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1호 북마크
진리는 상상의 문제다
어슐러 르 귄, <어둠의 왼손>

이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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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라는 문학장르는 처음에는 유럽에서 풍부한 상상력의 형식실험을 통해 태어나 미국에서 과학잡지들을 통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다. 장르SF가 완성되는 70년대에도 미래에 대한 기술적 유토피아니즘을 보여주는 고전SF에서 수준높은 자연과학적 논리를 소설적 구성과 접목시키는데 중점을 두는 하드SF에 이르기까지 소위 정통 SF소설은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성장하는 과학세대들의 기대와 상상력에 부응하는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흐름은 SF소설에 탄탄한 과학적 논리를 요구하는 만큼 미래의 예언을 요구하고 이들의 결론은 로마클럽의 보고서처럼 과학기술의 결과의 양극단인 인간 자유의 점진적인 개화와 모든 지상생물의 멸종 사이의 어디쯤 위치하게 된다.

이와 같은 SF소설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은 매우 낯설고 당혹스러운 느낌을 준다. 그녀의 대표작이기도한 <어둠의 왼손>은 ‘헤인 Hain’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은하연합을 배경으로 공유하는 각각의 독립된 작품들로 구성된 ‘헤인 Hain’ 시리즈 중의 하나이며, 우주연합인 에큐멘에서 파견된 지구인 겐리 아이가 게센이라는 겨울 행성을 가입시키려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어둠의 왼손>에서 우주연합과 엔시블과 같이 현대생활의 기본을 이루는 과학과 기술로부터 이끌어낸 은유들이 사용되지만 그녀의 소설에는 하드SF와는 다르게 엄격하게 계산된 과학적 논리나 기술적 상상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르 귄은 전통적인 SF소설에 대한 통념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면서 그런 요소들이 SF들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겠지만 적어도 소설가의 임무는 예언이 아니라 기술하는 것, 즉 허구와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소설가들은 자기 시간의 3분의 1은 잠과 꿈으로 나머지는 거짓말로 보낸다고 능청스럽게 농담하며.

그녀는 <어둠의 왼손>에서 남녀 성구별이 없는 게센 행성을 보여준다. 게센인들은 남녀생식기를 모두 갖고 있는 자웅동체로 1년 중 6분의 5정도의 기간은 잠재된 남녀양성을 가진 채 중성으로 지내다 발정기인 ‘케머’ 기간이 되면 남자와 여자 중 한쪽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케머’가 끝나면 다시 중성으로 돌아오지만 다음번 ‘케머’에는 이전의 ‘케머’와는 다른 성으로 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한 게센인은 어떤 아이들에게는 어머니가 될 수도, 다른 아이들에게는 아버지가 될 수도 있는 존재이다. 에큐멘에서 파견된 지구인 겐리 아이에게 이러한 게센인들은 이해불가능한 대상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유일한 겐리아이의 협력자인 에스트라벤이 보기에는 오히려 겐리 아이가 하나의 성밖에 갖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이고 1년 내내 ‘케머’ 상태에 머물러 있는 성도착자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겐리 아이는 하나의 성으로만 존재하는 자신은 게센인의 친구가 될 수도 없고, 게다가 그 두 존재 사이에 사랑은 더욱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르 귄은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서로 다른 존재들 사이의 관계에서 어떻게 의사소통이 가능한지를 차분하고 느리게 따라간다.

르 귄이 <어둠과 왼손>의 허구와 거짓말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그녀가 천년 뒤에 지구인들이 남녀동성이 될 것이라고, 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저주로 남녀동성이 되고 말거라고 미리 예언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소설이 가상적인 남녀동성체를 통하여 남성성/여성성을 새롭게 고찰하게 하여 성차를 없애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페미니즘적 비평이자 은유라고 평가하는 것도 너무 단순화하는 일일 것이다. 오히려 르 귄은 진리는 상상의 문제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이 지점에서 그녀의 소설은 진실이거나 참된 것을 주장하기를 멈추며 설명이 불가능한 차이들을 제시하며, 둘 중 어느 것이 참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를 결정할 수 없는 양자택일들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미래와 현실, 사실과 거짓 중 어느 것에 대해 이야기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진리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또는 설명이 불가능한 차이들을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가 중요할 뿐이다.

“빛은 어둠의 왼손. 그리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 둘은 하나. 삶과 죽음은 케머 연인처럼 함께 누워있다. 마주잡은 두 손처럼. 목적과 과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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