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6호 사이방가르드
권력에 대한 역감시
역기술국 (Bureau of Inverse Technology)

이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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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감시는 권력을 유지하는 영구 수단이었다. 푸코는, 서구에선 17, 18세기를 지칭하는 고전주의 시대에 ‘배제의 논리’(나환자)가 감시의 원칙이었다면, 19세기엔 ‘포괄의 논리’(흑사병자)가 통치의 수단으로 자리잡는다라고 말했다. 권력이 체제로부터 어긋난 ‘비정상인’을 다루는 데 있어, 마치 나환자를 다루듯 ‘정상인’의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쫓아내고 박멸하는 방법에서, 점차 정상인의 사회내에 흑사병자들을 포괄함으로 인해 공간을 분할하고 인구 통계를 내고 감시하는 체계적인 통제 체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권력 기술인 감시는 19세기부터의 얘기다.
당시 푸코의 문제의식은 21세기 ‘초’감시라는 당장의 현실을 돌아보면 격세지감을 갖게 한다. 이미 공장 등과 같은 주어진 역할에 의해 분화된 장소 안에서 권력 기술에 의해 관리되던 모던한 시대조차 점차 옛말이 돼 간다. 불행히도 얼마 전 검찰이 중도 수사 포기를 선언한 삼성 SDI의 노동자 휴대폰 감시를 보라. 이제 감시는 비디오 카메라와 같은 시각적 영상 채집에 머무르지 않고, 신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모바일 권력에까지 이른다. 공장 담벼락을 넘어 노동자의 재생산 영역에까지 권력의 기술이 확장되고 있다. 이런 권력의 지식은 확보된 정보의 관리와 연계망(네트워크)에 의해 더욱 극대화된다. 교육부의 통합행정 정보망 ‘네이스(NEIS)’ 건은 감시의 또 다른 차원이다. 관리되는 개별 신체의 전망은 새로운 디지털 권력에 의해 완성된다.
권력의 감시 기술을 역전하여 그 기술로 권력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그 본모습을 드러내면 어떨까. 이것이 ‘역감시’의 통쾌함이다. ‘역기술국’(Bureau of Inverse Technology)은 이에 공헌하는 한 예술가 그룹이다. 테크노예술가인 나탈리 제레미젠코가 주축이 돼 만들어진 역기술국은, 현대 권력이 작동하는 근원지에 역감시의 눈길을 보낸다.
역기술국의 대표작이자 국내에도 소개된 <비트 비행기>(1999)는 ‘정보사회’의 상징처럼 돼버린 실리콘밸리의 고공 영상 촬영물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단순하다. 그저 소형 모형 비행기에 카메라를 탑재하고 원격으로 활공하며 촬영한 필름을 지상 수신기로 담아낸 비디오 영상물이다. 그러나 이들의 영상물은 관객에게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마치 냉전 시대의 소산인 미국의 스파이 비행선이 레이더망을 피해 소비에트 공화국의 군사 시설을 고공 촬영하듯, 필름은 현대 자본, 기술, 지식의 신화를 배태한 성역을 스산하게 찍어간다. 전자의 가공할 살상 무기들에서 느껴지는 소름은 후자의 실리콘밸리를 통해 그대로 전이된다. 현대 권력의 성역인 실리콘밸리의 눈부신 외연에 대면하는 대신, 이들은 모형 비행기를 이용한 고공 촬영이라는 역감시 기법을 통해 관객들에게 마치 적의 전략적 군사 요충지를 답사하는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 이보다 먼저 만들어진 비디오 영상물 <자살 박스>(1996)
를 들 수 있다. 이는 미국의 금문교 다리 위에서 움직이는 물체를 자동 포착해 반응하는 센서를 카메라와 함께 가동시켜 촬영한 비디오다. 자살 박스는 다리 위를 뛰어내리려 시도할 때마다 숫자가 더해지도록 설계되어졌다. 자살 박스로 계산된 데이터를 역기술국은 다우존스 지수와 비교해 ‘절망 지수’(Despondency Index)라 부른다. 역기술국은 권력이 장난치는 추상적 데이터의 숫자 놀음에 대한 반응으로 자살박스를 고안해 냈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아니 단 몇 초에 널을 뛰는 주가가 자본의 펄펄 뛰는 동맥이라 감격해하기 전에, 역기술국은 그 자본의 동맥들에 숨이 막혀 절망해 다리 아래 몸을 던지는 인간들의 숫자를 카운트한다.
역기술국은 정보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왜곡되고, 뒤틀린 권력의 속곳을 담아낸다. 이들이 다루는 카메라는 단순한 몰래카메라가 아니다. 몰래카메라가 몰래하는 권력의 범죄행위를 찍는다면, 이들의 역감시는 자명한 듯 보이는, 아니 현대 자본의 자랑거리인 듯 보이는 대상물들(실리콘밸리, 금문교 등)의 살의에 가득찬 야만의 얼굴을 포착한다. 게다가 권력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파파라치들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역기술국은 추상화된 데이터들 안에 숨겨진 정치적 본질을 폭로한다.
역기술국의 역감시는 이렇듯 권력의 느슨해진 빈틈과 일그러지고 추한 면들을 뒤지고 포착해 까발리는 행위 이상이다. 이들이 시사하는 바는, 바로 현대 권력의 뒤틀린 제 모습을 보기 위해선 마치 정상인 듯 보이거나 대중을 장악한 일상의 그 곳에 오히려 다른 시선을 들이댈 때 더 분명해진다는 단순한 원칙이다. 권력이 개별화된 신체에 가하는 현대 초감시의 눈길을 막는 해법으로 이보다 강한 멍군이 어디 있겠는가.



<참고 페이지>
역기술국 http://bureauit.org/
나탈리 제레미젠코 http://entity.eng.yale.edu/nat/

<참고문헌>
Inke Arns, Social technologies: Deconstruction, subversion and the utopia of democratic communication (pp. 221-237), in R. Frieling and D. Daniels (Ed.) Media Art Net 1: Survey of Media Art, Wien: Springer. 2004, URL http://www.medienkunstnetz.de

Stephen Wilson, Information Arts: Intersections of Art, Science, and Technology, Cambridge, MA:
the MIT Press, 2002, pp. 822-824.

Timothy Druckery, Bureau of Inverse Technology (pp. 600-605), in T. Levin, U Frohne and P. Weibel (Ed.) CTRL Space: Rhetorics of Surveillance from Bentham to Big Brother, Cambridge, MA:
the MIT Press,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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