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1호 사이버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
가부장이 가족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

변형석  
조회수: 2596 / 추천: 49
이래저래 이 시대에 가족이 문제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여성주의적 입장에서야 ‘이성애 가족중심주의’를 진작부터 비판해왔지만, 여성들의 출산파업과 높아지는 이혼률이라는 수치적 압박에,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종류의 갈등상황이 더해지면서 가족은 쉽지 않은 이 시대의 문제적 키워드가 되어가고 있다. 오죽하면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라는, 전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명칭의 부서로 변경하면서까지 가족 담론에 대응하고 있을까.

가족이 위기에 처한 이유는 명백하다. 사회 구성원 재생산 기능을 담당하는 최소단위로서의 가족은 여성들의 출산파업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여성들의 출산 파업의 이유는 장기적 불황과 불안정 고용에 맞서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는 있으나, 반면에 경제활동과 육아를 동시에 수행할 어떤 충분한 사회제도적 지원책도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은 경제활동으로부터의 퇴출을 의미하는 세상에서 여성들이 출산을 택할 이유는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다. 육아에 대한 부담은 여전히 여성들만의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으로 곤란에 처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완충지대로써 존재하던 가족의 기능 역시 그것의 급속한 해체로 인해 제기능을 못하고 있다. 가족 해체 상황은 성장과 개발중심의 사회이데올로기에 묻혀왔던 가족 구성원 각각의 목소리, 특히 여성의 목소리가 제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이루어지는 일이다. 가부장적 가족주의 안에서 희생과 헌신만을 요구받던 여성들, 사회가 가족에게 떠넘긴 노인, 장기투병자, 장애인, 아이, 청소년에 대한 돌봄의 강요,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착취당하며 쌓이는 가부장의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위로해야하는 역할까지를 온몸으로 받아오던 여성들이, 그 부당함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순간, 가족은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국가 나름대로 위기관리에 나섰다. 그 위기관리란, 다시 여성들을 가족 안에 묶어두는 일이다. 가족과 가정의 ‘가치’를 새로이 되새기고, 조금의 지원책으로 여성들을 달래어 가족으로 돌아오기를 재촉하는 일이다. ‘건강가정기본법’과 ‘여성가족부’는 각기 다른 정책적 지향을 가지고 있으나 결국은 그 동일한 목적에서 수렴된다.

여기에 또 다른 위기에 처한 ‘가부장’들의 가상한 노력이 있으니, 그것이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란 책에 고스란히 담긴 방법이다. 이 책은 MBC 기자인 윤영무가 쓴 책으로, 2004년 출판된 이후 최악의 불황에 시달리는 출판시장에서 두 달 만에 14쇄를 찍어낼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책이다.

나는 애초에 이 책이 일말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포함할 것이라 기대했었다. ‘장남’이라는, 자신이 스스로 원하지 않은 가족 안에서의, 사회 안에서의 역할에 대해 스스로가 느끼는 부담과 곤란에 대한 조금의 성찰이라도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다. 그 기대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자기 아들이 공부는 안하고 컴퓨터 게임만 하는 것에 화가 나서, 자기 아들을 두들겨 패고, 컴퓨터를 야구방망이로 부숴버렸다는 이야기가 자랑처럼 나와 있는 글의 서두를 보자마자 책을 집어 던지고 싶어졌다. 저게 미친 가부장이지 성찰은 무슨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이겠는가(폭행사건은 아내, 동생 할 것 없이 책 전체에 이어진다. 내가 대신 고소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면서 궁금해졌다, 대체 왜 이 책을 사람들이 보는가, 사람들이 모두 미친 가부장인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것이었다. 이 책이 가진 장점은, 가부장으로서의 위기를 풀기 위한 가장 남성적인 방식의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각종의 처세술 서적들이 모두 ‘공적 영역’에서 남성들의 생활방식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었던 데 반해 가족이라는 ‘사적 영역’에 대한 조언은 전무했다. 아내는 이혼하겠다며 협박하고 아이들은 아버지의 말에 아무런 권위도 느끼지 않으며, 돈벌어오는 자로 전락하였으나 그나마 돈벌어오는 자로서의 자신의 자리도 불확실한 세상에서, 자신의 처지를 해결할 조언이 가부장들 사이에서 절실하게 필요했던 셈이다.

그 조언이란 이런 것인데, 장모님을 구워삶는 방법, 장모님을 구워삶아서 아내에게 점수따는 방법, 동생에게 가끔 전화하는 테크닉, 제수씨에게 점수따는 방법, 가족모임에서 밥값내며 생색내는 방법 등등, 아주 가관인 것이 대개는 그 모두를 ‘돈’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나마 ‘사적 영역’에서의 ‘사적 관계’를 푸는 방법이라기보다 ‘사적 영역’까지 ‘공적 영역’으로 생각하고, ‘공적 영역’에서 하듯이, ‘돈’으로 문제를 잘 해결해보라는 조언인 것이다. 어쩌면 이런 조언이, 가부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상상력과 성찰의 궁핍함에 대해 말해 무엇하겠냐만, 그래도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방법은, 문제의 본질로 뛰어들어가는 접근방법이 아니라, 문제를 봉합하고 근근히 유지하기 위한 얄팍한 테크닉들이다. 왜 아내와 자식과 형제들 간의 소통에 실패하였는가를 성찰하며 답을 찾는 식이 아니라, 우는 아이에게 과자 사먹으라며 돈주는 식이다.

필요한 답은 이런 것이다. 그 모든 문제의 근원에 자기 자신의 가부장적 의식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는 일이다. 소통과 관계에 무능력한 남성의 일상이 문제를 만들고 있음을 감지하는 일이다. 호감과 성의를 표현하는 방법에서 기껏 ‘돈’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정서적 ‘빈곤’을 깨닫는 일이다. 그 가부장적 삶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 이상, 그런 얄팍한 방법은 그야말로 미봉책에 불과함을 절실하게 통감하는 일이다. 그런 방법으로, 길면 10년쯤 가족의 파탄을 미룰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럼 10년 뒤에는 어쩌자는 것인가. 가족이 그렇게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라면, 괜히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나, 카스테라와 어머니 같은 신파로 가족의 의미를 우기지 말고,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이 시간에도 텔레비전에서는, 가족 간에 목도리를 돌려가며 애틋한 감성을 자극하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말, 가족입니다”라는 공익광고가 흘러나온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제대로라도 하란 말을 하고 싶어진다. 더불어, 가족만이 그렇게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많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그렇게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니, 가족만 중요하다고 우기지 말란 말을 덧붙이고 싶어진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