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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호 표지이야기 [무분별한 주민번호 수집실태]
공공기관 데이터베이스, 80% 이상 주민등록번호 수집
- 국가인권위원회, 주민등록번호 오남용 실태조사 결과 발표

네트워커 편집국   networker@networker.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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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생활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얼마나 많이 쓰일까? 우선 학교, 회사, 병원, 은행 등 우리 주변의 주요 기관이나 업체와 관련된 일을 할 때 필수적으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부동산 거래와 같이 중요한 계약을 할 때도 서로의 주민등록번호를 주고받는다. 심지어 수표로 결제할 때나, 할인마트 이벤트 행사에 응모할 때, 비디오 가게에서 비디오를 빌릴 때조차 주민등록번호를 쓰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실명 인증을 위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우리 생활 곳곳에서 주민등록번호가 다반사로 쓰이고 있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어디 어디에서 수집이 되고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는 없었다. 리니지 명의도용 사태로 주민등록번호 오남용에 대한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지난 2월 23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주민등록번호 사용현황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여 주목된다.

공공 및 민간 영역의 서식과 데이터베이스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 여부 조사

이 실태조사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건국대 한상희 교수 연구팀에 위탁하여 시행되었다. 연구팀은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조사하기 위한 방법으로 공공 및 민간 영역의 서식과 데이터베이스에서 주민등록번호의 수집 여부를 조사하였다. 법정서식의 경우 서식 규정을 두고 있는 현행 법·령 규칙 1,364개에 규정된 서식 16,232개를 대상으로 하였으며, 민간 영역에서 사용되는 서식은 서식제공 사이트인 비즈폼(http://www.bizforms.co.kr)에서 추출한 서식 15,633개를 대상으로 하였다. 데이터베이스의 경우에는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에 근거하여 행정자치부가 보유하고 있는 공공기관개인정보화일 목록이 조사 대상이 되었다.

법정서식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 실태는 아래 표와 같다. (O는 주민등록번호 수록, X는 주민등록번호 수록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삭제는 해당 서식이 삭제된 것, 없음은 서식의 번호가 바뀐 것을 의미한다.)
우선 이 표에서 알 수 있다시피, 주로 서식이 시행령이나 규칙에 규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팀은 그 이유를 "현행 법정 서식들이 주로 행정절차 또는 민원처리과정에서 사용되는 것이 많았고, 기관 내부의 업무처리 및 인사에 사용되는 것들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나 주민등록번호 등의 정보들을 모법에서 그 근거를 도출하여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모법의 규정이나 입법목적, 입법취지 등과는 전혀 별개로 행정청에서 집행명령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서식을 정하고 여기서 행정편의를 위하여 혹은 관행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양상이 벌어진다"고 분석하였다. 즉 공공영역에서조차 민감한 개인정보인 주민등록번호가 법률의 근거 하에 수집되는 것이 아니라 행정관청의 관행에 따라 수집 여부가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정서식 중 신청관련서류 72.9%, 증명서 62.7%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

위 표에서는 법률, 시행령, 규칙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는 비율이 각각 47.1%, 41.0%, 53.4%로 나타났으나, 서식의 성격을 좀 더 세분해보면 개인정보 수집과 관련된 서식에서는 주민등록번호 수집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납부서, 신고서, 청구서 등 신청관련서류의 72.9%, 자격증, 면허증, 영수증 등 증명서의 62.7%, 통지서, 고지서, 의뢰서 등 통보관련서류의 47.3%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에서 이용되는 서식의 경우 건설, 민원/행정, 법원, 생활, 세무/금융, 학교, 회사 등으로 영역을 구분하여 주민등록번호 수집 여부를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연구팀은 조사 대상이 된 서식 중 일부는 민간에서 공공기관에 제출하는 서식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법정 서식과 겹칠 수 있다고 밝혔다.
민간 영역의 서식 7538종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 확인

그러나, 위 통계에서 사용 비율 자체는 그리 중요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법정 서식에 비해 민간 서식의 경우 모집단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뿐더러, 위에서 조사 대상이 된 서식 중에는 개인정보 수집과 큰 관련이 없는 서식도 포함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등록번호가 사용되는 비율보다는 오히려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는 서식의 종류가 7538종이나 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제한적으로 수집되어야할 주민등록번호가 민간 영역에서도 무분별하게 수집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대국민 민원을 처리할 때에도 주민등록번호를 대부분 요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원행정 영역에서의 주민등록번호 요구 비율 조사결과, 경찰청(91.2%), 공원(96.2%), 교통(93.6%), 농촌진흥청(91.1%), 산림청(92.0%), 위생(90.9%), 해양경찰청(95.6%), 해양수산부(91.6%) 등 대인적 행정업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영역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빈도가 높게 나타났다. 반면 공정거래위원회(19.6%), 관세청(37.9%), 조달청(37.0%) 등에서는 비교적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들 기관들은 주로 사업자를 상대로 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공공기관 DB, 80% 이상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

서식이 개인정보가 수집, 이용되는 관문이라고 한다면, 데이터베이스는 개인정보가 관리되는 실체에 해당한다. 연구팀에서 공공기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80% 이상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부적으로 보면, 각 시도 및 시군구의 경우 287개의 개인정보 파일 중 238개(82.9%)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고 있었으며, 시도교육청은 178개 파일 중 15개 파일에서 수집하고 있었다(88.2%). 주요 정부 부처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는 8개 파일 중 7개 (87.5%), 국가보훈처는 27개 파일 중 21개(77.8%), 국세청은 42개 파일 중 35개(83.3%), 보건복지부는 21개 중 19개(90.5%), 해양수산부는 16개 파일 모두(100%), 환경부는 25개 파일 중 22개(88%)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었다. 평균적으로 중앙행정기관이 보유한 데이터베이스의 81.7%가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연구팀은 이번 조사에서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가 조사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그 이유는 행정자치부가 보유하고 있는 목록에 누락된 기관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에 의거하여 각 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 파일(데이터베이스) 목록을 공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상당수의 기관이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록을 이미 공개한 기관의 경우에도 빠짐없이 모두 공개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성명 다음으로 많이 수집돼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로부터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의 대부분이 주민등록번호를 보유하고 있다는 결론을 충분히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공기관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 수집되고 있는 개인정보 항목들을 분석한 결과를 보아도 주민등록번호는 '성명' 다음으로 많이 수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구팀 관계자는 이번 조사를 통해 공공 및 민간 영역에서 주민등록번호가 상당히 광범위하게 수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학번, 군번, 사원번호, 운전면허번호, 여권번호와 같이) 별도의 식별자를 가지고 있고 그러한 식별자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업무의 수행이 가능한 경우에도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이를 기준으로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경향이 발견된다"며, 역으로 주민등록번호 대신 다른 식별자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관행적인 주민등록번호의 수집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3월 3일 2시,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며, 향후 실태조사 결과를 면밀히 분석하여 주민등록번호 오남용으로부터 인권을 보호하는 정책 권고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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