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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작은 뉴스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지나칠만한 기사였지만, 어떻게든 관련이 있는 웹개발자들에게는 대단히 나쁜 소식이었죠. 바로 액티브엑스(ActiveX) 동작과 관련해 인터넷 익스플로러(IE)의 설계를 변경한다는 발표입니다.
인터넷 업계의 공룡기업답게 마이크로소프트는 여러 다른 회사들과 이런저런 소송에 얽혀 있습니다. 이 중 ActiveX라는 기술 등을 HTML 파일에서 사용하는 방식에 대해 캘리포니아 주립대와 이올라스 테크놀러지(Eolas Technologies)와의 특허 분쟁을 진행하는 중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특허 침해 소지를 없애기 위해 자사의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 ActiveX 등의 동작법을 변경하게 된 것이죠.
아마 페이지를 열면 자동으로 음악이 재생되거나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경우를 보셨을 것입니다. 이것은 브라우저의 자체적인 기능이 아니라 미디어 플레이어 같은 외부 프로그램("컨트롤"이라 부릅니다)을 통해 실행시키는 것인데요, HTML에서 [object], [embed], [applet]등의 태그를 사용해 컨트롤을 불러오게 되죠. 위에서 얘기한 특허는 HTML에서 이 태그들을 사용해 사용자의 입력 없이 자동으로 컨트롤을 활성화시키는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변경된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는 반드시(!) 사용자의 입력을 통해서만 이러한 컨트롤들이 제어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음악을 자동재생 시켜 놓으면 이제까진 정지 버튼만 눌러주면 음악을 멈출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미디어 플레이어 컨트롤을 한 번 클릭해서 활성화시킨 다음 정지를 누를 수 있게 된 것이죠.
사실 자동재생된 음악을 멈추려면 클릭 한 번을 더 해줘야 된다...정도의 문제라면 그다지 큰 이슈가 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ActiveX 컨트롤이 자동으로 동작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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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iveX install |
여기서 ActiveX란 COM(Component Object Model)이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안한 컴포넌트 기술입니다. 워드(Word) 같은 어플리케이션 프로그램은 사용자의 PC에서 실행시켜 사용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지만, ActiveX로 개발한 프로그램은 HTML 문서 등에서 실행할 수 있으며 다른 어플리케이션에 쉽게 붙일 수도 있습니다. ActiveX 프로그램을 통해 문서편집기나 그림판, 네트워크 어플리케이션 같이 강력한 프로그램을 웹문서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사실 초기에는 워드나 엑셀 같은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에서 쉽게 가져다 쓸 수 있도록 하는 OLE 기술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를 확장하여 만든 것이 바로 ActiveX인 것이죠. 은행 웹사이트 같은 데를 접속하면 가장 먼저 보안 프로그램을 체크하고 없으면 새로 설치하는데, 이런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ActiveX로 개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ActiveX가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특정 회사에 속한 기술이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랫폼에서만 동작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리눅스나 매킨토시 같은 운영체제에서 사용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모질라 파이어폭스나 오페라 등의 브라우저에서도 ActiveX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파이어폭스 사용자들은 ActiveX 형태의 보안 모듈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 뱅킹을 하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금융기관 사이트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준으로 웹사이트를 구축했기 때문이죠.
게다가 ActiveX는 심각한 보안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ActiveX 자체가 지닌 보안 취약성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으며, 바이러스나 트로이목마 프로그램처럼 사용자의 PC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ActiveX 형태로 배포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윈도 어플리케이션 형태의 프로그램과 달리 ActiveX 프로그램은 한 번의 클릭만으로 설치되어 버리기 때문에, 악의적인 코드가 침투할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따라서 ActiveX를 설치할 때에는 신중하게 "예" 버튼을 눌러줘야겠죠.
여하튼 ActiveX의 존재 때문에 일이 이렇게 커진 셈이 된 것인데요,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입장에서만 다행스럽게도)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object], [embed], [applet] 등의 태그를 HTML에 직접 쓰지 않고 자바스크립트 등의 스크립트에서 써 주게 되면 특허를 피해갈 수 있게 된 것이죠.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는 특허료를 지불하고 기술을 사용하기보다는, 돈 적게 들이고 품을 적게 팔 수 있는 방법으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패치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이 결정으로 인해 웹개발자들은 수많은 페이지에서 사용되는 ActiveX 컨트롤들을 위해 코드를 수정해주는 작업을 해 줘야 하게 되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우리가 일일이 다 수정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특허 사용료를 내긴 돈 아깝잖냐. 꽁수를 알려줄 테니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니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배를 째는 상황이니.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비롯해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한국에선 이래저래 피해를 많이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특정 소프트웨어에 의한 독점이 가져다주는 피해를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