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4호 장애없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또다른 차별
1종 운전면허 취득 허용해야

김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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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들이 사회활동을 하면서 받는 차별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1종 운전면허 취득제한이다. 정보통신 문제는 아니지만 청각장애인이 받는 차별에 대한 이해를 돋기 위하여 이번 호에는 청각장애인 1종 운전면허차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70조 제1항제3호에서 1종 운전면허 제한규정을 두고 있어 청각장애인의 경우 1종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다. 현행도로교통법 제70조에서는 ‘듣지 못하는 사람(제1종 운전면허에 한한다)’이라고 하여 청각장애인에 대한 운전면허 취득 제한을 하고 있으며, 동법시행령에서 제1종 운전면허 취득시 청력 적성기준이 ‘55데시벨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다만 보청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40데시벨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언어분별력이 80퍼센트 이상이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한국농아인협회를 비롯한 많은 청각장애인들이 시위 등의 집단행동을 벌였고, 면허시험 집단탈락유도,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진정, 국회청원 등의 싸움을 해왔다. 또한 지난 해 11월에는 도로교통법 개정안 국회발의를 이끌어내며 법률개정요구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청각장애인들의 법률개정에 대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임시국회에서 이 법률안은 폐기되고 말았다.
청각장애인의 운전면허 취득관련 규정을 살펴보면, 지난 1995년 도로교통법이 개정되기 이전까지는 청각장애인의 경우 운전면허를 전혀 취득할 수 없었다. 1990년도 초부터 일기 시작한 장애인의 운전권 요구가 거세지면서 1995년에 청각장애인에게 제2종 운전면허에 한하여 취득할 수 있도록 법률이 개정되었다. 이 개정법률에 의하여 1995년 7월 1일부터 청각장애인에게 2종 운전면허에 한하여 허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종 운전면허 취득 허용은 청각장애인들이 듣지 못하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높을 것이라는 이유로 받아드려지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 통계(2000)에 의하면, 청각장애인 가운데 재가장애인의 취업률은 40.6%로 전체 장애인 평균이 34.2%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 하지만 취업한 청각장애인의 월평균소득은 67.2만원으로 상용종업원(2000년 6월)의 월평균임금 183.7만원의 36.0%에 불과한 수준으로 월평균임금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 금액은 다른 장애유형에 비해서도 낮으며, 장애인의 평균소득 79.2%에 비해서도 낮은 수치이다. 이러한 낮은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청각장애인들이 장애로 인하여 발생하고 있는 의료비 등 추가비용이 월 12만 5천원에 달하고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더욱이 취업한 청각장애인의 경우 제조업에 80%가량 몰려있으며, 그 외의 직종도 단순노무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청각장애인들은 의사소통 문제와 청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일반 사무직이나 전문직종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대부분 청각장애인들이 제조업이나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하지만 제조업의 경우 비장애인에 비하여 승진, 급여, 의사소통 차별문제 등으로 직장을 옮기는 경우가 많으며, 단순노무직에 종사하는 청각장애인 또한 부도가 나거나 하도급업체에서 급여지급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경우 실업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따라서 청각장애인들은 직업생활에서 비장애인과의 마찰을 줄이며, 안정적인 직업을 위하여 운전과 관련한 직종에 종사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높다. 청각장애인들에게 의사소통이 많이 필요한 대형버스 등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르는 차량은 어렵겠지만, 화물트럭 등 의사소통이 거의 필요치 않은 차량은 충분히 운전할 수 있다. 현재 청각장애인들이 1종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없음에도 농사를 짓는 등 생업활동을 하면서, 물품운반과 관련한 직장생활을 하면서 1종 보통과 대형면허, 특수면허에 해당하는 4톤 이상의 트럭, 콤바인 등 차량을 비장애인들처럼 운전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현행 도로교통법의 제한 때문에 청각장애인의 1종 운전에 대한 직종 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청각장애인들로 하여금 불법을 저지르게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로 과거에는 ‘Disabled’를 주로 사용하였으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different abled(다른 능력을 가진 자)’라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시각장애인의 경우 비장애인들은 손끝으로 도저히 구분할 수 없는 작은 점으로 이루어진 점자(點字)를 해독하고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는 청각장애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청각장애인들이 청력상실로 인한 보상작용으로 비장애인보다 시각이 발달한 경우가 많다. 수화(手話)가 시각언어이어서 시각 활용의 기회가 높기 때문에 순간적인 물체의 움직임이나 상황을 청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보다 더 잘 포착한다.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청각장애인들이 운전을 하는데 있어서 비장애인들보다 시각 활용을 더 잘 할 수 있는 이점이 있음을 뜻한다.

또한 과거와 달리 교통문화도 많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운전 중 문제가 생기거나 운전자끼리 마찰이 생겼을 경우에 소통의 방법으로 경음기를 사용하여 왔다. 하지만 요즘은 경음기를 사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또한 운전을 하는데 있어서 차량위치, 운전거리, 차량이나 물체접근 문제도 지피에스(GPS), 음성인식, 초음파 등 기술의 응용으로 청각정보를 시각정보로 감지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선도기술개발의 하나로 ‘신체장애인을 위한 착용형 단말 인터페이스’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데, 기술개발 가운데 청각장애인을 위한 인터페이스 기술로 ‘소리인지 위험경보시스템’을 개발 중에 있다. 이 기술은 자동차 경적 소리나 물체가 부딪히는 소리 등 일상적이지 않은 소리를 센서가 감지하여 진동 등으로 청각장애인에게 인식시켜 주고자 하는 것으로, 이 기술이 구현되면 청각장애인의 안전운전에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다. 즉, 듣지 못하더라도 현재의 기술과 향후 개발되는 기술을 충분히 이용한다면 청각장애인도 충분히 안전운전을 할 수 있으며, 점점 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청각장애인에게 있어서 1종 운전면허 허용은 단순히 운전을 하고, 이동을 한다는 의미를 넘어서서 생존권 차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듣지 못하기 때문에 위험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의해 기본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발전하는 기술 현황을 안전운전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며, 또한 국회와 정부는 청각장애인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달리 가져야 할 것이다. 국회와 정부가 청각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진다면 청각장애인이 갖고 있는 다른 능력을 제대로 볼 수 있으며, 청각장애인의 안전운전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으로 본다. 청각장애인이 안전운전을 할 수 없어 위험한 것이 아니라, 안전운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아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았음을 인지해야만 한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있을 때만이 발전하고 있는 정보통신 기술을 청각장애인의 특성에 맞게 운전에 응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한 이를 계기로 장애인들도 숨겨져 있었던 또 다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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