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1호 정책제언
호주제 폐지의 대안, ‘목적별신분등록법’

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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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의 호주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고 나서 호주제 폐지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어졌다. 17대 국회가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의 통과를 이번 임시국회로 미루면서 조건으로 달았던 대체 법안에 대한 논의도 지난 21일 법사위의 공청회를 통해서 이루어져 무난하게 수순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재 정부와 대법원이 내놓은 대체 법안은 반차별과 인권의 시각에서 보았을때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호주제가 가지고 있었던 차별의 문제와 국민 통제의 성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호주제 폐지를 통해서 새롭게 마련되는 국가신분등록제도는 호주제가 가진 성차별, 프라이버시권 침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강요 등의 문제점을 해결하여, 차별금지와 소수자 보호, 정보인권 보장 등 인권의 원칙에 맞게 제정되어야 한다. 목적별신분등록제실현연대는 국가신분등록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면서 인권침해적인 요소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목적별 편제방안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신분등록제도란?

국가신분등록제도는 개인이 출생, 사망, 국적, 혼인을 국가로부터 증명하는 것으로 국가 안에서 개인의 기본적인 법률 지위를 규정하는 제도이다. 과거 국가신분등록제도가 국민관리를 위해 개인의 정보를 국가가 강제로 수집하던 것에서 벗어나 “한 나라의 국민임과 필요한 신분사항을 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개인의 정보를 국가에 등록하는 제도”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호주제도가 개인의 신분을 증명하는 것으로 쓰이면서 불가피하게 개인은 호주와의 관계를 통해서 신분을 증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가(家)개념이 호주와 호주에 입적된 사람으로 구성됨으로써 개인의 가족사항이 곧 신분에 대한 증명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그에 따라 소위 ‘정상적인’ 가족이 아닌 사람들은 현실에서 다양한 차별에 노출되었다. 또한 개인과 가족의 신분변동 사항을 한 곳에 모두 기록함으로써 악용될 소지가 다분했고 프라이버시권은 철저히 침해당했으며, 그것이 현실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차별받지 않기 위해 개인의 신분을 왜곡하거나 호주제가 지향하는 가치(가부장성, 정상가족중심성)에 현실의 삶이 끌려가기도 했다. 따라서 새롭게 제정되는 신분등록제도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본래의 신분등록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정보의 범위와 쓰임새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대법원과 법무부에서 제시한 안에 대한 비판

대법원에서 제시한 ‘혼합형 1인 1적제’와 법무부에서 제시한 ‘본인 기준의 가족기록부’는 크게 두 가지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프라이버시권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의 안은 본적, 구 호적, 가족사항 등을 한 곳에 기재함으로써 신분등록제도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고, 목적이 다른 정보들을 한 곳에 집적시키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대법원과 법무부는 증명방식을 목적별로 제한함으로써 프라이버시권 보호를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보의 관리와 접근의 문제 또한 중요한 사항이며 국가라고 해서 프라이버시의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한 전산화된 정보의 검색을 본적과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하겠다고 하는데, 폐지되어야 마땅한 본적을 적극적으로 검색의 용도로 쓴다는 것은 호주제 폐지의 취지를 부정하는 한심한 처사로 밖에 볼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차별의 소지를 담고 있는 주민등록번호를 쓰는 것도 정부의 정보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한다.

둘째, 두 가지의 안은 호주제 폐지를 통해서 민법상의 가(家)개념이 폐지될 상황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가의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두 가지의 안은 모두 배우자·부모·자녀, 형제자매, 배우자의 부모를 가족의 범위로 제시하고 있고 모두 가족해체에 대한 우려를 하는 국민의 정서를 반영한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이 안이 정상가족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는 이유는 혼인관계와 특정한 관점에서 선택된 혈연관계가 ‘가족’이라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분등록제도에 현실의 가족을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며(가족의 형태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신분등록제도는 법적인 관계를 증명하는데 있어서 혈연관계와 혼인관계를 확인하는 절차를 두는 것이라는 점과 신분등록제도 안에서 가족관계를 기록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족이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반차별과 인권의 감수성으로 마련하는 목적별신분등록법

목적별 편제방안은 개인의 신분에 등록된 사항을 기록하는 신분등록부, 신분변동부와 혼인과 관련된 사항을 기록하는 혼인등록부, 혼인변동부로 구성된다. 관할지역과 일련번호로 구성되는 번호와 이름, 출생적을 통해 각각의 공부(公簿)를 찾을 수 있다. 각 신분등록부와 혼인등록부는 최신의 내용만 기록되고 이전의 사항은 각각의 변동부로 관리됨으로써 신분, 혼인등록부만으로는 이전의 기록을 알 수 없는데, 변동된 기록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는 목적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구분이 필요한 것이다. 신분등록제도에는 가족과 관련된 정보를 전혀 담지 않으며 다만, 부기번호에는 부모의 혼인등록번호를 적음으로써 친자확인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서 형제자매 등 혈연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단, 부모를 알 수 없는 자에 대해서는 가혼(假婚)등록번호를 부여한다.
목적에 맞게 최소한의 정보를 담는 것은 프라이버시 보호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이다. 이를 통해 개인은 자신의 정보에 대해 통제권을 갖고, 국가의 과도한 정보 수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권침해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가신분등록제 안에 어떠한 정보가 필요한 것이냐를 판단하고, 기록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 안에 담기는 정보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다.

국가가 행정의 효율을 국민의 편의라는 말로 혼동 시켜 국민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다양한 형태의 삶이 ‘비정상’으로 낙인찍히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개인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신분과 관련된 정보를 국가에 등록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하며 그에 따라 국민의 인권보호에 부합할 수 있는 목적별신분등록법을 채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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