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0호 사람들@넷
성역없는 여성주의를 지향한다
여성주의 온라인 저널 일다(www.ildaro.com)를 만나다

김은주  
조회수: 3257 / 추천: 55
지난 1월18일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톱기사는 ‘명문대 타령하는 언론’을 제목으로 한, 매체비평 기사였다. 기사는 시종 학벌계급을 지향하는 이 나라의 사회 풍토를 비판하며 언론이 그러한 현상을 주동하고 바람 잡았음을 성토하고 있다. 발 빠른 사교육 현장에서의 명문대 부채질 홍보와 상업화된 방송의 명문대 지상주의를 표방한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메스를 들이댔다. 미국 명문대까지 끌어들인 학벌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 기사의 댓글에는 여성들만의 섬세한(?) 동조의 글(미처 알지 못했던)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학벌 제일주의를 언론이 부추기고 있다는 해석이 자못 자의적으로 흐를 수 있는 한계가 있음에도 이 기사는 생동감 있는 사례들을 들어, 오늘 본 조간신문을 의심케 했다.
여전히 사회 곳곳에 묻혀 있는 여성의 목소리와 인권의 사각지대로부터 신음하고 있는 소수자들을 위해 2003년 창간한 일다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과 사회의 차별에 대항하여 기득권이 아닌 소수자의 시선을 견지하며 사회를 바라보는 인권전문매체다.

조이여울 편집장은, 일다의 탄생과 성격이 2002년 대선을 전후로 하여 논란이 된 ‘박근혜 논쟁’과, 이후 계속된 여성정치세력화의 방식을 둘러싼 논쟁과 연관이 깊다고 설명한다.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여성정치세력화와 박근혜라는 인물을 연결시키는 방식에 대해 반대했지만, 그러한 의견을 피력할 만한 통로가 마땅치 않았고 그럴만한 용기도 부족했다는 것.

조 편집장은 운동이든 담론이든 무언가 잘못 나가고 있을 때 이를 비판하고 제동을 걸어서 다른 길을 열어주는 목소리가 반드시 필요한데, 지금까지 여성주의 진영에선 이러한 면이 역부족이었다고 분석했다. 결국 일다를 만든 사람들은 무엇보다 여성주의 담론을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 즉 여성주의 매체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일다의 창간은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주의 담론이 무엇이며, 여성의 인권을 위해 어떤 것들에 주목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사회에 이슈를 제기하는 통로를 마련한 것이다.

반면 일다 밖의 여성운동 진영은 그 동안 성장해오면서 가부장적인 사회에 맞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졌다. 그러나 당시 여성운동 진영은 하나의 의견을 갖기보다 그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배제된 여성들이 많았다. 일다는 여성들 간에도, 여성운동 진영 안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에 주목하며 그 차이를 드러내고, 그간 배제되어 온 여성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담고자 했던 것이다.
최근 일다는 이성애중심, 혈통중심, 남성중심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만연해있는 우리 사회를 향해 가부장제의 근간인 ‘가족제도’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하고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위계와 차별을 야기하는 가족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대안과 새로운 담론을 생성하고자 한다는 것이 조 편집장의 설명이다.

한편 독자들의 후원에 의지해서 운영하고 있는 일다는, 매체의 영향력에 비해 내부의 자생력은 상당히 미흡하다. 시스템 상으론 기존 언론과는 비교할 수 없고, 그렇다고 운동단체나 여성주의자 커뮤니티와의 다른 성격 때문에도 겪는 과도기적(?) 어려움이 아닐까 싶다. 재정이 확보되지 않으면 아무리 일다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더라도, 여성주의 저널로서의 성격을 유지해 나갈 인력을 확보할 수 없는데, 이러한 고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부분이고, 아직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일다가 추구하는 것은 클 수 있지만 일다를 꾸려가는 손길 하나하나는 이렇듯 부분, 부분에서 진지하고 성실하며 섬세하다. 일반 여타 온라인 매체들이 그렇듯 일다 역시 여성주의 저널 ‘일다’의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경력을 불문하고 누구나 ‘일다’의 기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여성들의 삶 속에서 잡아낸 경험들을 풀어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유명세에 관계없이 누구나 의견 개진이 가능하다.

“여성주의에 성역은 없습니다.”

비판과 성찰이 없이 발전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여성주의 저널 ‘일다’가 독자들과 함께 논쟁적이고 발전적인 여성주의 담론을 만들어나갈 것을 다짐하며 외치는 ‘또 하나’구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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