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7호 표지이야기
방송통신융합, 새로운 규제의 틀을어떻게 짤 것인가?
법제 개편 논의 이전에 정책 이념 등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오병일  
조회수: 3162 / 추천: 50


통신 공룡의 방송 진출의 대표적인 사례는 아이피디브이(IPTV)가 될 것이다. 아이피디브이는 쉽게 말해서 초고속 인터넷을 통해 방송 콘텐츠를 제공받는 서비스이다. 아직 아이피디브이는 상용화되지 않고 있다. 다만, 케이티(KT)는 그 전단계로 피시(PC)기반의 주문형비디오서비스(VOD)인 ‘케이티캐스트’(KTCAST)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이피디브이의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는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의 규제 관할 다툼 때문이다. 정보통신부는 콘텐츠가 통신망을 통해 전송되기 때문에 ’부가통신서비스‘로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반면 방송위원회는 수용자 입장에서는 아이피디브이 역시 케이블TV와 같은 방송의 하나일 뿐이라는 견해다.

방송은 소유와 운영에 있어 많은 규제를 받는다

아이피디브이를 통신으로 볼 것인지, 방송으로 볼 것인지가 왜 중요할까? 그 이유는 방송으로 규정될 경우, 방송법에 의한 많은 규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공공성을 보장하기 위해 방송은 그 소유와 운영에 있어서 많은 규제를 받아왔다. 만일 아이피디브이가 통신으로 규정되어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게 된다면, 케이블TV는 바로 타격을 받을 것이다. 케이블TV의 경우 소유 지분에 대한 규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채널의 운영과 내용도 방송위원회의 심의를 받게 된다. 이에 반해 통신사는 전국을 대상으로 단일망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훨씬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아이피디브이 서비스를 방송법으로 규제하지 않는다면, 케이블TV 시장은 유지되기 힘들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기존 방송에 대한 규제도 완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아이피디브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는 기존 방송과 뉴미디어에 대한 규제의 틀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성 및 지상파 디엠비와 아이피디브이 등 새로운 융합 서비스는 이미 등장하고 있는데, 이를 어떠한 틀 속에서 규제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전통적으로 통신과 방송을 규율했던 가치나 규제방식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규제 기관의 이해관계까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융합 서비스를 규제하기 위한 새로운 규제 이념과 틀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다만, 접근 방법에 있어서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를 향후 우리나라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신기술이라는 측면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래서 시장의 선점을 위해 조속하게 서비스를 도입하고, 이에 대한 규제는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방송위원회는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기존 방송이 가지고 있던 가치와 규범을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 구조개편위를 둘러싸고 평행선

이와 같은 관점의 차이는 방송통신구조의 개편을 논의하기 위한 ‘구조개편위’에 대한 의견 차이로 이어지고 있다. 방송위원회는 “방송통신 구조개편 논의는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챙기면서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막중한 국정과제”라고 설명하고, “독립기관으로서의 방송위원회의 위상을 고려할 때, 구조개편위는 대통령 소속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위원회 구성은 열린 논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부처중심이 아니라 미디어 이용자인 수용자와 사회 각계 대표 등이 참여하는 실질적인 사회공론의 장으로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반면, 정보통신부는 “대통령 자문을 목적으로 하는 구조개편위의 성격상, 논의단계에서는 정치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관련 전문가를 중심으로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논의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그래서 총리실 산하에 구조개편위를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위원회 구성에 대해서는 “행정기관 당사자 및 대표성과 전문성을 보유한 전문가로 위원회를 구성하되, 통신·방송 각 분야의 입장이 공정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위원회의 소속은 중요하지 않다는 주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정책 이념 등 정책의 상부구조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김평호 교수는 방통융합과 관련한 기존의 논의에 대해 지나치게 법제개편에 치우쳐있으며 부처간의 갈등을 조장해 왔음에 대해 비판한다. 그리고 방통융합 정책에 대한 논의가 그 순서에 있어 방송과 통신의 정의, 규제의 구조, 규제의 원칙과 수준 및 정책 이념과 같은 ‘정책의 상부구조’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김평호 교수가 제시하는 방통융합 정책의 이념과 목표는 첫째 지식-정보사회로의 발전 지향, 둘째 국가경쟁력 제고, 셋째 수용자 권익의 증진과 문화환경의 제고이다. 또한, 이러한 정책 목표에 다음과 같은 하위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보편적 서비스의 확대, 미디어 공공성의 확보, 공정경쟁을 통한 산업의 발전.

방송통신융합 정책은 궁극적으로 어떠한 사회를 지향하는가? 그것을 위한 우리의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 융합 서비스는 과거의 방송/통신과 어떻게 다르며, 규제가 필요하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차근차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추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