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0호 리포트
2005 빅브라더상 시상식
주민등록번호, 정보통신부, 삼성SDI로 추정되는 ‘유령’ 등 수상

임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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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차림의 안내요원들이 객석을 돌며 익명의 관객들에게 신분확인을 요구한다. 관객은 철저히 통제된 감시 앞에 권력과 질서의 지속적인 유지를 위해 개인정보와 인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한다. 빅브라더의 세계에서 관객은 의자 오른쪽 팔걸이에 다섯 손가락 지문을 인식시켜 출석을 요청받는다. 사회자가 말한다. “가열 25번, 다열 37번, 장갑을 벗으세요! 지금은 지문 인식 중입니다!”
지난 11월 22일(화) 오후 7시 대방동 여성플라자 아트홀에서는 국민의 프라이버시에 가장 위협적인 사업과 인물을 선정하여 시상하는 ‘2005 빅브라더상 시상식’(www.bigbr other.or.kr)이 열렸다. 이번 시상식은 한국에서는 처음 열리는 행사로 영화제 시상식을 패러디한 꽁트 형식으로 꾸며졌다.
시상식의 사회는 주민번호 790529-2034811씨가 맡았다. 사회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우리를 감시하고 계시는 빅브라더님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는 말과 함께 2005 빅브라더상 시상식을 시작했다.

우선 가장 끔찍한 프로젝트상의 영예는 개인정보 유출 및 도용의 구조적 원인을 오랜 기간 제공해 온 ‘주민등록번호제도’에게 돌아갔다. 수상자로 나온 민원서류의 마스코트, 홍길동 씨는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저는 언젠가 이 상을 꼭 받게 될 것이라 예감했습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세계 어디에서도 이렇게 모든 국민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신분증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주민등록증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해주며, 또 나 자신 그 자체인 것이 바로 주민등록증입니다”라며 소감의 첫머리를 시작했다.
그는 이어 “이 상을 꼭 바치고 싶은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주민등록법을 제정할 당시 우매한 이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전 국민의 신분보장을 위하야 후세에 길이 남을 이 제도를 도입하신 분이며, 위대하신 그 분께 이 상을 바칩니다”라고 울먹였다. 마지막으로 홍씨는 이 땅의 정보구현에 힘쓰신 그 분의 정신만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이 자리에서야 비로소 느낀다고 말하고, “각하! 그분께서 살아생전 자신의 무덤에 침을 뱉으라 하셨다”며, “저는 오늘 이 영광스런 상을 들고 그분의 무덤에 침을 뱉으러 가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가래침을 모으며 퇴장했다.
한편 화성투어 중 지구로 날아와 비폭력 저항의 목소리로 노래한 랩음악 팀 ‘더 실버라이닝’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더 실버라이닝’은 2005 빅브라더상 시상식을 위해 직접 ‘빅브라더송’을 작사, 작곡, 연주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별상 시상식이 이어졌다. ‘내 귀의 도청장치’의 시상을 위해 나온 죄송일보의 방만해 사장은 “언젠가는 이 분들 상 받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 분들이 이제서야 상을 받게 된 것입니까”라고 말하다 발언시간을 초과해 결국 안내요원들에 의해 끌려 나가기도 했다. 사회자에 의해 발표된 특별상 수상자는 ‘국가정보원’이었다. 국가정보원은 추천 후보는 아니었으나 올 해 정국을 떠들썩하게 해 온 안기부X파일 사건의 주범. 그래서 국가정보원에 특별상인 “내 귀의 도청장치”상이 주어진 것이다.

다음으로 가장 가증스러운 정부상. 수상의 영예는 ‘정보통신부’에게 돌아갔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수상을 위해 나온 정보통신부 대표는 ‘정보’라고 쓰여진 완장을 차고 있었다. 정보통신부는 개인정보보호의 책임자임을 자처하는 동시에 사생활과 인터넷의 자유를 말살하는 정책을 펴온 공로를 인정받아 본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특히 정보통신부는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인터넷 실명제와 연구용 생체정보 DB구축 과정에서의 개인 정보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지 않고, 휴대폰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중성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수상을 위하여 나온 정보통신부 대표는 “정보통신부는 앞으로도 인터넷 예절도 모르고, 정보만 이용하겠다고 보채는 우매한 백성을 위하여, 정보를 관리하고 백성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 번째 축하공연은 범상치 않은 외모의 아마추어증폭기가 맡았다. ‘GOLDSTAR’라고 쓰여진 노란색 모자를 쓰고 나온 그는 ‘삼성 현대 에스케이 엘지전자’ 등을 외치다 결국 공연도중 안내요원들에게 끌려나갔다.
또한 웹사이트에서 실시된 네티즌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검ㆍ경의 신원확인 유전자DB 구축계획에 네티즌 인기상이 주어졌다.
마지막으로 가장 탐욕스런 기업상에는 노조탄압을 목적으로 직원들의 핸드폰을 복제해 위치추적을 해온 ‘삼성SDI로 추정되는 유령’이 받았다. 삼성SDI는 지난 한 해동안 ‘삼성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기 위해 휴대폰 복제라는 첨단 기술을 사용하여 자사 직원들을 서로서로 감시하게 하게 한 것.


수상을 위해 나온 삼성맨들은 “정말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라며 “삼성SDI는 항상 엘리트 기업으로서 첨단 감시사회의 좋은 본보기가 되도록 노력하겠으며 앞으로도 지속가능한 세상을 지향하는 진정한 리더로서, True Leader in Digital World, 디지털세상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 경제적 성취뿐만 아니라 환경, 사회 영역에서도 리더십을 갖고 이 세상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앞장서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그 각오를 새롭게 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일본에서 정보인권 운동을 전개하는 토시마루 오구라 교수가 참석하여 한국에서 열리는 제1회 빅브라더행사를 축하하며 이를 통한 국제적 연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행사장 주변에서는 기획사진전 ‘빅브라더의 시선’이 열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가지 감시의 시선을 전시했다.
이번에 발표된 수상자는 지난 10월 빅브라더상 홈페이지(www.bigbrother)를 통해 부문별 후보를 공모하고, 그 결과 총 27개 후보가 네티즌으로부터 공개 추천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정보화, 인권, 법률, 보안 등 각계의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두 차례의 회의를 거쳐 추천된 후보들을 대상으로 엄정한 심사를 진행한 것.
빅브라더상은 각 국의 인권시민단체들이 매년 가장 심각하게 프라이버시를 위협하는 사업이나 기관들을 선정하는 행사로, 1998년 영국의 프라이버시 인터내셔널(htt p://www.p rivacyinternational.org)이 처음 시작한 이래 현재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20여개 국가에서 해마다 실시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처음 수상자를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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