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29호 Cyber
사용자의 일방적인 CCTV 설치는 정당한가
노동자들의 사전 동의 및 도입단계에 참여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안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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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복지공단 본부 건물 앞에서 지난 6월경부터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금속노동조합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 조합원들의 산업재해승인 투쟁은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노동계의 현안 문제이다. 2002년부터 회사측은 CCTV와 전자출입카드 등을 동원하여 노조 조합원들을 감시하고, 관리자들로 하여금 조합원들의 화장실 출입과 전화통화까지 감시하도록 하였으며, 비조합원에 대해서만 임금을 인상하고 복지혜택을 부여하는 등 차별을 행하였고, 2003년 1월 설연휴 직전에는 노조간부 5명을 해고하고, 조합원 전원을 징계하였으며 당시 단식중이던 조합원을 회사간부가 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지속적인 감시와 차별로 인하여 급기야 여성조합원 13명이 ‘우울증을 수반한 만성적 적응장애’라고 하는 정신질환을 얻게 되었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하였으나, 공단이 성실한 조사 없이 이를 불승인하자 그 시정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합원에 대한 차별대우가 부당노동행위로서 불법행위에 해당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 이전에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업장에 CCTV와 전자출입카드 등을 설치하는 것은 과연 법적인 정당성을 갖는 것일까.
사용자측이 일방적으로 감시장비를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과거 감독자에 의한 현장감독이 자동화 설비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경영권의 고유한 영역에 해당되는 것”이라 주장하고, “대부분은 시설보호, 고객 안전 및 불법행위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적법하게 운용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통상 사용자측이 노동자들의 의사를 배제한 채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그 근거로 주장하는 권리가 ‘경영권’이다. ‘경영권’이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과 미국에서 급격히 생성·발전한 노동조합의 경영참가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개발된 이론으로서 정확한 법적 개념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이 이론의 옹호자들은 ‘노동3권에 대응하여 기업의 경영자에게 귀속되는 배타적 의사결정권’을 지칭한다고 하며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의 경우 노동조합이 사용자에 대해 교섭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약 ‘경영권’이라는 개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CCTV의 설치가 사용자들의 고유한 불가침의 배타적인 영역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다분히 정책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경영권의 정확한 내용을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기업 활동에 관한 사용자의 권리를 경영권이라 한다면 대체적으로 자재나 생산시설 등에 대한 소유권을 근거로 하는 ‘시설관리권’과 근로계약에 근거하여 사용·종속관계에서 노무를 제공해야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노무지휘권’ 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사용자가 작업장에 CCTV나 출입카드 단말기를 설치하는 것은 ‘시설관리권’을 행사하는 것이고, 노동자에게 그러한 시설이 설치된 상황을 수인하고 노무를 제공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노무지휘권’을 행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단 작업장 내에서 CCTV의 피사체가 되고 전자출입카드 단말기의 제어를 받는 것이 노동자의 프라이버시권 등 인권에 관계되는 일이라는 점은 굳이 국제노동기구(ILO)의 규약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두말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그렇다면 위 경영권 내의 두 권리가 노동자를 감시기구의 대상으로 삼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살펴보면, 우선 근로관계가 사용·종속관계라는 점, 즉 자신의 노동력을 사용자의 처분 아래 둬야 하는 것이라는 점만으로 노동자의 프라이버시권을 비롯한 제반 인권을 사용자가 일반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근거가 되지 않음은 당연하다. 인권은 노동자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인정되는 권리이기 때문에 공장 안이라도 예외일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생산시설에 대한 소유권 역시 당해 소유물에 대한 사용·수익·처분권 외에 그로부터 그 사용·수익을 위해 타인에게 어떤 의무를 부과할 수 있는 권능이 자동적으로 도출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의 인권을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경영권의 고유영역’이라는 주장은 결국 거칠게 말해 ‘내 소유의 공장에서 내 맘대로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취지라 할 수 있는데 이는 기업의 작업장을 개인의 주택과 동일한 소유권의 객체로 파악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간과한 주장이다. 즉, 개인의 주택과 같은 일반적인 개인재산과는 달리 기업의 시설은 노동자의 출입을 당연한 전제로 하고 있고, 인간인 노동자들이 기업시설을 이용한다고 할 때는 반드시 근로계약상의 의무인 노무제공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요소로 구성된 생활이 이뤄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기업의 작업장은 그 속의 노동자들에 대해 사회적인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 개인재산에 비해 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 보다 큰 사회적 제한을 수용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인 필요에 의해 소유권이 일정한 제한을 받는 것은 법리상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20세기에 들어와 자본주의 발달에 수반한 부의 편재가 빈부의 격차를 낳고 심각한 계급대립과 사회적 불안상태를 조성함에 따라 재산권은 사회전체의 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는 권리로 수정되었기 때문이다.
굳이 ‘사회성’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오직 그 자신의 동의에 의해서만 관리되고 명령될 수 있으므로 타인에게 그 동의를 구하지 않고 그 협력을 강제할 수 없다는 시민법의 기본원리 하에서도 ‘자동화 설비로 대체’됨으로써 프라이버시 등 인권에 대한 제한이 새롭게 발생하거나 기존 현장감독자에 의한 감독이 이뤄지는 것에 비해 그 정도가 확대·심화된다면 노동자들의 동의를 구하고 그 전제로서 도입단계에의 참여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업장에 CCTV 등 감시장비를 일방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사용자의 배타적이고 고유한 권리에 근거한 정당한 권한행사라고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다.

감독자의 눈이 CCTV 렌즈로 바뀌고, 도장이 찍히던 출퇴근카드가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되는 전자출입카드로 변경되는 것이 반드시 부당노동행위나 개인을 감시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며 ‘시설보호, 고객 안전 및 불법행위 방지를 위한’ 목적으로 ‘생산설비 자동화’라는 생산체제의 개편이나 ‘신기술의 도입’이란 의도 하에 추진된다는 사용자측 주장의 진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감시의 기능이 내포된 기술의 도입은 경영에 관한 사항이기 이전에 노동자들의 인권, 즉 노동자의 지위와 관련한 작업장 내에서의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이라는 점을 각인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하이텍알씨디코리아 사건을 통해 감시장비는 노동자들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직접적인 근로조건의 하나임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지금은 가장 전형적인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임에 이론이 없는 해고나 임금 등도 과거에는 경영전권에 속하는 사항이었던 때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무더위를 지나 어느덧 쌀쌀해진 오늘 이 시간까지도 근로복지공단 앞을 지키고 있는 하이텍노조 조합원들의 투쟁은 반드시 승리하는 싸움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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