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5호 사이버
말할 자격과 말해야 하는 용기 사이에서
성노동자대회를 보며

권김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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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라는 건 뭔가 정리된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주장을 설득하는 것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 하려는 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고민들이다. 과정과 맥락을 중시하는 페미니즘 지식생산의 방법론이 이런 글에도 적용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다. 이렇게나 조심스러워하면서 꺼내려는 이야기는 6월 29일 잠실체조경기장에서 열리려 했다가 갑작스러운 대관취소라는 난관에 부딪혔던 전국 성노동자 대회에 대해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모 무크지에서 청탁받은 원고를 마감이 지나고 기어이 못쓰겠다며 펑크를 냈던, 굉장히 미안한 일을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글이었다. 그 글을 왜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하여간 두 달 동안 그 글에 대한 악몽을 꾸다 결국은 두 손을 들어버렸다. 밤에 잘 때는 성매매특별법에 찬성하다가 아침에 벌떡 일어나면서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등 말 그대로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못하는 상태에 계속 죄책감이 들었다. 여의도에서 단식하는 언니들이 맞고 있는 혹독한 겨울에 대해 아무런 공감과 격려도 보내지 않으면서 책상머리에 앉아서 성매매 특별법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고민만 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민의 결과가 지난 언니네 1월 성매매 관련 특집 “살얼음판을 걸으며, 봄이여 오라”였다. 이 특집에서 나는 “성매매에 대해 말할 자격”이라는 글을 썼는데, 운동권이고 아니면 보수우익이건 성매매에 대해서는 어떤 괴로움 없이 잘도 떠들어대는 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것이 그 글 전체를 통과하는 정서였다. 정말 궁금했다. 그것은 용기였을까. 아니면 경망스러움이었을까.

그 글에서 나는 성매매를 노동, 계급, 성별이 착종된 해결해야할 ‘문제’로 인식하거나 혹은 남성들의 욕망과 남성들 사이의 평등에 대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답’으로 인식하는 남성들은 성매매와 관련해서 자기 자신이 어떤 포지션에서 말하는지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성매매여성들의 생존권과 관련한 어떤 말도 할 자격이 이미 없지 않냐고 되물었고, 또한 많은 여성들이 이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갑갑증을 내보이는 이유는 성매매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기존 언어로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 글은 성매매와 나 사이의 긴장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이자 성매매와 (대부분 남성인) 구매자들 사이의 행복과 봉합에 대한 불만이었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성노동자 대회를 준비하는 전국한터연합회의 입장에는 “어디에서도 성욕을 해결할 수 없는 장애남성들은 우리한테 안 오면 어떻게 하냐”는 말이 언급되어 있었다. 또 “여성부는 대화조차 시도하려 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대화를 하려는 시도자체는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남성의 성욕은 반드시 해결해야만 한다는 발상은 여전히 강력하고, 성노동자가 자기 욕망과 삶의 주인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번 성노동자 대회에서 사회진보연대와 성노동자민중연대가 지지발언을 했다.

이것은 용기였을까. 용기였다면 이들은 무엇을 감수한 용기를 낸 것일까? 나는 성노동자로서의 언니들을 지지하는 게 현재 성매매특별법의 수혜를 받고 있는 언니들과 감금과 착취로 누구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었던 언니들을 위해 수고한 관련 여성단체 동지들에게 모욕이 될까봐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한 용기는 아직 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성매매에 대해 말할 자격이라는 글을 쓴지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머리는 복잡하기만 하다. 여전히 고민만 하고 있는 나는 과연 누구한테 말할 자격을 물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마 나는 아주 타락하고 싶다거나 성적으로 천박해지고 싶다거나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욕을 받는 문란한 생활을 하고 싶은 그런 욕구가 있는지도 몰라. 놀라지 마라, 노용, 그런 식의 피의 거스름만이 지금의 나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 그래 나는 자유롭기를 원해. 나는 지적이지 않은 것을 참지 못하는 동시에 지적인 내 자신을 혐오해.”
- 배수아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 중 p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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