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1호 영화
평범하지만 여운이 남는다
<말아톤>(정윤철, 2005)

함주리  
조회수: 3140 / 추천: 56
초원은 자폐아다. 20살의 나이지만 5세의 지능에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다. 어떻게든 초원이 ‘정상’인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게 하기 위해 애쓰는 엄마가 있다. 실화가 바탕이 된 <말아톤>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과도한 감정의 폭발이나 <포레스트 검프>식의 판타지로 얼버무리지도 않았다. 차분히 달리는 초원을 따라간다. 극적 긴장감을 끌어내기 위한 절망적인 사건도 배치하지 않는다. 또한 영웅을 만들어 내지도 않는다. 이러한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기도 하다.

<말아톤>은 달리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초원과 3시간 내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목표를 세운 엄마, 경숙을 중심으로 내키지 않는 부탁을 받은 초원의 마라톤 코치, 초원에게만 신경 쓰느라 엄마의 무관심을 감당해야 하는 초원의 동생과 아빠의 이야기이다. 쉽게 장애인의 인간 승리를 다룬 영화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감독은 그렇게 그리지 않았다.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가 아니라,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소박하게 풀어간다.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타인을 위한 혹은 자신을 위한 감정 표현을 드러내지 못하는 초원과 가족과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담는다.

관계와 소통을 중심에 둔 이 영화는 마라톤을 통로로 삼는다. 그래서 초원의 마라톤 완주를 온갖 역경을 이겨낸 절정의 순간으로 만들어 내지 않는다. 살아가는 과정에 한 목표를 이루어 낸 것으로 그리고 그것이 타인과 감정이나 생각을 교류할 의도가 없었던 초원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통로로 보여준다. 또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실화에 기반을 두고 더구나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범하는 오류도 저지르지 않는다. 누군가의 성공담에서 유추하는 뭔가 극적이고 화려한 뒷얘기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저버린다. 그저 영화에서 초원은 다른 특징을 가진 달리기에 소질이 있는 청년이다. 또한 자폐아 자녀를 둔 가족의 고통이나 사회적 인식을 외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시종일관 비장함과 무거움으로 이러한 문제들을 접근하지도 않는다. 영화 간간히 내비치는 유머는 비장애인과 다른 특성을 지닌 자폐증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웃음을 만들며 자연스럽게 자폐아에 대한 이해로 다가서려고 한다. 그래서 <말아톤>이 주는 웃음, 눈물, 감동은 감상적이지 않으면서 차분하게 관객의 동의를 끌어낸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한줄 시놉시스 정보로 얻어지는 우리의 기대나 우려를 저버리기도 한다. 스포츠 영화이거나 장애인 삶에 대한 인간 극장 같은 것을 말이다. 그러나 영화는 상투적인 고군분투라던가 인간 한계 도전의 치장된 숭고함, 또는 ‘정상성’이 가득한 세상에서 ‘정상’과 다른 사람들의 고난에 찬 삶을 힘들게 그려내지 않는다. 마라톤은 매개이며 초원의 성취가 그의 인생을 뒤바꿔버리는 커다란 사건이 아니라 과정의 하나로 보여준다. 그래서 극에 절정에 달하는 마라톤 완주 장면은 생각만큼 극적이지 않다. 엄마의 손을 놓고 달려 나가는 초원은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세계에 빠져있을 것이다. 하지만 초원은 목표를 이루어 가는 과정을 온 몸으로 겼었으며, 그와 함께 가족은 그 속에서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많은 주요 갈등을 스스로 달리기를 선택한 초원으로 덮어버리기도 한다. 긴 세월동안 초원의 가족이 안고 있는 문제는 일순간 날라가 버린다. 마라톤을 완주했다고 초원의 엄마 경숙이 쓰러졌다고 20년 동안 초원으로 인한 갈등이 사라지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이 영화는 많은 미덕을 갖고 있다. 감독은 강요된 감동을 만들어 내지 않으며 차분히 밋밋하다 싶을 정도로 초원을 따라 간다.

<말아톤>은 잘 만들어진 평범한 드라마다. 그래서 주목하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화려하거나 새롭지는 않지만, 호기심 가득히 바라볼 수 있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말끔한 표정으로 소박하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폭발적인 감동을 주기보다는 조용히 여운이 남는 감동을 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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