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0호 표지이야기 [다시 웹을 사고한다]
재발견된 웹의 가능성
웹 2.0 시대의 정보운동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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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창립 총회를 가졌다. 당시에 한메일의 회원수는 100만이 채 되지 않았고 인터넷 전용선은 탄생하기도 전이었다. 인터넷의 초창기에 이미 진보적인 사회운동은 인터넷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이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조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여기에는 PC통신에서의 새로운 소통방식에 열광했던 사람들, 새로운 미디어로서 통신과 인터넷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사람들, 통신동호회에서 왕성한 생산력을 자랑했던 다양한 문화와 정보와 예술의 생산자들, 게임을 즐기고 프로그래밍과 해킹에 몰입했던 사람들 등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보기 드문 합의를 만들어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함께했고, 대부분의 학생정치조직이 포함되어 있었고, 다양한 여성운동과 문화운동 조직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모여들었던 것일까?

사람들은 웹에서 어떤 가능성들을 무엇을 보았나?
당시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가 적절한 시기에 번역 출판했던 에릭 리의 <노동운동과 인터넷>이라는 책은 이메일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전자우편은 매우 빠르다. 이는 팩스보다도 훨씬 빠르다. ... 전자우편은 매우 저렴하다. 보통 전자우편은 거리로 요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 전자우편은 팩스보다 확실하다. ... 전자우편은 팩스 전화 우편보다 융통성이 있다. 나는 천연색사진을 보내고 받아본 적도 있다. ... 전자우편은 다시 타이핑할 필요가 없다. ... 전자우편을 통해 개인과 조직의 전산화된 전자우편주소 목록을 간단히 만들 수 있다. ... 전자우편은 대화를 이끌어낸다. 전자우편 메시지에 답하는 것은 매우 쉬워서 읽자마자 답장을 보내려는 생각이 나기 마련이다. ... 전자우편은 부자와 빈자, 권력자와 피억압자를 차별하지 않는다.”

그밖에도 그는 데이터베이스(온라인 자료실), 메일링리스트, CUG(온라인 동호회), 유즈넷 등의 여러 토론그룹들, 채팅과 온라인 출판 등의 ‘새로운 도구들’을 열거했다. 그리고 원격에서 협업이 가능하며, 온라인 대화와, 온라인 출판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하며 다음과 같은 흥분과 기대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대공업이 만들어낸 통신수단의 개선은 ... 노동자들의 더욱더 확대되는 단결에 공헌한다'고 맑스는 말한바 있다. 이는 19세기에도 옳았고 20세기에도 여전히 옳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단결(인터내셔널)은 다음 세기에 다시 소생하게 될 것이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동일한 통신수단, 인터넷 덕분일 것이다.”

실망스러운 현실, 새삼 다시 떠오르는 가능성
우리는 저 원대하고 자신만만했던 꿈이 크게 빗나갔음을 안다. 그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이고 순진한 분석과 전망에 기반했던 것이었다. 어떤 부분은 부정확하고 어떤 부분은 과장되어 있고, 어떤 부분은 완전히 틀렸다.
이메일은 소통의 도구에서 마케팅의 도구로 전락했다. 온라인 출판과 미디어의 가능성은 거대화된 포털에 의해 질식당하고 있다. 공유되어야 할 정보는 독점되고, 개인정보만 유통되고 있다. 인터내셔널을 소생시킬 것이라던 인터넷은 지금 국가주의가 뒤덮고 있다. 사회운동단체들의 소통과 연대는 아직도 미약하다.

그런데 지금 다시 ‘대공업이 만들어낸 통신수단의 개선’이 일어나고 있다. 웹2.0이라는 이름으로. 물론 지나치게 흥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웹2.0의 실체는 모호하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 사람들이 웹2.0에서 발견하는 것은 오래전에 사람들이 이메일과 PC통신에서 발견했던 차별 없고 효율적인 소통의 가능성, 빠르고 저렴하고 풍부한 미디어로서의 가능성, 사람들의 정보 공유와 협업을 통한 생산의 가능성이 다시 반복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한편 그러한 가능성은 원래 끊임없이 반복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웹 2.0이건 아니건 간에, 혹은 웹이건 웹이 아니건 간에 말이다. 오히려 문제는 그동안 그러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현실화시키려는 연구와 시도들이 너무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는 것이 아닐까? 웹은 이미 한 번 우리를 실망시켰지만, 그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우리에게 웹2.0은 무엇인가?
웹2.0은 분명 자본이 발전시킨 개념과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며, 자본의 전략과 기업들의 치열한 경쟁을 표현하는 개념이다. 자본은 미래의 웹을 선점하기 위해 바쁘게 뛰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웹이 어떻게 변화할지 또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지는 불분명하다. 그것은 분명 자본과 자본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싸움이 결정할 것이다.
10년전 메일링리스트는 획기적인 소통의 도구로 받아들여졌다. 개념도 이해하기 힘들고, 인터넷에 접속하기 조차 힘들었지만, 사람들은 메일링리스트를 도입하고 교육하고 조직화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메일링리스트 여전히 진보진영에서 가장 많이 쓰는 소통의 도구이며 그 이상의 다른 것을 활용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각 단체들마다 힘들게 홈페이지를 만들고 관리하고 있지만, 지금의 홈페이지가 예전의 PC통신 동호회보다 나은 기능을 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언니네 지식놀이터(http://www.unninet.co.kr/kno w/main.asp)와 진보 불로그(http://blog.jinbo.net/)는 웹2.0의 개념을 포함한 잠재력이 있는 훌륭한 시도지만 충분히 주목받고 있지는 못하다. RSS 서비스를 제공하는 진보 언론도 ‘민중언론 참세상’ 정도에 그치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를 감지하고 가능성을 찾고 실행하는 노력조차 많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지금 돌이켜보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단순한 기술과 단순한 가능성이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움직이게 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도구들’을 활용했고, 전방위적으로 소통하고 생산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자본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자본의 전략에 대해 단지 반대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공간을 구축하고 지켜왔다. 그리고 확실히 꿈의 일부분은 현실화되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다음의 7년전 이야기는 지금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이제 우리나라의 사회운동도 서로 힘을 모아 정보통신 공간에서 자신들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전략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통신 네트워크는 단지 자료의 전달 수단이 아니라, 사회운동을 보다 활성화하고 단체 사이에 소통과 연대를 확장할 수 있는 시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안에서 전 세계의 민중들과 만날 수 있습니다. 자본의 정보화는 빠르게 진전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전세계적인 횡포에 맞서고 사회운동의 정보화를 추진하는 동시에 정보화가 또한 진보적인 운동의 성격을 갖게 하기 위해 사회운동의 바른 정보화를 이룩하는 작업은 현 시대를 움직여가는 여러분의 당연한 권리이며 책임입니다.”- 김진균(임시대표), <진보네트워크센터 추진위원회 발족식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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