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8호 칼럼
소비자 앞에서 절대로 경쟁하지 말라고?

전응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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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수년전에 휴대폰을 공짜로 얻어서 이동통신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한때 사람들이 “단말기를 새 모델로 바꾼다”, “통신사업자를 바꾼다”하는 얘기를 많이 했지만, 나 자신은 꼬박꼬박 단말기가 완전히 고물이 다 되어서야 새로운 기종으로 교체를 했다. 번호이동성이 최근에서야 허용되었기 때문에 그동안에는 통신사업자를 바꾼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고, 단말기도 그때 그때 거의 고스란히 제값을 다 치르고 샀다. 최근에는 너무 단말기 가격이 높아져서 어쩔 수 없이 중고폰을 구매해서 쓰고 있다.

그런데 휴대폰을 이용하는 동안 참 이상하다고 생각한 점이 없지 않았다. 아마 한 7-8년 이상 한 통신사업자의 서비스를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단말기의 수명이 다 하면 꼬박꼬박 제값을 다 주고 다시 사야한다는 것이 스스로도 좀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그 통신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나같이 충성도 높은 고객도 없을 것이요, 그 업체의 고정적인 월 이용료 수입에 기여하고 있는데 왜 내가 이동통신을 쓰는 단말기조차 내 돈을 들여 바꾸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이런 의문을 갖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소위 단말기 보조금 금지법(전기통신사업법 36조의 3, 제1항 5호)이었다.

사정을 알고 보면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인데, 소비자에게 이동통신 단말기를 출고가 이하로 판매하면 불법이라는 것이 이 법의 내용이다. 일반적인 상거래에 있어서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여러 가지 혜택을 제공하면서 구매를 권유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세일도 하고 경품도 주고, 선물도 끼워주고 할인도 해주고 그렇게 하는 것인데 정말 어처구니없게도 이동통신 단말기에 관한 한 판매자가 단말기 할인은 물론, 가입비 면제라든지, 월 이용요금 할인혜택이라든지 심지어 상품권 끼워주는 것 까지도 모두 불법으로 되어 있다.

더 놀라운 일은 이렇게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기 짝이 없는 법이 바로 소비자단체들의 동의에 의해 입법과정을 밟았다는 점이었다. 경위를 따져 보니 이통사업자들 간에 과열경쟁으로 단말기 과소비가 만연하고, 국가적으로 단말기 제조에 필요한 부품수입이 늘어나 경상수지적자를 양산하고, 공짜 단말기 덕에 이동통신서비스에 가입했지만 이용요금을 제때 못낸 신용불량자가 양산되는 등의 이유에서 소비자단체들이 동의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법이 만들어진 취지를 전혀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단말기 부품 국산화율은 당초 20% 수준에서 60 - 70% 가까운 수준으로 올라가서 실제 무역수지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해졌고 단말기 소비연한도 많이 늘어났으므로 당초부터 헌법이 정한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논란까지 빚어가며 3년 한시법으로 정한 관련 법조항들이 폐기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보통신부는 내년 3월 이 법의 일몰시기를 앞두고 관련 규제를 좀 더 지속시키려는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이유는 늘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유효경쟁을 위해서란다. 그러나 특정한 시장지배사업자가 아닌 모든 이동통신 사업자가 소비자를 위해서 판촉경쟁을 하지 말라는 법이 어떻게 해서 유효경쟁을 위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보통신부의 유효경쟁정책 앞에서 소비자는 언제까지 봉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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