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네트워커> - 정보화에 대한 다른 시각
32호 북마크
민족이라는 것에 대한 흥미로운 사례
「슬픈 아일랜드」(박지향 지음, 새물결, 2002년)

자일리톨 / 블로거   http://blog.jinbo.net/xylit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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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야구라는 놈 때문에 참 시끄럽다. 6월이면 그놈의 월드컵 때문에 다시 이런 일을 치루어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조금씩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예전에 사두었던 책을 책장에서 다시 꺼내어 몇 자 읽어본다. 책의 제목은「슬픈 아일랜드」다.

책의 저자인 박지향 교수는 영국사를 전공한 학자답게 한국이란 나라와 친연성을 가진 국가로 저 멀리 서쪽에 있는 아일랜드를 지목한다. 그러고 보니 두 나라는 지척에 강대국을 두고 있으며, 그 강대국에 의해 식민지배를 경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일랜드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민족이란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만들어진 개념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700여 년간 잉글랜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사람과 역사가 뒤섞이면서 아일랜드 민족을 정의할 수 있는 분류기준이란 참으로 모호해졌다. 때문에 19세기의 아일랜드 정치가 데이비스 등은 종교나 혈통, 언어에 기반하지 않은 개방적인 개념의 민족을 주장했다. 즉, 아일랜드의 풍광을 좋아하고, 아일랜드에 거주하며, 자신을 아일랜드인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일랜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잉글랜드인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차별과 배제, 심지어 폭력을 경험하게 되면서 아일랜드인들은 그들을 잉글랜드인과 구별짓는 차이에 대해 집착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고대 켈트인의 시대를 에덴동산과 같은 낙원으로 이상화하고, 의식적인 게일어 보존에 나서게 된다. (이건 어째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보던 스토리이다)

여기서 잉글랜드나 아일랜드 양쪽에 완전히 속할 수 없었던 이방인으로서 영국계 아일랜드인들의 사례는 매우 흥미롭다. 특히 영국계 아일랜드 문인들은 주변인 혹은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의 혼란을 문학적 감수성을 통해 표출함으로써, 그들이 느꼈던 마음의 상처만큼이나 큰 족적을 영문학계에 남기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이 책은 1부에 한국과 유사한 아일랜드의 역사에 대한 개관을, 2부에는 이들 3대 영국계 아일랜드 문인들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된다. 부유한 국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풍부한 유머와 위트로 영국 상류층에 화려하게 데뷔했다가 동성애 사건으로 불우한 최후를 맞이한 유미주의자 오스카 와일드, 평생을 청교도적인 금욕주의자로 살면서 민족주의의 폐쇄성을 혐오하며, 그와 동시에 아일랜드인이 아닌 국제인 혹은 낭만적 사회주의자로 살고 싶어했던 조지 버나드 쇼, 젊은 시절에는 낭만적 민족주의자로, 그 다음엔 엘리트 주도의 귀족정을 주장했다가 한때는 전체주의자로 오락가락 갈짓자 횡보를 보였던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그들의 삶의 양태는 매우 상이했지만, 개인과 예술의 자유를 주장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보인다.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서 방황했기에 두 집단 간의 차이에 대해 더 집착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들이 의도했건 혹은 그렇지 않았건 간에 잉글랜드 내에서 아일랜드성을 표현하였던 그들이,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 성립이후 “위대한 아일랜드”를 표방하는 신정(神政)에 가까운 숨막히는 사회분위기에서 아일랜드를 떠나야 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박지향씨는 현재까지 영국사, 제국주의의 역사적 사례분석, 비교사적 관점을 통해서 본 근대화의 문제에 관해 책을 써왔다. 그의 공부의 출발점이 영국사였던 것을 보면 그는 자신의 지적 호기심이 가지를 뻗는 방향에 따라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었던 해피한 케이스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일견 과도한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일견 사료에 근거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리고 그는 이 책에서도 타자와의 이질성에 의해 자의든 타의든 자동적으로 발생하게 된 민족주의의 폐쇄성을 극복하고, 보편적인 자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난 민족주의 이런 거 별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박지향씨가 하고 있는 비교사 관점의 제국주의 및 문화사 연구 등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민족주의가 매우 과잉되어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을 것으로 본다. 최근 박지향씨가 엮어낸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문제를 보면서 나의 생각이 너무 순진한 것은 아니었는지 우려가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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