공개되었어야 했을 해묵은 한일협정 문서 일부가 공개된 것을 가지고 정치권이 한주 내내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난데없이 미국에서는 연방수사국(FBI)이 정보자유법에 따라 정보를 공개한 것을 놓고 법정 시비가 붙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내용을 보니 실제 정보자유법에 따라 청구한 문서자료 일부가 누락되었다는 것인데 문제를 삼은 정보자유운동 그룹의 주장은 FBI의 문서자동검색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FBI측에서는 자동검색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 뿐이므로 기각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었다. 권력을 가진 쪽에서 보면 정보공개가 불편하기는 미국이나 우리나 똑같은 것 같은데 한쪽에서는 정보의 누락이나 정확성은 문제가 될지언정 최소한 정보공개가 정략적 의도에서 나왔느니 그렇지 않느니 하는 밑도끝도 없는 시비는 없는 것 같다.

민간단체 관계자로서 정부관련 위원회 회의에 참여하다 보면 늘상 부딪치는 일인데 회의 벽두부터 회의를 공개하자는 의견을 가지고 수십분에서 거의 한시간 이상 논란을 벌인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회의 공개 절대불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논지도 어쩌면 그렇게 꼭 닮았는지 녹음기 틀어놓은 양 똑같은 주장을 반복한다.

그때마다 필자도 늘 같은 주장을 반복해 왔다. “이해당사자들도 모두 지켜보는 상황에서 책임 있게 주장을 펴는 건 권장해야 할 일이다”, “이해당사자가 오히려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다”, “회의장 밖에서 회의내용과 관련하여 생기는 문제는 법에 의해 모두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런 주장을 펼친 후에도 쇠귀에 경읽기 같은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면 과연 우리사회가 브로드밴드 강국인가 의심스러운 생각도 든다. 인터넷이라는 게 결국은 의사소통의 자유, 의사소통 채널의 개방이 아니던가 말이다.

국제적인 협상테이블에서도 회의내용을 모두 공개하고 회의를 지켜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회의록을 모두 공개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최근에는 모든 회의내용을 MP3 파일에 담아 공개하는 것까지 보아 온 필자로서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 뿐이랴. 최근 해외에서 중요한 정보통신분야의 화두가 되고 있는 게 바로 대안매체로서의 블로그에 대한 관심이다. 모든 사건이 벌어지는 곳, 이슈가 있는 곳, 아시아의 해일사태나 국제회의장에서 벌어지는 토론이나 대부분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블로깅하는 블로거들에 의해 그 내용들이 전세계로 공개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전통적인 주류미디어들도 정보수집의 상당부분을 블로그에 의존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회의가 열리는 곳마디 포드캐스팅(podcasting; 애플 ipod를 가지고 즉석 온라인 방송을 중계하는 것)을 하고 블로그에 링크를 만들어서 이를 공개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확실히 유비쿼터스 코리아의 미래는 서비스강국의 밝은 비전만이 아니라 파놉티콘(Panopticon)의 감시사회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에 대하여 공개하고 리포트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투명사회의 비전도 포함하고 있다. 어디에서나 끊김없는 네트워킹을 하자고 하면서 오프라인 회의는 공개하지 말자는 건 앞뒤가 안맞아도 너무 안맞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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