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4호 여기는
인터넷 속의 자기모순
인터넷에 올리는 정보 책임질 수 있어야

이강룡  
조회수: 4710 / 추천: 68
5월호에서 포털 뉴스들의 공동 규약에 나타난 기만성을 비판한 바 있다. 비판의 요지는 포털이 자기모순에 빠져있다는 것이었다. 웹에 끼친 해악에 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 또는 깨닫지 못하고 - ‘더 유익한 뉴스를 제공하겠다’는 자기모순, 선정적인 뉴스를 지양하겠다고 말하면서 더 흥미로운 기사를 발굴하여 제공하겠다는 자기모순, 뉴스를 정보 가치가 아닌 흥미 유발도의 높고 낮음으로 판단하면서 성숙한 댓글 문화를 만들겠다는 자기모순을 지적했다.



수단이 목적을 앞지르면 자기모순에 빠지기 쉽다. 무작정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수단과 도구를 남용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포털 뉴스를 미디어로 볼 것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수단이 목적을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미디어 기능,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한다는 이유만으로 포털은 이미 거대 미디어가 돼버렸다. 대중도 그 모순에 함몰된다. 뉴스는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라 ‘개그콘서트’나 ‘웃찾사’의 한 꼭지처럼 재미거리가 된다. 편리하고 재미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런 기사들이 점점 포털을 뒤덮고 개인 홈페이지로 확산된다.

신생아 학대 사진이나 연예인 엑스파일 사건 등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 어쩌면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뜬소문이나 헛소리가 진실로 위장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곤 하는 것은 감시자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감시자가 돼야 하는데 뉴스를 오락으로 삼다보니 뉴스의 감시자가 될 수 없었다. 자기모순에 빠진 것이다.

네이버를 비롯한 몇몇 포털 사이트의 스크랩, 펌 기능도 포털을 자기모순에 빠뜨린다. 이것은 최초 자료 작성자의 동의를 얻지 않고 무분별하게 ‘펌질’, ‘불펌’한 똑같은 내용의 문서들을 양산했다. 블로그 이용자들 사이에서 네이버 블로그는 종종 펌 블로그와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이런 문서들 때문에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자 운영진은 사전 통보나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특정 게시물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용자들과 마찰이 빚어졌다. 이런 종류의 마찰은 앞으로도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펌질을 부추기면서 동시에 조심해서 퍼가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포털 뉴스 뿐 아니라 거대한 인터넷 공간은 여러 형태의 자기모순이 벌어지는 곳이다. 개인 홈페이지도 예외는 아니다. 조선일보 문갑식 기자 블로그 사태에서 이미 경험했듯 개인 홈페이지는 공적 영역에 포함된 사적 영역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잘못 파악한 문 기자는 ‘내가 사적인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는 글에 왜 참견하냐’고 했다가 문제를 더 키웠다. 자기모순은 자신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한다. 말의 앞뒤가 맞지 않거나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서 일관된 도덕성을 발견할 수는 없다. 인터넷은 또 하나의 생활공간이다. 인터넷 속의 나는 또 하나의 인격체이며 홈페이지는 그 인격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도구이다.



개인 홈페이지든 인터넷 카페든 모든 인터넷 공간은 공적 공간의 성격을 띤다.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도 이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알지 못하면 나중에 반드시 자기모순에 빠질 것이다. 블로그나 미니홈피에서 사생활 침해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이들이 입은 피해의 대부분은 자신이 직접 올린 개인 정보 때문이었다. 웹에 어떤 정보를 올리는 순간 완전히 공개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나중에 지운다고 하더라도 이미 누군가가 인용하거나 퍼가거나 검색엔진이 수집한 이후일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보호 정책의 방점은 정보의 자기결정권에 있다. 개인의 정보는 본인 스스로 판단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이것이 명분을 얻기 위해서는 인터넷에 공개하는 본인의 정보는 본인이 철저하게 책임져야 한다.

밀크우드(http://marlais.egloos.com)님은 블로그에 사람들이 ‘대중’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흔히 자기 자신을 그 안에 포함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이를 바꿔 말하면 ‘나’라고 써야 하는 경우에도 종종 ‘우리’라고 지칭하면서 책임을 분산하거나 논지를 흐리곤 하는 사람들을 향한 비판이다.

‘주문을 외워 불러냈던 지하세계의 힘을 스스로 감당할 수 없게 된 주술사’(마르크스, <공산당선언>)가 되지 않기 위해,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완전무결하게 책임질 수 있는 것만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자신의 양심과 타인을 두려워해야 한다. 책임질 수 없다면 웹에 글을 쓰지 않거나 자료를 수록하지 않으면 된다. 꼭 필요한 것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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