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7호 블로거TO블로거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고 내일을 내다보는
간장오타맨의 블로그 http://kanjang.egloos.com

알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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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끔 오빠가 한 명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의 타계로 이른 나이에 가장이 된 우리 오빠는 그래서인지 오빠보다는 아버지같은 존재이다. 친구같은 오빠, 허물없이 생각을 주고 받으면서도 한발 앞선 자취로 내 갈 길을 조금은 가늠하게 해주는 길동무같은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간장오타맨의 블로그는 내게는 그런 오빠같은 공간이다.

그를 언제부터 알게 되었을까? 지금은 이글루로 옮겼지만 원래 그는 진보넷 블로거였다. 예전 블로그를 찾아보니 2004년 8월이 첫 시작이다. 우리는 1년을 알고 지냈고 9월 네트워커가 나올 즈음 오프라인에서 첫 대면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약없는 약속을 하듯 2005년 9월에 만나자했고 오지 않을 것만 같던 그 시간이 성큼 다가왔다. 1년 전의 그는 많이 힘들어했고 나는 그 시간을 함께 했다. 같이 나누었다기 보다는 혼자서 훔쳐보던 시간에 불과했지만 내가 감히 함께 했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영화 속 등장인물에 자신을 투사하는 듯한 그런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간장오타맨이 살아내는 현재의 시간은 가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고 일찍 포기했던 20대 중반의 어느 지점을 생각나게 한다. 그 당시의 난, 산다는 것은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분명한 마디들로 채워져야 한다고 믿고 살았다. 10살의 나, 20살의 나, 30살의 나. 그 모든 시간들을, 그리고 시간 속의 변화들을 설명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20대 중반의 어느 지점에서 나는 주춤거리며 내 앞에 놓여있는 다리를 건너지 못했다. 그 때 나는 다리 저 편으로의 이전이 두려웠다. 살아간다는 것이 치열함이나 감동의 징검다리를 딛고 가는 것만이 아닐 텐데. 오히려 지리하고 무미건조하고 끔찍할만큼 무덤덤한 일상을 버티는 일일 텐데. 혁명을 꿈꾸는 것은 한판 싸움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지리한 일상을 견디고 버티며 묵묵히 시간을 채워가야 하는 일일 텐데. 그런데 내가, 이 약해빠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후일담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고백이며 넋두리들이 신문, 소설, 시를 통해 내뱉어졌던 그 시기, 나는 그 중 어느 한 사람을 통해 나의 미래를 암울하게 내다봤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것이 변했다. 다리 앞에서 머뭇거리던 순간부터 나는 내 사람들을 하나 둘씩 떠나보냈다. 그들 중 누구도 떠나지 않았으나 혼자서 그 많은 소중한 인연들을 잘라내었던 시간. 혼자만의 방에 틀어박혀서 긴 시간동안 몸살을 앓았고 그 후 전혀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바삭거리며 살아왔다. ‘내가 떠나온 그 푸른 바다가 가장 빛나는 곳은 아닐까?’라는 노랫말을 자주 떠올리며, 가끔씩 과거의 그들과 마주치면 며칠씩 마음 아파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들에 담담해지는 동안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간장오타맨을 만났다.

그의 블로그에 담겨있는 것들은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간장과 함께 오타보기’라는 카테고리에는 안도현, 도종환, 나희덕, 정호승, 신영복 등의 보석같은 글들이 그의 마음을 담아 옮겨져있다. ‘간장의 여유’에는 우리가 비슷한 연배임을 짐작할 수 있는 노래들이, ‘간장공장’에는 그가 맘먹고 쓴 글이나 요즘 관심분야가 올라와있다. 가장 마음이 많이 가는 카테고리는 ‘간장의 삶’과 ‘잡기장’이다. 그는 서울 근교의 어딘가에서 공부방 아이들을 만나거나 이주노동자의 현안을 고민한다. 꾸준하면서도 섬세한 그의 글들을 읽으며 나는 운동가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주눅들었던 마음을 슬며시 내려놓는다. 아주 오래 전, 산다는 것이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명확한 마디로 이뤄진 것이라고 생각했을 때, 운동가는 견결해야 하며, 비틀거리더라도 내색하지 말아야하며...그리고 한 번 비틀거린 사람은 또 그럴 수 있으므로 신뢰도에 금이 가버린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20대 중반의 나의 비틀거림은 내 생애 최초의 비틀거림이었고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타인에게 향해있던 잣대로 나를 재단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간장오타맨의 블로그에서 나는 위로와 평안을 얻는다. 떠났다고 생각하는 그곳과 현재의 나를 연결할 수 있는 작은 길을 발견한다. 가끔은 부질없는 후회를 하기도 한다. 흔들리며 가는 것도 길인 것을 나는 왜 그렇게 주눅들어 했었을까? 준비된 사람만이 먼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때론 힘이 들고 때론 비틀거릴지라도 그렇게 가는 먼 길을 통해 누군가가 단련된다는 것을 그 때는 왜 몰랐을까? 결국 나는 이제야 말한다. 산다는 것은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명확한 마디로만 이뤄져있는 것만은 아니야. 그저 모퉁이길을 걷는 것처럼 미지의 어떤 것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는 거야. 간장오타맨과 함께 세상을 보다보면 결국 나 또한 내 생애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깊고 넓고 섬세한, 그리하여 결국 치열하다는 표현을 할 수밖에 없는 간장오타맨의 삶에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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